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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신인문학상 동화 당선작] 무지개를 뽑는 아이

정선옥

데스크 2019년 10월 10일 목요일 14 면

'위잉, 철커덕’

이게 무슨 소리냐고? 삼발이소리야.희망동 버스정류장 앞에는 인형을 뽑는 방이 있어.사람들이 돈을 넣고 삼발이를 움직여 인형을 뽑지.뽑기방 안에는 온갖 동물 인형들이 있어.다들 밖에 나가고 싶어서 오늘도 목을 길게 빼고 사람들을 기다리지.

“토끼야, 오늘은 왜 개미새끼 한 마리 안보이지?”

입 큰 하마가 길게 하품하며 물었어.

“삼발이 녀석 때문이잖아.만날 헛발질만 하니 누가 오겠냐.”

나는 삼발이를 째려봤어.며칠 삼발이가 헛발질하는 바람에 번번이 바닥에 머리를 박았거든.내 쫑긋한 두 귀가 찌그러진 것도 다 저 녀석 때문이야.그러거나 말거나 천장 위에서 모른척하는 것 좀 봐.

“어제는 누가 나갔지?”

거북이가 느릿느릿 말을 했어.거북이도 며칠 전에 삼발이한테 매달렸다 떨어졌어.지금 등딱지가 뒤집어져서 꼴이 말이 아니야.

“누구긴, 얌체 같은 여우잖아. 삼발이에게 여우 짓 한 게 틀림없어.”

나는 찌그러진 두 귀를 팔락거리며 투덜댔어.

“아까 보니까 학교 가는 준이 가방에 매달려 달랑거리더라.”

한쪽 구석에 박혀있던 호랑이가 맞장구쳤어.

“부럽다……”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어.밖에 나가는 것도 좋은데,잘 생긴 준이 가방에 매달려 다니면 얼마나 기분 좋겠어.준이는 엄마가 용돈을 두둑이 준대.매일 와서 인형을 뽑아.그래서 다들 준이에게 뽑히고 싶어 안달이야.

어,누가 왔어.푸르스름한 작업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야.남자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누군가와 통화를 했어.

“아빠야.병원 갔다 저녁에 갈게.”

남자는 금방 전화를 끊고 안을 들여다봤어.뭔가를 찾는 것 같았어.이리저리 훑어보다 나랑 눈이 마주쳤지.남자의 눈이 커졌어.

“무지개라…”

혼자 중얼거리더니 돈을 꺼냈어.기계에 돈을 집어넣고 버튼을 눌렀어.삼발이가 자꾸 나를 건드렸어.삼발이는 연거푸 서너 번 헛발질만 해댔어.에이,삼발이가 들었다 놨다 하는 바람에 구석으로 밀려났지 뭐야.

남자가 또 돈을 집어넣으려고 할 때 핸드폰이 울렸어.남자는 아쉬운 듯 자꾸만 뒤돌아보며 멀리 사라졌어.

“하마야,거기서 준이가 오는지 잘 봐.”

나는 입구 쪽에 있는 하마를 불렀어.

“야, 준이가 와도 너는 안 뽑을걸.너처럼 시퍼런 토끼를 누가 좋아하냐? 크크.”

하마가 슬슬 약을 올렸어. 입만 큰 주제에 나처럼 귀여운 토끼에게 감히.

“넌 입이 커서 더 싫어할걸.메롱.”

혀를 내밀자 하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어.

사실 준이가 좋아하는 인형은 없어.그냥 내키는 대로 뽑거든.그러니 준이가 날 뽑을지도 모르는 거잖아.

“쉿, 조용!”

사자가 소리쳤어.누가 왔나봐.검은 모자를 쓴 남자가 몸을 건들거리며 들어왔어.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서 말이야.떡 벌어진 어깨가 힘깨나 쓰게 생겼어.얼굴은 덥수룩한 수염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았지.나는 숨도 안 쉬고 쥐 죽은 듯이 있었어.괜히 눈에 띄고 싶지 않았거든.구석자리에 박혀있는 게 다행이지 뭐야.

“뽑을만 한 것도 없잖아.”

털북숭이 남자가 침을 탁 뱉었어.

“저 남자는 그냥 갔으면 좋겠어.”

거북이가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했어.나는 조용히 하라고 눈짓을 했지.

털북숭이 남자가 동전을 꺼냈어.위잉.삼발이가 집게를 벌리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했어.시간이 다되어 가는 데 이런.삼발이가 나를 건드렸어.몸을 비틀었어.삼발이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어.휴 다행이다.하마터면 잡힐 뻔 했지 뭐야.

“돈만 잡아먹고!”

털북숭이 남자가 주먹으로 유리막을 꽝 쳤어.남자는 그래도 성이 안차는지 발길질까지 해댔어.옆에 거북이가 바들바들 떨었지.남자는 또 동전을 집어넣었어.위잉.삼발이가 거북이를 집었어. 거북이는 가뜩이나 짧은 발을 바동거렸어.철컥.덜커덩.어휴,불쌍한 거북이.구멍으로 떨어졌어.털북숭이 남자가 거북이를 꺼내들고 손으로 툭툭 쳤어.그리곤 주머니에 쓱 집어넣더니 가버렸어.나는 멍하니 남자의 주머니만 바라보았지.

“거북이,안됐다.하필 성질 고약한 남자한테…”

사자가 혀를 끌끌 찼어.그러게 말이야.별 탈 없이 지낼 수 있을지.

“야,또 왔다.왔어.”

하품을 하다말고 하마가 호들갑을 떨었어.

“누가, 준이 왔어?”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리번거렸지.준이가 아니고 그 아이였어.얼굴에 붉은 흉터가 있는 아이.오늘도 목이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지.아이는 올 때마다 나를 뚫어져라 쳐다봐.입으로 뭔가 중얼중얼거리는데,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도 없어.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는 것 같기도 해.

아이가 동전을 넣었어.천천히 삼발이를 움직였어.아이는 서두르는 법이 없어.삼발이가 다리를 벌리고 내려왔어.삼발이가 내 엉덩이를 찔렀어.다리를 오므려서 나를 잡았어.아이의 눈이 점점 커졌어.하지만 나는 알아.삼발이 다리에 힘이 전혀 없었거든.금방 풀어버리더라구.삼발이 녀석,내가 싫어하는 걸 알았나봐.

“아……”

아이는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세었어.동전이 모자라는 것 같았어.어쩌겠어.나는 심드렁한 얼굴로 밖을 내다봤어.준이가 올 시간이 됐거든.

“어? 준이다.”

호랑이가 소리쳤어.저기 준이가 친구랑 어깨동무하고 왔어.아이는 준이를 보자 슬그머니 가버렸어.

“쟤,3반 민우 아냐?”

준이가 옆에 있는 친구에게 물었어.아이 이름이 민우인가 봐.

“교통사고 났다더니 다 나았나 보네.”

교통사고 때문에 얼굴에 흉터가 생겼나봐.쯧쯧.

“오늘은 뭘 뽑을까?”

준이가 인형들을 눈으로 훑었어.준이가 나를 봐야 할텐데.

“준아,여기야.여기”

하마가 손을 흔들었어.공룡도 큰 눈을 깜박였어.나도 두 귀를 팔랑거렸지.

위잉,삼발이가 움직였어.이게 웬일이야.머리 위에 삼발이가 번쩍거리며 멈췄어.나를 뽑으려나 봐.삼발이가 내려와 나를 사뿐히 안았어.저절로 엉덩이가 들썩거렸어.밑에 있는 인형들이 부러운 눈으로 쳐다봐.

‘더,더,더,삼발아,제발!’

“띠리리,툭.”

삼발이가 나를 구석에 내동댕이 쳐버렸어.두 귀가 또 찌그러졌어.삼발이 녀석,또 헛발질이야.씩씩거리며 삼발이를 노려봤어.삼발이는 언제 봤냐는 듯 돌아가 버렸어.

“에이,토끼는 안 되겠다.돈만 날렸네.”

투덜댄 준이는 다시 동전을 넣었어.위잉.삼발이가 호랑이를 안았어.호랑이를 뽑으려나봐.호랑이 입이 귀에 걸렸어.

‘떨어져라.떨어져라.’

나는 속으로 주문을 외웠어.호랑이의 기다란 꼬리가 덜렁거리며 지나갔어.덜커덩.호랑이가 손을 흔들고 구멍으로 사라졌어.

“이거 너 가져.”

준이가 호랑이를 꺼내들고 친구에게 건넸어.

“왜? 싫어?”

친구가 준이에게 물었어.

“우리 집에 너무 많아. 엄마가 다 버리래.”

뭐라고?다 버린다고?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어.그날도 준이가 기린을 뽑았어.준이는 기린을 손가락에 걸고 흔들면서 갔어.나는 준이 손가락에 달랑거리는 기린을 부러운 눈으로 계속 봤지.근데 말이야.기린이 휙 날아갔어.준이 손가락에서 빠져버린 거야.준이는 그냥 가더라고.나는 내가 잘못본 거라고 생각했지.

“이제 인형 뽑기도 재미없어.”

준이는 친구랑 어깨동무하고 가버렸어.준이에게 뽑히지 않은 게 다행이야.

조금 뒤 양복을 말쑥하게 입은 청년이 왔어.눈매가 참 선해 보였어.청년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누군가와 통화를 했어.

“잘 봤어요.걱정 마세요.”

얘기를 들어보니 오늘 면접시험을 보았나 봐.바깥 세상에도 뽑고 뽑히는 놀이가 있나 봐.청년은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어.

“아,오늘 인형 뽑기 되면 합격이다!”

글쎄,인형 뽑기가 점쟁이도 아닌데,그래도 이왕이면 인형도 뽑고 사원으로 뽑히면 좋겠지.뽑히고 싶은 마음은 같은지 다들 청년을 응원했어.

“삼발아,헛발질 하지마라.”

“오죽하면 인형 뽑기에 합격을 빌겠냐? 삼발이 알지?”

위잉,삼발이가 슬슬 움직였어.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왔다갔다 하는 삼발이를 따라 내 눈도 움직였어.누구를 집을까.숨죽이고 쳐다봤지.삼발이가 은빛 갈고리를 번쩍이며 내려왔어.아!입 큰 하마야.삼발이가 하마 입을 집었어.들어 올려진 하마가 입을 크게 벌리고 버텼어.철컥.삼발이가 하마를 구멍으로 떨어뜨렸지.

“앗싸! 나도 뽑힐 거야.”

청년이 두 주먹을 쥐고 흔들었어.나도 오랜만에 웃었어.

“하마야,잘 가라.”

하마에게 손을 흔들었어.티격태격 다투기는 했어도 그동안 정이 들었거든.좀 섭섭한 마음도 들었지.

어둠이 슬슬 깔릴 때였어.사람들이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버스정류장에 내리는 발길도 뜸해졌지.오늘도 나가기는 글렀나봐.잠이나 자야겠다고 생각했어.그때 인형 뽑기 유리막을 빤히 쳐다보는 눈과 마주쳤어.그 아이, 민우가 또 왔어.

“파란 토끼야, 네가 필요해.”

민우는 눈물을 글썽였어.내가 필요하다고?민우에게 무슨 일이 있나봐.

“민우야,”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 누가 민우를 불렀어.낮에 나를 뽑으려했던 남자야.

“아빠.”

“또 인형 뽑기 하러 온 거야?”

민우 아빠 인가봐.나는 두 귀를 쫑긋하고 이야기를 들었어.주위에 다른 인형들도 숨을 죽였어.

“아빠, 저 파란 토끼만 있으면 돼.”

“민우야, 그 말을 믿니?”

“아빠, 파란색만 있으면 무지개가 되잖아.내가 다른 색은 다 모았단 말이야.”

민우는 울먹이며 말했어.토끼 인형이 무지개 색이 다 모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얘기가 있어.나야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잘 몰라.어쨌든 민우가 나머지 색 토끼인형을 다 모았다니,민우의 소원이 뭘까?

“민우야,엄마는…”

“아빠,파란 토끼를 뽑으면 엄마도 일어날 거야.”

“그래,엄마가 너를 꼭 안았기에 네가 덜 다쳤으니…네 마음 아빠가 안다.”

민우 아빠는 동전을 넣었어.삼발이도 민우의 소원을 들었을까?

“삼발아.부탁이야.민우의 소원을 들어줘.”

나는 삼발이를 보고 두 손 모아 빌었어.위잉,삼발이가 움직였어.

“삼발아,제발…”

나는 눈을 꼭 감았어.두 귀를 쫑긋거리고 입술을 꽉 깨물었어.머리 위에 삼발이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지.가슴이 콩닥거렸어.아!삼발이가 내 몸을 안았어.몸이 붕 날아올랐지.가슴이 터질 것 같았어.몸이 깃털처럼 가벼워.마치 새가 된 것 같아.삼발이 품이 이렇게 따뜻하다니! 한쪽 눈을 살짝 떠보았어.기분 탓일까?삼발이가 웃고 있었어.

철컥!몸이 구멍으로 떨어지는가 싶더니 더 아래로 내려갔어.

“민우야, 파란 토끼다!”

민우 아빠는 함박웃음을 지었어.

“엄마!”

민우는 나를 품에 꼭 안았지.민우의 눈물이 몸 위로 뚝 떨어졌어.

“아빠,엄마한테 가보자! 일어났을지도 몰라.”

민우가 아빠 손을 잡아끌었어.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며 민우의 손을 꼭 잡았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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