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상으로는 말이 안되는 듯하지만,일정한 해석의 과정을 거쳤을 때 본래의 의미가 드러나는 것을 ‘역설(paradox)’이라고 한다.사전적으로는 ‘참된 명제와 모순되는 결론을 낳은 추론(推論)’이라고 풀이한다.역설은 표현에 스스로의 모순을 안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그래서 시인들은 역설을 시어에 담아 또다른 감동을 준다.유치환 시인의 ‘소리없는 아우성’김영랑 시인의 ‘찬란한 슬픔의 봄’ 조지훈 시인의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가 대표적이다.

이렇듯 역설은 기본적으로 모순을 지니고 있다.여기서 모순(矛盾)은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을 이른다.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矛)과 어떤 창도 막을 수 있는 방패(盾)가 존재한다고 했으니 이를 모순이라고 한다.그런데 역설은 모순을 통해 새로운 인식체계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다양한 미디어 시대는 상상을 초월한 각종 정보의 쓰나미를 불러왔다.엄청난 정보속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정말 말도 안되는 모순이 가득한 가짜뉴스들이 거침없이 돌아다니고 있다.한편으로 이를 제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지만,알권리와 언론자유라는 기본권 앞에서는 힘을 잃고 만다.그렇다고 그대로 놔두자니 가짜뉴스가 우리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적지 않다.그야말로 딜레마,모순이다.

요즘 SNS에는 일부 보수층에서 회자되는 말 중에 “우리나라가 공산화냐 민주화냐의 갈림길에 있다”는 주장이 있다.민주주의와 개인의 인권이 더욱 중시되는 시대에 ‘공산와냐 민주화냐’라는 극단적 주장이 비록 일부겠지만,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또한 모순이 아닐 수 없다.급변하는 국제질서에 조응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더욱 심화발전시키는 시대에 ‘공산화’를 걱정하는 아이러니라니!

민주주의의 확장은 국가주의라는 전제주의를 극복하는 과정이다.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신장되는 상황에서 공산화를 걱정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국가주의로의 향수를 잊지 못하는 것과 다름없다.국가주의야말로 반민주적이요,반인권적 아닌가.문제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를 이용하는 정치인이다.우리사회의 모순이자 역설이다.

천남수 사회조사연구소장 chonns@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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