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시절 고향 떠났다 IMF와 함께 귀농
1200평으로 시작 12만평 대농으로 성장
"밥맛 좋다는 얘기 들을때 가장 뿌듯"

▲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김광섭 회장은 귀농후 대농의 꿈을 이루며 행복한 농부이 삶을 살아가고 있다.
▲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김광섭 회장은 귀농후 대농의 꿈을 이루며 행복한 농부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강원도민일보 최훈 기자] 젊은 시절 고향을 떠났던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김광섭 회장은 IMF가 터진 1997년 도시생활을 뒤로 하고 강현면 물치리로 돌아왔다.

연로하신 아버지의 뒤를 이어 1200평 규모의 벼농사에 발을 들인 것이다.

IMF 이후 농업에 대한 채산성이 악화되면서 쌀농사를 포기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그는 재배면적을 늘려가며 6년 만에 농업소득을 3배 가까이 올렸다.

최신 농업기술을 적극적으로 습득하고 수용하고 앞서가며 전문농업경영인의 길로 들어섰다.

농업경영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경험을 쌓기 위해 농업과 관련한 교육과 세미나 등에 적극 참여하면서 쌀에서 희망을 찾아 나갔다.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WTO 출범 등으로 쌀 시장에 미래가 없다고 판단하던 때였어요. 외국 농업이 규모화, 기계화가 주를 이루던 시대였거든요. 트랙터, 콤바인 등의 농기계를 구입하고 농경지를 임차해서 재배면적을 늘려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1200평 규모로 시작했던 쌀농사는 이제 12만평 규모가 됐어요. 대농의 꿈을 이뤘죠. 그때나 지금이나 밥맛 좋다는 얘기를 들을 때 제일 뿌듯합니다.”

설악산 맑은 물에 해풍을 맞은 양양의 쌀을 믿고 해마다 직거래로 쌀을 주문하는 사람들이 많은 데에는 “눈 뜨면 논으로 출근하는 것으로 시작해 논에서 퇴근한다”는 그의 말처럼 특별한 비법보다는 열심히 농사를 짓는 성실함에 있다.

아흔아홉 번의 손길이 닿아야만 쌀 한 톨을 생산하는 만큼 농부의 피와 땀으로 지은 농사는 제값을 팔고 잘 파는 게 중요하다.인터넷 등의 채널을 이용한 홍보활동을 통해 직거래를 이어가는 자가판매 비중을 유지하기 위한 것도 바로 그 이유다.

성실한 생활과 영농경영에 앞장서면서 2002년부터는 물치리장을 맡아 일을 했으며 우리 쌀 알리기에 적극 나서면서 수확철마다 120포씩 어려운 이웃에 햅쌀을 나누는 일도 이어오고 있다.

김 회장은 2008년부터는 한국쌀전업농 양양군회장을 시작으로 강원도회장, 2016년부터는 중앙회장으로 선출돼 쌀산업 발전과 쌀전업농 권익 증대를 위해 애쓰고 있다.

전국에서 쌀 생산량이 가장 적은 강원도에서 최초로 중앙회장이 돼 의미가 남다르다.

“벌써 취임 4년차가 됐습니다. 1년에 11만㎞를 찍으면서 전국을 누볐어요. 농림축산식품부, 한국농어촌공사, 국회, 청와대까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곳이면 천리길을 마다하고 찾아가 목소리를 내고 정책제안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농업을 살리는 길은 농촌을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다.

쌀전업농중앙회장이자 현직 농부의 삶을 살고 있는 그는 항상 기술향상과 새로운 농법을 배우기 위해 애쓰며 끊임없이 노력하고 앞장서 2006년 군정발전 유공표창, 2012년에는 강원도농어업대상, 2013년에는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농사일이 힘들다고 생각 안 합니다. 저는 늘 일하는 게 즐겁고 농사는 노력한 만큼 수확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보람되고, 그만큼 떳떳하고 정직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제 곧 회장직도 마무리를 하게 되는데 앞으로는 더 좋은 쌀, 밥맛 좋은 쌀을 생산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죠. 농사짓다가 좋아하는 꽹과리도 치고,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강현면 농악대 상쇠인 김광섭 회장은 앞으로도 열심히 농사 짓고 꽹과리를 치며 이웃과 어울려 사는 행복한 농부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최 훈 choihoo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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