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녹차밭·청산도 구들장논…강원도엔 뭐가 있을까?
인류문명 후견자 농업시스템
생태계·경관·문화가치 보전
세계 57곳 중요농업유산 등재
도내 국가차원 지정 조차 전무
농촌지역 활기 더할 발굴 필요

▲ 2018년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된 금산 인삼밭
▲ 2018년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된 금산 인삼밭

초등 6학년이던 56년 전인 1963년 가을이었다.당시 우정국은 1960년대 이집트 아스완 댐 건설로 수장 위기에 직면한 이집트 누비아 사막 속에 세워진 BC 13세기의 고대유적 아부심벨 신전 이전을 위한 기금모금 우표를 판매하고 있었다.당시 어린나이임에도 이의 의미를 느끼고 우체국으로 달려가 우표를 사들고 오던 생각에 멈춘다.이로부터 40여년 흘러 원래 위치보다 65m 높은 나일호수 위로 옮겨진 아부심벨 신전과의 현지 만남은 감미롭기만 했다.

이 기금모금 운동은 1972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유산 조약이 통과되는 계기였다.이렇게 시작된 유네스코에 등재된 문화,자연 및 복합유산은 2019년 현재 167개국에 1121점에 이르고 있다.그런데,너도나도 등재되기를 바라는 이러한 찬란한 세계유산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 또 다른 농업유산이 숨어 있었음을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즉, 문명의 성쇠를 가르는 식료를 조달하는 농업시스템이었다.

▲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된 전남보성차밭
▲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된 전남보성차밭



이러한 때에,2002년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에서 지속가능한 개발에 관한 정상회의에서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세계중요농업유산제도를 제창한다.이에 2004년 FAO는 최초로 중국 청전현의 벼-물고기 농법,필리핀의 이프가오 다락논,페루의 안데스농업,칠레의 칠로에 농업시스템,알제리아와 튜니지아의 오아시스 농업 등을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선정한다.이후 2019년 현재까지 21개국에 57개 지역이 등재된다.말하자면,21세기에 인류문명의 또 하나의 모습으로 세계중요농업유산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이처럼 짧은 역사를 지닌 농업유산을 설명하려 하면 ‘그게 뭐지,유네스코의 세계유산과는 뭐가 다르지’ 하는 질문을 받곤 한다.

간단히 말하면, 농업유산은 기존의 세계유산의 정적인 모습과는 달리 변화를 따라가는 유산, 진화하는 유산으로 지속가능한 농업을 구현하는 살아있는 유산이다.즉,전통적 농법을 행하고 농업구조물이 존재하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이를 유지·관리하는 사람들과의 하나된 시스템이다.이미 사람의 손을 떠나 이용되지 않거나,방치된다면 그것은 이미 농업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 우리나라도 2013년 이래 전남 청산도의 구들장논을 비롯하여 4개의 세계중요농업유산과 15개의 국가중요농어업유산을 갖고 있다.이제 머지않아 우리의 국가농업유산 중에서 또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속속 재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세계농업유산은 그만두고라도 국가차원의 농업유산 마저 없는 강원도를 바라보는 마음은 편치 않다.사실 그간 강원도가 농업유산으로 지정받기 위해 다소의 노력을 해오긴 해왔다.그러나 산과 바다 그리고 평야지대를 지닌 우리와는 관계가 먼 것인지,아니면 발굴이 덜 된 것인지 등을 살펴볼 필요성을 느꼈다.이에 전국의 19개소의 농어업유산 모든 지역과 인근국인 일본과 중국,필리핀 그리고 안데스의 세계중요농업유산지역 등 28개 지역을 찾아 이모저모를 살폈다.

▲ 2014년 우리최초로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된 전남 청산도 마을
▲ 2014년 우리최초로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된 전남 청산도 마을



수백 년을 이어 오는 물고기농법,대규모의 대추나무와 뽕나무밭,거대한 다락논,유목,염전,산지농업,갯벌의 낙지와 꼬막잡이,지협에서의 멸치잡이,해녀,화산섬 농업,대나무와 산수유나무 숲,인삼농업,금강송 숲,독특한 관개시스템,그리고 경관이 우수한 전통차밭 등의 독특한 농업유산은 그야말로 인류문명의 발전시켜 온 말없는 후견자였다.그리고 방문지 여기저기에 농업유산 등재를 알리는 상징물이나 안내판은 다름 아닌 그들의 높은 자긍심이자 정체성이었다.

방문지의 어느 농업유산을 막론하고 그곳은 지역주민의 생계유지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으며,생물다양성을 유지하고,전통적인 농법과 기술,문화가치와 뛰어난 경관 등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이는 다름 아닌 농어업유산의 선정기준이었다.21세기에 들어와 시작된 제도로 각국은 서서히 관심을 보이고 있다.지난 봄에 중국 산동성의 농업관련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하는 나를 보고 미국에는 왜 농업유산으로 등재된 것이 없는가라는 질문을 켈리포니아 주립대 교수로부터 받았다.이는 이 제도에 대한 세계적인 인식이 아직 낮음을 말해줌이었다.그러나 향후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처럼 농업유산도 국제적인 가치의 인식도가 높아져 그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 국가중요어업유산인 경남 남해의 죽방렴
▲ 국가중요어업유산인 경남 남해의 죽방렴



아직 등재된 농업유산이 없는 강원도이지만,우리만이 갖는 독특한 농어업시스템이 없을 리 없다.이제부터 찾아 나간다면 우리지역의 높은 신뢰성과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고 주민들에게는 정체성과 자긍심에 긍정적인 반향이 오리라 믿고 있다.동시에 농업유산 등재를 위한 주민들의 노력과 협력은 농촌에 활기를 불어넣었던 새마을운동과 신농어촌건설운동에 이은 새로운 농촌개발 운동의 하나라고 평가받는 이유이다.



전운성 강원대 농업자원경제학과 명예교수

△강원대 농학과 졸업△고려대 농경제학 석사△일본 큐슈대학 농경제학 박사△전 한국농업사학회 회장△전 미국 예일대학 농민연구소 객원교수△아태아프리카원장△농업기술실용화재단 초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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