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오래된 마을에 깃든 이야기, 예술로 되살아나다

■ 문화도시재생사업 ‘약사무니읽기’
터무니맹글 주관 공공예술 축제
춘천 약사명동 빈집·상가 활용
60년된 가옥서 주민 초상화 전시
마을 곳곳 작품·일러스트 눈길

김여진 beatle@kado.net 2019년 10월 21일 월요일 21 면
▲ 지난 19일 약사천 일대에서 열린 ‘약사무니읽기’ 축제 현장.
▲ 지난 19일 약사천 일대에서 열린 ‘약사무니읽기’ 축제 현장.


“풀냄새가 거짓말처럼 생생한 곳/우리는 동시에 쓸쓸해진다/오늘은 인형처럼 걸어다닐래”-‘약사時집’ 중 윤한,‘모델하우스’

“눈을 감았다 뜰 때 마다 다른 하늘이다/모퉁이를 돌때마다 새로운 집들은 자란다”-‘약사時집’ 중 최록,‘고개를 드는 집’



춘천의 약사명동 마을 곳곳을 눈과 귀,그리고 발로 읽는다.

동네 아이들은 골목길 곳곳에 숨은 작은 보물들을 찾아 뛰어다니고,상인들은 오랜만에 붐비는 마을길 앞에 나와 앉아 가을볕을 함께 즐겼다.

약사명동 마을에 깃든 이야기들을 문화와 예술로 소개하는 ‘약사무니읽기’ 축제가 지난 19일 약사천 일대에서 펼쳐졌다.문화기획단체 ‘일시정지시네마’와 예술가그룹 ‘예술밭사이로’가 함께 만든 ‘터무니맹글’이 주관한 행사로 2019 문화적 도시재생사업 ‘도시를 잇는 터무니’의 일환으로 열린 공공예술 프로젝트다.지난 6월 시작된 프로젝트의 목표는 약사명동(옛 지명 약사리)의 옛 정취에서 마을의 매력을 찾고 활기를 불어넣자는 것.풍물시장 이전과 아파트 단지 건설 후 외로운 섬처럼 떨어져 낙후된 이 곳을 되살리기 위한 아이디어들이 축제 곳곳에서 확인됐다.

먼저 행사마다 으레 등장하는 현수막을 없앴다.한번 쓰고 버려지는 현수막 대신 광목천에 최덕화 작가가 작업한 패턴들이 곳곳에 꾸며졌다.집 창틀,대문,실개천 같은 곳에서 영감받은 무늬들이다.광목천은 방석이나 주머니로 만들어져 주민들에게 나눠질 예정이다.

▲ 신대엽 작가의 마을주민 초상화작품.
▲ 신대엽 작가의 마을주민 초상화작품.


신대엽 작가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 전시회를 열었다.지어진지 60년 넘은 오래된 가옥이 전시장 ‘터무니창작소’로 탈바꿈,마을주민들의 정겨운 초상화가 31일까지 전시된다.집 앞에서 고추를 말리며 앉아 있는 어르신 등 약사리 고개의 일상이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졌다.모델이 된 마을 주민들도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이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다 다시 돌아온 이경아 씨도 주인공이 됐다.이 씨는 “저희 3대가 그림 한 폭에 그려져 신기하고,우리 동네가 멋지게 변해 가슴 벅차다”며 “친정엄마,딸과 함께 동네를 둘러보며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이 씨 딸 이수민 양도 자신이 그려진 그림을 보며 사인펜으로 그림일기를 썼다.

▲ 마을상점으로 만든 배지 굿즈.
▲ 마을상점으로 만든 배지 굿즈.


‘사람점빵’은 동네 상인들의 점포를 방문,이곳 이야기를 직접 듣도록 꾸며졌다.‘중앙미싱’,‘의봉이발관’ 등 동네가게의 문이 활짝 열렸다.김진환 한미사 미제매니아 대표와 그의 여동생은 “이 동네는 장사가 잘되다가 4차선이 생기면서 손님이 끊긴지 오래됐다.행사로 활기가 돋으니 상권 활성화도 기대된다”고 했다.

마을 빈집에는 새로운 이름이 붙여졌다.일명 ‘약사時집’.빈집에 문학가들이 이름과 시를 짓고 조형적으로 풀어낸 곳들이다.빈집 앞에는 최록,강혜윤,윤한 작가의 시가 쓰인 진짜 ‘시집’이 놓여 문학적 감성을 더했다.11월 철거예정이던 ‘움직이는 집’은 이번 축제 소식을 들은 집 주인이 철거 시기를 늦추기도 했다고.

▲ 배요한 작가가 참여한 약사빛.
▲ 배요한 작가가 참여한 약사빛.


마을길을 걷다보면 오래된 벽 모서리나 지붕 위,나무 사이같은 자투리 공간에 아기자기한 색유리작품이,나무 일러스트가 불쑥 나타난다.평범한 공간과 오래된 사물들을 활용한 예술가들의 작업물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동네책방 ‘서툰책방’,‘책방마실’,‘있는 그대로’는 일일책방 ‘약사서적’을 열었고,밴드‘모던다락방’의 공연도 약사천을 울렸다.마을 일대는 주민과 외부 방문객들이 자연스레 어우러졌다.김선녀(퇴계동) 씨는 “남편과 지나가다 와봤는데 평소와 분위기가 다르고 독특한 기획이 많아 재밌다”고 말했다.

작품들은 비바람에 휩쓸려가거나 누군가 떼어가지 않는 한,마을에 남아 방문객들을 맞는다.터무니맹글은 다음 기획도 살짝 소개했다.아파트단지 건설현장에 ‘서대문형무소 춘천지소’가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주목,내년 초 이를 주제로 한 전시를 진행할 예정이다.김영훈 터무니맹글 아트디렉터는 “버려지고 쓸모없는 것들을 의미있게 바라보고,오래된 것에서 특별한 가치를 발견하도록 기획했다”고 전했다.

김여진·한승미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http://www.kado.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