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국천왕은 즉위 13년 되던 해 스스로 실정(失政)을 토로하고 널리 인재를 구했다.정치를 그르치기는 쉽지만,실책을 스스로 인정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사태를 제대로 알면 수습하는 일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삼국사기’에 왕의 고해성사가 전하는데,총애하는 것에 따라 벼슬을 주고 덕이 없어도 관직을 맡으니,해독이 백성에게 미치고 왕실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지경이 된 것은 다 자신이 현명하지 못한 때문이라며 왕은 각 부처에 인재를 천거하도록 했다.이 때 안류(晏留)라는 이가 불려 나와 국정을 맡기려 하자 극구 사양했다.그는 자신이 용렬하고 우둔해 큰 정치를 맡을 그릇이 아니라며 다른 이를 추천한다.그가 을파소(乙巴素)인데 유리왕 때의 대신 을소(乙素)의 손자였다.그는 의지가 굳고 지혜와 사려가 깊으나 쓰이지 못하고 있다며 국정을 안정시키는 데 적임이라며 그를 밀었다.

자신은 사양하고 남에게 기회를 넘겼다고 해서 자사타천(自辭他薦)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임금은 널리 인재를 구했고,천거된 사람은 자신이 적임인가를 성찰하고 더 나은 이를 찾았다.이런 자기성찰과 등용의 기제가 작동한다면 정치가 원성의 대상이 되는 일이 적을 것이다.이런 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의 선순환이 아닐까.

왕은 신하와 왕실의 반대에도 불구 오히려 재상(宰相)으로 벼슬을 높여 힘을 실어주었다.과연 그는 정치를 바로 잡고 상벌을 신중히 함으로써 백성은 편안하고 나라안팎이 무사했다고 한다.왕은 다시 안류를 다시 불러 을파소를 얻어 나라를 안정시킨 것은 기회를 양보하고 인재를 추천한 그대의 공이라며 대사자(大使者)에 임명했다고 한다.

국론은 분열되고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다.국민의 원성이 높지만 누가 내 잘못이라는 고백은 들리지 않는다.오늘의 정국이 어쩌면 역사 속의 그날과 닮은 것은 아닐까.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인재 영입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그러나 나는 아니라며 양보하는 이는 적고,내가 필요하다며 버티는 자는 많으니 정치가 달라지기를 바라는 게 요원해 보인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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