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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 동학혁명군 전적지 국가사적지 지정 필요

최낙인 홍천우체국장·동학혁명 유족회 이사

데스크 2019년 10월 29일 화요일 8 면
▲ 최낙인 홍천우체국장·동학혁명 유족회 이사
▲ 최낙인 홍천우체국장·동학혁명 유족회 이사
최근 종영된 드라마 ‘녹두꽃’으로 동학운동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증가했으나 홍천군 서석면 풍암리가 우리나라 동학농민군 전투의 최대 분기점이었다는 사실은 강원도민조차 잘 알지 못하는 듯하다.홍천군 서석면 풍암리 자작고개 동학농민군 전적지는 풍암리 주민 등 1000여명이라는 많은 희생자를 낸 강원도 동학농민군 최대 격전지로 매년 10월 23일 위령제를 개최하고 있다.1946년 홍천 농민군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위령제가 처음 열린 곳이기도 하다.일반인에게 생소한 풍암리 동학혁명 농민군 전투는 1894년 전라도,충청도 등지에서 몰려온 동학 혁명군 1000여명이 관군 수천여명을 대상으로 싸운 강원도 최대의 전투로 풍암리에서 마지막까지 결사항쟁 했으나 끝내 실패,서울로 올라가는 기회를 상실했다.

홍천 풍암리 자작고개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적지라는 것은 동학혁명 후 100년이 지나서야 일부 역사학자들의 관심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진압군 입장에서 승자의 공적을 내세우려는 자작고개 동학농민군 전투에 대한 기록은 갑오실기,동비토록,임영토비소록,갑오군정실기,동학농민혁명국역총서 등에 남아있지만 당시 동학농민군이나 지역주민 입장에서 기록한 패자의 기록물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이는 전쟁이 격화되자 유격대장 차기석이 이끄는 주요 동학농민군은 홍천 내면으로 먼저 퇴각했고 이후 각 지역에서 모인 동학농민군 대부분이 무명용사로 전사자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가 없었으니 사망자의 신원 또한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또 ‘홍천 서석 일대는 사람의 자취가 영원히 끊어졌다’라는 맹영재의 보고서처럼 풍암리 주민들은 동학농민군에게 협조했다는 죄목으로 남녀노소할 것 없이 진압군의 화풀이 대상으로 몰살당하다보니 패자의 입장을 기록할 수 없었을 것이다.당시 동학농민군 희생 규모,전투상황,유해의 참혹상,지역주민 학살장면 등 패자의 참혹한 실상을 보여주는 것은 몇몇 후손의 증언뿐이다.

몇 년 전 정부는 동학 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 심의위원회를 설치해 대대적으로 참여자의 명예회복 및 유족 등록을 추진했으나 풍암리 자작고개 동학농민군 전투참여자 후손 등록은 7세대로 미미한 실정이다.후손들이 선조의 동학농민군 참여 사실을 모르거나 혹 알고 있다해도 후손들의 노령화 또는 이주로 인한 연락두절 등 여러 사유가 있을 듯하다.지난 2월 정부는 근대 민주주의의 뿌리이자 애국애족 정신의 표상인 동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1894년 5월 11일 황토현 전승일을 동학 농민혁명 국가기념일로 제정했다.그러나 동학 농민혁명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역사 인식이 부족한 일부 사람은 풍암리 지역을 단순히 전사자 무덤에 불과하다는 편협한 시각으로 보고 있다.

낡은 봉건제도를 개혁해 사람답게 살아보고자 하는 농민혁명군의 열망이 생생히 숨쉬고 있는 풍암리 동학혁명 농민군 전투의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알리고,주요 전적지인 풍암리 자작고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현재 강원도 기념물 제25호로 관리되는 동학혁명군 위령탑과 그 일대를 국가 사적지로 승격시켜야 한다.이를 위해 홍천군과 문화원,향토 사학자들의 지속적인 연구와 지원이 필요하며 강원도민 스스로 자랑스러운 역사 사적지를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과 열정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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