중국 춘추 5패 중 하나인 초(楚) 나라의 신하 왕손려(王孫勵)가 문왕(文王)에게 이웃 서(徐)나라를 칠 것을 건의했다.문왕은 도리가 있는 나라라면 그럴 수 없다고 그의 청을 거절한다.서 나라 언왕(偃王)이 인의(仁義)를 좋아하고 문덕(文德)의 정치를 펴고 있다는 것이 불가의 이유였다.실제로 서 나라는 따르는 제후국이 많았고 한수(漢水) 동쪽 32개국이 복종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왕손려의 생각은 한참 달랐다.좋은 정치를 펴고 이웃의 환심을 사고 있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반드시 서 나라를 쳐야한다고 했다.문왕이 도저히 서 나라를 칠 수 없다고 하는 그 이유가 신하에게는 반드시 쳐야 하는 이유가 됐다.왕손려는 만약 임금께서 지금 치지 않으시면 초나라도 머지않아 서 나라를 섬겨야할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라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런 비유를 들어가며 집요하게 왕을 설득했다.“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치는 것과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치는 것은 마치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삼키는 것과 같고,호랑이가 돼지를 잡아먹는 것과 같습니다.어찌 이런 일에 이치가 맞지 않을까를 걱정하십니까?” 거듭된 설득에 마음을 바꾼 문왕은 군대를 일으켜 서 나라를 정벌하게 된다.

최후를 맞은 언왕이 한탄하기를, “문덕(文德)만 있으면 되는 것으로 알고 무비(武備)를 소홀히 했다.인의를 행하면 되는 줄 알았지 속이는 자가 있다는 것을 모르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라고 했으나 사태를 되돌릴 수 없게 된 뒤였다.내 선의만을 믿어서도,상대의 선의만을 믿어서도 안 되는 것이 국가의 안위를 책임진 자의 자세일 것이다.

동북아의 정세가 요동치고 안보환경이 급변한다.한편으로는 대화국면이 전개되고,다른 한편으로는 패권경쟁이 어지럽다.피아를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한반도를 둘러싼 기류가 복잡다단하다.작은 물고기가 큰 물고기의 선의에 운명을 맡기는 우를 범해선 안 되겠다.오늘 제71주년 국군의 날을 맞아 대구 공군기지에서 기념식이 열린다.냉엄한 안보현실을 돌아보는 날이 돼야 하겠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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