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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단상]망국유민(亡國遺民)의 슬픈 발자취 카자흐스탄을 가다

박기병 전 강원민방 사장

데스크 2019년 10월 31일 목요일 10 면
▲ 박기병 전 강원민방 사장
▲ 박기병 전 강원민방 사장
중견 언론인들의 친목모임 관훈클럽 회원 50여명은 최근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을 다녀왔다.중앙아시아 한인의 역사를 주제로 한 세미나와 고려인이 처음 강제이주된 우슈토베라는 곳을 답사하는 일정이었다.

이번 답사에서 우선 관심을 끈 것은 1937년 9월 소련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연해주에서 번영하던 약 18만명의 고려인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한 전후의 생활상이었다.우리 동포가 듣도 보도 못한 머나먼 이국 땅에서 뿌리내린 역사는 눈물 없이는 말할 수 없는 슬픈 발자취였다.고려인 강제이주조치는 소수민족 분산과 중앙아시아 집단농장화 추진의 심산도 있었지만 표면적 이유는 고려인들이 일본 침략의 앞잡이 노릇을 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역사를 연구한 고려인 3세 강 게오르기 박사(알마티 국립대 교수)는 세미나 주제발표를 통해 고려인 강제이주 당시를 자세히 설명했다.그의 설명에 따르면 “고려인들은 창문이 없고 지붕이 구멍나고 자동 브레이크조차 없는 화물차에 짐짝처럼 실려왔다”는 것이다.더구나 “가족이 여러 차량으로 흩어져 이산가족이 많이 생겼고 수송 중 전염병이 퍼져 아이들이 60% 이상 사망하는 등 아비규환의 지옥을 연상시키는 비참한 죽음의 행렬”이었고 수천 명의 독립운동가와 지식인들은 의심스럽다는 이유만으로 취조당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일행의 첫 방문지는 고려인이 강제이주로 처음 하차한 우수토베 기차역이었다.역 건물들은 많이 변했지만 연해주부터 6500㎞에 이르는 철로는 그대로 깔려 있었다.이곳에 내린 고려인들은 2㎞쯤 떨어진 교외의 바슈토베 언덕으로 이동,영하 40도 안팎의 추위를 견디면서 토굴을 파고 움막을 지어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지금은 사막에 가까운 황량한 들판이지만 땅굴의 흔적이 있었는데 여기서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바슈토베 언덕에는 이곳에서 별세한 초기 고려인의 공동묘지가 있다.200여개의 무덤이 모여 있는데 이런 곳이 5군데 있다고 한다.비석에 사진을 넣어 만든 무덤을 하나하나 훑어봤다.이역만리 타국에서 온갖 한을 간직한 채 눈감았을 이들을 생각하니 마음 아팠다.

80년이 지난 지금 고려인은 약 10여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0.6%에 불과하지만 상원과 하원의원 각 1명을 비롯해 언론인,의사,학자,변호사,기업인 등 지배층에 많이 진출해 있고 고려인이 정착해 살았던 8개 도시와 15개 마을 거리를 저명한 고려인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고 전한다.

마지막으로 판필로바 28인 공원을 둘러봤다.제2차세계대전 때 독일군 탱크 50대와 맞서 저항하다 전사한 316보병사단 군인 28인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생존 때 모습을 동상으로 건립해 놓은 곳이다.이 공원을 둘러보면서 문득 6·25전쟁 당시 춘천방어전승을 기념하기 위해 소양강변에 조성한 춘천대첩공원이 너무도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어 착잡한 심정을 금할 길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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