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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강하의 대중문화평론]AI,판타지,오컬트의 기이한 동거

도깨비·귀신·초자연·미스터리… AI시대 흥행수표가 되다
판타지 등 최첨단시대 역행 소재
드라마 소재로 등장해 잇단 흥행
영화계 ‘오컬트’물 꾸준히 제작
검은사제들·곡성 등 다양성 확대

데스크 2019년 11월 02일 토요일 12 면


미래는 어떻게 될까? 미래가 궁금할 때 미래학자,과학자들의 말에 귀를 쫑긋 세울 수밖에 없다.전문가들의 예측에 더해,미래를 예견하는 영화와 드라마를 볼 때면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인간보다 뛰어난 기계의 출현으로,기계들이 서서히 사람들의 자리를 하나둘씩 차지하고,AI 판사,AI 의사의 도입이 멀지 않았다는 얘기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현실에 기반한 과학적 분석과 전망은 우울하거나 세련된 미래로 연결되곤 한다.

누구나 A.I.비서 하나쯤은 두고 사는 게 어렵지 않아 보이는 시대로 성큼성큼 다가가고 있는 것 같다.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일상화된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맞춤동영상을 추천해주고,책과 채널,음식점을 소개해 준다.때로 심심할 때 말벗이 되어주기도 한다.일정을 꼼꼼하게 체크해주고,바이오리듬을 점검해서 건강까지 살뜰히 관리해준다.아침부터 저녁까지 들고 다니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나는 너를 다 알고 있어.너의 미래까지도.’라고 말을 거는 것 같기도 하다.한창 유행하던 ‘지속 가능한 미래’라는 말 대신에 ‘예측 가능한 미래’가 그 자리를 차지할 듯싶다.

이런 흐름에 역행하는 현상의 출현이 흥미롭다.첨단 과학의 시대에 비과학적 소재와 이야기들의 흥행 현상이 그것이다.최근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나 드라마를 유심히 살펴보면,판타지와 오컬트 소재가 적지 않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귀신을 보는 여자와 원혼들이 주인공이었던 ‘주군의 태양’(2013),도깨비와 기억상실 저승사자,귀신들의 화려한 콜라보인 ‘도깨비’(2016),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신과 함께’(2018) 시리즈,모던한 저승사자가 출연한 ‘호텔 델루나’(2019) 는 비과학적인 세상,일부 사람들의 믿음 안에서나 존재했던 고스트들을 현실 세계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귀신과 신들이 만들어내는 세상,윤회,운명 등의 소재는 사람들의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는 중이다.

귀신과 인간의 소통과 화해,로맨틱하고 화사한 분위기를 가진 판타지와는 다소 구별된 오컬트(occult) 소재의 영화도 있다.숨은,신비스러운,불가해한,초자연적 등의 의미를 가진 오컬트는 스릴러,미스터리,호러물 등의 장르로 꾸준히 제작되었다.다소 공포스럽고 괴이한 오컬트를 소재로 한 외화 ‘오멘’ 시리즈,‘엑소시스트’시리즈 등의 영화는 확장성은 적지만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작품들이다.달달하고 로맨틱한 고스트들과의 밀당이 아니라,그야말로 공포와 비명으로 가득한 영화에서 사람들은 관심의 끈을 놓지 못한다.

국내에서 오컬트라는 낯선 장르의 상업적 성공은 ‘검은 사제들’(2015)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사제가 귀신을 잡는 이야기,라틴어 기도문과 사제의 퇴마 의식에 한국형 무속까지 결합한 이 영화는 무려 540만 관객을 동원하며 그 가능성을 입증했다.이후,영화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다양한 평론과 해석을 이끌어냈던 ‘곡성’(2016)과 ‘사바하’(2019),화려한 캐스팅으로 눈길을 끌었던 ‘사자’(2019)의 제작은 영화의 다양성을 확대했다는 평가로 이어졌다.이런 흐름은 실험적인 몇 번의 실험적인 영화 제작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안정적인 시청률을 확보한 종편이나 케이블tv,안정적인 구독자를 확보한 유튜브(YouTube) 채널은 장르의 다양성을 확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A.I.와 오컬트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 것일까? 방법은 다르지만 과학자와 사제는 미래를 예측하는 전문가라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가진다.그들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상에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설명한다.양 극단의 자리에 있는 듯 보이지만,이들은 일종의 ‘과학’으로서의 공통된 위상을 갖는다.과학이 좀더 세련되고 정교해질수록 고대의 일부 과학은 미신으로 지위가 하락했지만,이들의 사회적 기능은 크게 다르지 않다.빅데이터에 기반한 인공지능,고대의 축적된 데이터와 통계로 만들어진 점성술(천문해석학),명리학,수상학과 관상학,이들의 차이는 멀지 않아 보인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소개하는 맞춤 동영상을 보고 길을 묻고,추천 도서를 구입하지만,때로 팔자를 탓하고,운명이 궁금해서 손바닥을 내밀고,인터넷의 별자리 운세를 클릭하기도 한다.인공지능과 판타지,오컬트,미스터리가 동거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어쩌면 인간의 미래는 그 누구도 섣불리 진단하기 어려운 그야말로 오묘한 어떤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유강하 강원대 교수]

중국고전문학·신화를 전공했다.지금은 강원대학교에서 인문예술치료를 연구하고 있다.지은 책으로 ‘아름다움,그 불멸의 이야기’,‘고전 다시 쓰기와 문화 리텔링’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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