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국제예술제 홍천서 첫 발
‘자유·관용 딜레마’ 시각예술 소화
어둡던 군사시설 문화공간 변신
도 출신·연고 작가 대거 참여
주민 30명 협력 프로젝트 눈길
도민-자연-세계 잇는 역할 집중

▲ 전시장으로 변신중인 탄약정비공장
▲ 전시장으로 변신중인 탄약정비공장


[강원도민일보 김여진 기자] ‘풀 메탈 자켓(Full Metal Jacket)’.

SF의 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만든 1987년도 작품으로 베트남 폐건물에서 벌어지는 사투가 처절하게 그려진다.적을 죽이는 살상무기로 다시 태어나면서 인간성을 잃어가는 신병들,폐허가 된 도심 등의 충격적 묘사를 통해 대표적인 반전 영화로 꼽힌다.M16소총에 들어가는 강력한 탄약의 이름이기도 한 ‘풀메탈자켓’이 2019년 강원도에서 ‘자유와 관용의 딜레마’를 시각예술로 풀어내는 예술제의 타이틀이 됐다.

6·25 전쟁 발발 70년을 앞두고 어둡고 침울했던 군사시설이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19일 홍천에서 첫 발을 떼는 강원국제예술제(영문명 Gangwon Triennale·강원트리엔날레).국내 최초 3년 주기 순회형 미술행사이자 홍천 탄약정비공장이라는 군사시설을 예술공원으로 바꾸는 국내 첫 시도다.



▲ 옛 홍천 탄약정비공장 모습
▲ 옛 홍천 탄약정비공장 모습

■ 강원작가전-홍천 예술공원화의 시작

홍천은 18개 시·군을 대상으로 한 공모 결과 첫 국제예술제 개최지로 낙점됐다.유치 초기부터 허필홍 군수의 유치 의지가 강했다.트리엔날레 형식의 예술제 특성상 올해 강원작가전을 시작으로 내년에는 ‘강원키즈트리엔날레’,3년차(2021년)차에는 ‘강원국제트리엔날레’가 열린다.

강원작가전은 주제전과 특별전으로 나뉘어 열린다.그 중심에 탄약정비공장이 있다.폭발 방호벽,컨베이어벨트와 탄약도장을 위한 공중회전 기계 등이 들어차 있던 구조물이다.제11기계화 보병사단 협조 아래 전시가 준비됐다.도 출신 및 연고 작가 14명이 설치,디지털 회화,슈퍼그래픽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통해 전쟁이 낳은 파국의 현장과 피해,폭력성을 감각적으로 제시하면서 순환과 희망의 메시지도 함께 풀어낼 예정이다.

홍천미술관에 마련되는 특별전에서는 ‘지난 바람과 연이은 볕’이라는 주제 아래 박수근 화백의 유화 작품 ‘노상의 사람들’과 ‘모자와 두 여인’ 등을 선보인다.전시장은 1956년 준공된 이래 홍천군청,홍천읍사무소,상하수도사업소로 쓰이다가 2013년 리모델링을 통해 미술관으로 탈바꿈,건물 자체가 역사다.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인정돼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곳이다.

지역 작가와 주민간 협력 프로젝트 ‘空-토기(土器·Pottery)’도 눈길을 끈다.홍천 출신 박대근 작가가 능평리 주민 30여명과 함께 보름간 진행했다.2t가량의 낱알을 걷어낸 볏짚을 땋아 인류 문명의 탄생을 상징하는 토기의 형상을 만들어냈다.김철호 능평리 이장은 “작품을 만들면서 주민들과 더욱 돈독해졌다.실제 작가가 되었다는 마음가짐으로 함께 했다”고 밝혔다.

▲ 변신중인 탄약정비공장 내부
▲ 변신중인 탄약정비공장 내부

■ 문화올림픽 유산 성공모델 될까

강원국제예술제는 2018평창동계올림픽의 핵심 문화유산이다.올림픽 비개최지역인 홍천군이,그 중에서도 다 쓰러져 가던 군사시설이,올림픽 유산과 대체 무슨 관련이 있겠냐고 묻는 이들이 많겠지만 예술제가 준비된 복잡한 과정을 들여다보면 이해할 수 있다.

강원국제예술제는 평창올림픽 유치 당시 제출한 비드파일에 따라 ‘비엔날레’로 시작했다.올림픽을 위해 강원도를 찾는 전세계 방문객들에게 문화의 우수성도 보여준다는 취지였다.하지만 올림픽이 끝난 후 운영 전반에 대한 고민을 피할 수 없었다.‘굳이 왜 계속 열어야 하느냐’는 근본적인 문제제기 부터 어렵게 확보한 전문인력과 개최경험 등 유무형의 문화올림픽 유산을 도 전역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방안을 꺼내어 설득해야 했다.강원도나 도의회 등의 관심도 올림픽 당시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식었다.올림픽 당시에도 전용 전시장이 없어 강릉 녹색체험도시 공간을 개조해 어렵게 치렀던 행사다.예술제는 도전역의 예술공원화라는 큰 틀에서 다시 시작했다.

▲ 박대근작가와 주민들의 협력프로젝트 작품
▲ 박대근작가와 주민들의 협력프로젝트 작품

그간의 비엔날레가 미술자체에 집중했다면 강원국제예술제는 영역을 확장한다.신지희 사업운영팀장은 “도민과 자연,세계를 잇는 매개 역할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했다.유휴공간 예술화도 이런 목표의 연장선상에 있다.그런 의미에서 강원국제예술제는 사실상 연중행사다.

김용민 총괄기획자는 “전시실과 야외공간 전체가 하나의 작품이 되도록 기획했다.분단이 일상화된 강원도,그 중에서도 대립을 상징하는 탄약공장을 기념비적 장소로 바꾸겠다는 의미를 담았다”며 “예술을 통해 대립을 완화하고 강원도가 처한 ‘분단’의 상황을 돌아보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김여진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