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진범으로 검거돼 20년간 수형생활을 한 윤모(검거 당시 22) 씨가 결백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과거 억울한 누명을 썼던 사람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경찰의 강압 수사에 못 이겨 처벌을 감수한 채 허위자백을 했던 이들은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후유증으로 숨지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1990년 12월 17일 화성 9차 사건의 피해자 김모(13) 양을 살해한 용의자로 윤모(19) 군을 검거, 자백을 받아냈다고 밝혔다.윤 군은 순간적인 성적 충동을 해소하기 위해 김 양을 추행하려 했으나 우발적으로 살해에 이르렀다고 진술했다.그러나 윤 군은 현장검증에서 “모든 자백은 경찰이 시켜서 했다”며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다.

1990년 12월 18일 화성 9차 사건의 용의자로 조사받은 차모(당시 38) 씨가 화성 병점역 부근 열차 건널목에서 기차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이어 1991년 4월 17일에는 화성 10차 사건과 관련한 수사대상자인 장모(당시 33) 씨가 오산의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소설이나 다름없는 황당한 제보로 인해 경찰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고, 그 후유증으로 숨진 사람도 있다.1997년 2월 10일 김모(당시 45) 씨가 수원 자택에서 숨져 있는 것을 아내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당시 제보는 “꿈속에서 화성 사건의 범인으로 김 씨라는 이름을 봤다”는 등 황당한 내용이었으나 경찰은 이를 근거로 3달에 걸쳐 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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