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남 논설고문

 김운용 IOC위원은 국내외 스포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거물이다. 현직 국회의원에 대한태권도협회회장 대한체육회장을 역임했고 국기원 원장으로 태권도의 세계화를 주도하면서 세계태권도연맹회장에도 취임했다. 18년간 IOC위원을 지내는 동안 IOC부위원장에 당선돼 4년 임기를 마쳤고 이번에 또 부위원장 감투를 썼으니 한국 체육계의 대부요 지구촌 스포츠계의 거물이라는 칭호가 오히려 가벼울 정도다. 그런 김씨가 2010동계올림픽 평창 유치단과 함께 IOC총회가 열리는 프라하에 간 것은 강원도민에게 천군만마보다 큰 힘이었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 적어도 제3세계 IOC위원들의 표심을 쥐락펴락 할 것으로 믿어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씨는 처음부터 믿을만한 도끼가 아니였다. 지난 4월 봄바람에 평창의 꿈이 부풀던 때 김씨는 IOC부위원장이 되고싶은 마음을 편지에 담아 세계 곳곳 IOC위원들에게 발송했다. 김씨의 영향력을 아는 IOC위원들은 의아했을 것이다. 평창의 영광과 김운용의 영예를 한꺼번에 안겨주기 어렵다는 IOC사정을 뻔히 알면서 "나를 IOC부위원장으로 뽑아달라"는 편지를 보낸 것이 혹시 "평창은 아냐, 평창은 다음에도 기회가 있으니까" 하는 뜻은 아닐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투표에 임박해서 "평창을 찍지 말라"는 김씨의 메시지를 받고나서 그들은 "아하, 평창에 문제가 있구나" 또는 "그래, 늦게 뛰어든 평창은 다음에 기회를 주어도 돼" 하면서 '예스 평창'을 '씨 유 어게인(See you again)'으로 바꿨는지도 모른다.
 김씨가 즐겨쓰는 말 처럼 'IOC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나같은 사람이 '말도 안되는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엊그제 국회 2010동계올림픽 평창유치 특위에 나와 '프라하의 증언'을 한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김씨가 소설이라고 우기는 대목의 '실제상황'이 불을 보는 것처럼 분명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러고 나니 당나라 덕종 때 재상 '노기의 명함'고사와 진서 은호전(晋書 殷浩傳)에 나오는 '홍교(洪喬)에게 맡긴 편지'얘기가 떠올라 새로운 '소설'로 짜깁기 된다. 노기는 당나라 덕종 때 재상으로 생김새가 추악하고 속이 음험한 사람이었다고 전해진다. 그 노기가 하급관리 시절 길에서 풍성이란 선비를 만났는데 벼슬길에도 오르지 못하고 책만 읽는 풍성을 골려주려고 갑자기 달려들어 주머니를 뒤졌단다. 노기가 풍성의 주머니에서 먹 한자루를 꺼내 내던지며 조롱하자 이번엔 풍성이 노기의 주머니를 뒤져 백장이 넘는 명함을 꺼냈다. 명함의 주인들은 모두 권력층에 붙어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었다. 풍성이 명함을 돌려주며 노기를 비웃었단다. "나는 먹이나 넣고 다니는 서생이지만 당신은 백장도 넘는 명함을 공명과 이욕의 사슬처럼 감고 다니는구려" 이 고사에서 벼슬과 명예를 얻기에 혈안이 된 사람을 명리객(名利客) 또는 명리노(名利奴)라 부르게 되었다.
 진나라에 은흠이라는 사람은 자가 홍교(洪喬)인데 한 고을의 태수를 지내면서 엉뚱한 기행(奇行)을 멋으로 알고 일삼았다고 한다. 좋은 말로 하면 낭만인지도 모르지만 공인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하고 책임감도 없었던 것 같다. 그가 태수 자리에서 밀려나 귀향길에 오르자 많은 사람들이 고향에 보내는 편지를 맡겼는데 어느 나루터에서 그는 귀찮은 편지들을 모두 강에 던져버렸다고 한다. "내가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가는 길이지 이따위 편지나 배달하러 가는 건가. 가라앉든 떠내려가든 내 알바 아니로다" 그래서 '홍교에게 부친 편지(誤付洪喬)'는 믿을 수 없는 부탁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강원도민들은 결국 명리객 노기에게 '홍교에 편지맡기듯' 평창의 꿈을 실었다는 허탈감을 주체하지 못한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것이 아니라 찜찜한 원군을 '그래도 설마'하고 믿었다가 기어이 해코지 당한 느낌이다. 그런데도 정작 미안해 해야 할 김씨는 당당하다. 자신의 영향력 덕분에 그만큼 표가 나왔다는 것이다. 김씨의 말대로라면 강원도민이 그동안 평창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쏟아부은 열정과 유치위원회의 피땀어린 노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가시나무를 짊어지고 와서 벌을 받겠다(負荊請罪)고 해도 오히려 모자랄 판에 공(功)을 늘어놓고 있으니 후안무치도 이쯤 되면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다. 한 술 더 떠 "수 틀리면 IOC로 하여금 평창유치위를 조사하도록 하겠다"는 엄포까지 놓고 있다. 국익 팔아 개인의 영예를 얻은 '명리객'이 본색을 드러낸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새가 죽을 땐 그 울음이 처량하고 사람이 죽음에 이르면 그 말이 착하다 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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