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칠 작가·전 철원부군수

▲ 김영칠 작가·전 철원부군수
▲ 김영칠 작가·전 철원부군수
어떤 사람이 내게 물었다.“늦은 연세에 공자,맹자는 왜 배우시나요?” 갑자기 묻는 말이라 당황해서 얼른 대답이 안 나왔다.그도 내가 우물쭈물하니까 미안했던지 “제가 그냥 농담으로 물은 거예요.하 하 하” 엉겁결에 나도 껄껄 웃었다.그런데 암만 생각해 봐도 ‘정말 내가 왜 이 나이에 고전을 배우는 것인가?’ 그럴듯한 답변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직장에 매여 반생을 보낸 뒤,이제는 강호로 물러 나와 구름이나 벗 삼는 어옹이 된지 오래다.퇴직자들의 노후 삶이란 것이 다 비슷해서,대부분 연금에나 의존하며 나머지 인생을 보낸다.끈 떨어진 연(鳶) 신세가 되고 보니,찾아주는 사람도 없고 알아주는 이도 거의 없다.군대 가면 사회에서의 일을 싹 잊으라고 하는데,그건 과거에 취하여 우쭐대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이다.퇴직자도 지난 날 잘 나가던 때를 떠 올리며 현재를 잊으려 하는 경우가 없지 않은데 내 경험으로 볼 때,그런 몽상은 빨리,그리고 깡그리 망각의 주머니에 넣는 편이 늘그막의 정신건강을 위해 좋을 것 같다.

요즘 열심히 움직이는 분야는 문학 활동과 인문학 공부다.특히 고전 공부는 들을수록 흥미를 느낀다.‘왜 고전을 배우느냐?’하는 질문은,사실 자문자답이나 다름없다.왜냐하면 이 질문을 한 이도 나와 같이 고전을 배우는 분으로,그 중요성과 필요성을 교감한 사이이기 때문이다.우리가 비록 늦은 나이에 옛 학문을 배우지만,그 가르침은 이미 수 천 년 동안 알게 모르게 우리 정신문화의 뿌리가 되어왔다.

고전을 배우면서 새삼 놀라는 것은,가르침의 순서와 체계의 완벽성이다.가르침은 단순히 말 성찬에 그치지 않고,실제의 세상사와 일상생활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인격함양과 학문연마는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입신출세와 세상 다스림을 위해서는 어떤 학문을 어떻게 갈고닦아야 하는지?나아가 하늘과 인간은 어떤 관계이며,천지조화와 우주섭리는 무슨 이치가 숨어있는지? 등등.

‘이런 고등학문을 왜 나는 진작에 가까이 할 수 없었나?제대로 배운 게 없으면서,다 아는 것처럼 자신과 남을 속이고 살아온 내 인생이 너무 부끄럽지 않은가?’ 후회막급일 뿐이다.너무 늦게 배우면서 느끼는 뉘우침과 한탄,이것은 뒤늦게 배우는 것(晩學)이 아니라 차라리 순서를 어기고 거꾸로 배우는 것(逆學)이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든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인생이란 흠결을 숙명으로 지고 난 존재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 애써 자위도 해본다.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공부자(孔夫子)의 학문 자세를 보고 용기를 얻는다.

공부자가 ‘주역(周易)’을 처음 접한 것은 그의 나이 48세 때였다 한다.그는 시장에 불쏘시개감으로 팔려나온 죽간 조각을 발견하고,그 엄청난 비기를 밝혀내기 위하여 ‘위편삼절(韋編三絶)’의 노력을 기울였다.후세 사람들이 역경의 내용을 쉽게 익힐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그의 연구 덕분이라 한다.인류의 대 성인도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하셨는데,하물며 나 같은 범부에게 늦고 이르고가 가당키나 한 것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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