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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사라진 마을을 찾아서] 8. 북위17도선 베트남 DMZ의 변신

냉전 당시 MDL 표시 남은 다리·3층짜리 땅굴 관광자원화
한국-베트남 분단역사 닯은꼴
남북 갈라져 비무장지대 남아
DMZ 사라진 현재에도
히엔르엉교 위 표식 그대로
인근 통일열망탑·전시관
실제 포탄·전쟁사진 등 관리
전쟁 때 빈목터널 주거 활용
가구별 부엌·병원 등 갖춰
최근 관광해설 함께 50분 투어

박창현 chpark@kado.net 2019년 10월 11일 금요일 22 면
▲ 베트남 DMZ의 군사분계선 기준점이 된 벤하이강에 설치된 히엔르엉교를 찾는 외국인관광객이 늘ㄹ고 있다. 다리 한 가운데 옛 남북베트남을 가르는 흰색 군사분계선이 그어져 있고 북측 난간이 노란색,남측 난간이 파란색으로 표시돼 있다.
▲ 베트남 DMZ의 군사분계선 기준점이 된 벤하이강에 설치된 히엔르엉교를 찾는 외국인관광객이 늘ㄹ고 있다. 다리 한 가운데 옛 남북베트남을 가르는 흰색 군사분계선이 그어져 있고 북측 난간이 노란색,남측 난간이 파란색으로 표시돼 있다.

한국과 베트남은 외세에 의해 남북이 갈라진 유사한 분단의 역사를 지닌 공통점이 있다.하지만 한때 서로 총칼을 겨눈 아픈 상처를 지닌 국가이기도 하다.한반도의 비무장지대(DMZ)는 냉전시대의 산물로 올해로 66년째 존재하고 있는 반면 베트남의 DMZ은 1954년부터 1976년까지 22년간 피비린내 나는 내전 끝에 남북통일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진 상태다.하지만 최근들어 북위 17도선 일대에 그어졌던 베트남 비무장지대 주변 마을과 주요 전적지가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DMZ투어 관광지로 조명받고 있어 통일평화시대를 맞은 우리나라 DMZ마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본지 취재진은 우리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인 옛 베트남 비무장지대 일대 방문기를 2회로 나눠 게재한다.


▲ 폭격을 피하기 위해 마을주민들이 만든 빈목터널이 최근 관광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 폭격을 피하기 위해 마을주민들이 만든 빈목터널이 최근 관광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베트남 DMZ의 역사

프랑스 식민지였던 베트남은 1946년부터 1954년까지 호찌민 주도로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을 벌인다.이 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가 철수하면서 미국,소련,중국은 1954년 7월 제네바협정을 통해 공산주의 국가인 북베트남과 친서방 진영인 남베트남으로 분할한다.

그 협정에는 북위 17도선을 ‘잠정적인 군사분계선’으로 규정했다.마치 우리나라가 1945년 8·15광복 이후 38선을 경계로 남·북한의 의지와 상관없이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할된 데 이어 1950년 6·25전쟁을 계기로 1953년 7월 27일 남한이 제외된채 미국,중국,북한 등 3자간 정전협정으로 남북한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가 설정된 과정과 흡사하다.

당시 베트남 비무장지대는 북위 17도선과 중첩되는 벤하이강을 따라 그어진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대략 2㎞씩 거리를 두고 DMZ를 설정했다.이 지점에서 대표적인 북베트남의 최전방마을은 ‘빈목’이었고 남베트남은 ‘동하’였다.이들 마을은 베트남전쟁에서 북베트남과 미국의 최대 격전지로,우리나라의 접경지역인 남측 철원,북측 개성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베트남의 비무장지대는 1976년 북베트남이 통일국가를 완성하면서 22년만에 소멸됐다.


▲ 베트남 전쟁박물관.전쟁 당시 사용된 포탄이 전시돼 있다.
▲ 베트남 전쟁박물관.전쟁 당시 사용된 포탄이 전시돼 있다.
베트남 DMZ 상징,벤하이강 히엔르엉교

보통 베트남 DMZ 투어는 다낭공항에서 차를 타고 3시간 내외 거리의 옛 베트남 왕조도시 후에로 향한다.후에에서 국도 1호선을 타고 북쪽으로 옛 남베트남의 최북단도시 꽝찌성의 성도 동하를 거치는 90여㎞의 코스를 달리면 베트남 DMZ의 상징인 벤하이강(Song Ben Hai)을 가로지르는 ‘히엔르엉교(橋)’(Cau Hien Luong)를 만날 수 있다.이 다리는 1954년 베트남을 남북으로 갈라놓은 비무장지대 설정 당시 기준점이었다.

DMZ가 사라진 현재까지도 이 다리 중앙에 그어진 흰색 군사분계선(MDL)을 경계로 북측 다리난간은 파란색,남측 다리난간은 노란색으로 표시돼 있다.현재 우리나라 DMZ 군사분계선처럼 남북이 왕래할 수 없었던 분단상황을 그대로 재현한 듯 하다.실제 한때 비무장지대 내 다리 하나를 두고 남북으로 갈라졌던 베트남은 당시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통행은 엄두도 못 내고 선전방송까지 끊임없이 송출됐던 긴장감이 감돌던 곳이었다고 전해진다.

역사적으로 히엔르엉교는 프랑스가 식민지 시절 벤하이강 하구에 물자보급을 위해 건설한 길이 165m 정도의 보행자 전용 다리다.전쟁 중 공중폭격으로 파괴됐다가 복구됐다.다리 남측에는 통일열망탑이 있고 탑 조형물 하단에는 호찌민 전 주석의 어록인 ‘국가도 하나,민족도 하나’라고 새겨져 있다.다리 북측에는 하늘 높이 솟구친 베트남국기 게양대가 눈에 띄고 그 길 건너편으로 호찌민 전 주석의 동상과 전쟁 당시 사진,실제 포탄,전쟁상황도 등을 전시한 통일전시관이 운영되고 있다.하지만 베트남 역사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현장이라고 하기에는 세련되지 않은 디자인에 시설관리도 다소 엉성한 느낌을 받는다.


▲ 케산전투현장에서 수거한 유물들을  관광객을 대상으로 판매하고 있다.
▲ 케산전투현장에서 수거한 유물들을 관광객을 대상으로 판매하고 있다.
미군폭격 이겨낸 빈목터널

새롭게 건설한 히엔르엉교에서 1호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더 올라가면 옛 북베트남의 최북단마을 ‘빈목’이 나온다.이곳이 주목받는 이유는 베트남 전쟁 당시 마을주민들이 미군의 무차별적인 폭격을 피해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만든 땅굴이 이제는 최대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빈목마을주민 600여명은 1965년부터 땅굴을 파기 시작해 이곳에서 1972년까지 살면서 17명의 아이를 낳았다.

땅굴은 거미줄처럼 이어진 총길이 2.8㎞의 터널로,꽝찌해안으로 통하는 문 7개,산으로 향하는 문 6개 등 총 13개의 출입문이 있다.3층 구조로,높이 11m의 맨아래층은 주거생활을 했고 높이 15m의 2층은 군수물자와 식량 등을 보관했다.지표면에서 가장 가까운 맨 위층은 폭격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23m의 높이로 견고하게 지어졌다.

현지인의 안내를 받아 두 사람이 교차하기도 어려운 폭의 터널 곳곳을 다녀보면 가구별 독립공간뿐만 아니라 부엌,우물,빨래터,병원,창고,탄약고 등을 볼 수 있다.터널 외부에는 미군 폭격 당시 불발탄을 곳곳에 배치해 살벌했던 전쟁터였음을 보여주고 있다.또 기념전시관에는 땅굴을 파는 과정부터 터널 내 생활상을 보여주는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투어코스는 길게는 600m,짧게는 300m구간으로 나눠 진행되고 긴 코스가 관광해설사의 안내를 받아 총 50분가량 소요된다.


베트남전쟁 격전지,케산전투기지

옛 남북베트남의 군사분계선의 남측을 횡단하는 국도 9호선 일대는 베트남전쟁 당시인 1966년말부터 미국이 10억달러를 들여 사수하려 했던 최전선이자 최대 격전지였다.

단일 전선으로 2차대전 이후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역사의 현장으로 전해진다.동하에서 국도 9호선을 타고 63㎞ 거리에 위치한 케산전투기지는 해발 2466m 고원지대에 위치한 베트남 전쟁의 목지점이었다.관광지로 변한 기지 입구에는 마을 특산물인 커피판매상이 방문객을 맞이한다.광활한 기지외부공간은 1968년 미군이 북베트남군의 공격에 못이겨 철수하면서 남겨진 군용비행기와 헬기,탱크,벙커 등의 전쟁 흔적이 그대로 전시돼 있다.

전적비와 조그만 기념관은 이곳에서 벌어진 치열했던 전쟁의 기록을 보여준다.취재진이 현장을 둘러보자 현지주민이 다가와 전투현장에서 수거한 라이터,탄피,뺏지 등을 판매하기도 했다.전쟁이 끝난지 40여년이 됐지만 아직까지도 발굴(?)되는 당시 전쟁터의 유물이 마을주민에게 또하나의 수입원이 되는 듯하다.아이러니하게 이곳은 베트남인들의 승전지로서의 자부심도 있지만 미군 참전용사들이 다시 찾는 유적지로 더 유명해졌다.주변 접근도로 여건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고 편의시설도 많지 않은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베트남 동하/박창현·최유진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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