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이 ‘포테이토 클럽’으로
폐공장 현대무용의 무대로
탄약정비공장 벽화 ‘새 위장’
폐건물 활용 문화공간 재창조

[강원도민일보 김여진·한승미 기자] 평소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건물들이 몰라보게 ‘힙’해진다.40년 된 농협의 오랜 자재창고가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변신하고,10여년째 폐허처럼 웅크려 있던 공장에는 현대 무용을 보기 위한 젊은 관객들이 모여들었다.버려진 건물이 ‘힙플레이스’로 떠오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문화를 만나는 일이다.

▲ 평창 대관령 포테이토 클럽에 지역 아이들이 직접 만든 작품과 전문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 평창 대관령 포테이토 클럽에 지역 아이들이 직접 만든 작품과 전문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 농협 자재창고의 변신

평창의 ‘대관령 포테이토 클럽’은 지난 7월 문을 열었다.지은지 40년이 넘은 180평 규모의 대관령 원예농협 자재창고가 문화 예술플랫폼으로 거듭났다.대관령이 전국 씨감자 보급종의 주산지라는 점을 감안해 ‘감자’에서 이름을 따왔다.감자 농사와 관련된 농기계,자재 등이 쌓여있던 곳이 문화예술 교육 공간으로 바뀌었다.수행평가나 학부모 회의 등 공간이 필요한 지역 주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네트워킹 공간으로도 사용되고 있다.전시회도 진행중이다.

평창 지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 진로교육의 성과를 공유하는 자리다.지역 초·중등생 40여명의 작품들이 전시됐다.특수 인화약품 ‘시아노타입’과 필름 카메라,핀홀 카메라,천,아크릴 물감 등 흔치않은 재료들로 동네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을 형상화한 조형물이나 꿈꾸는 자신의 모습을 합판에 그려낸 아바타,청사진 등 100여점의 작품을 완성했다.

학생들을 지도한 박희자·고성·오제성·박지원,정문경·김병범 작가가 평창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사진,설치미술,영상 작품들도 함께 전시됐다.공간을 운영하는 강지현 대한스트릿컬처연맹 이사장은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대관령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춘 예술교육을 진행하고 있다.아이들과 지역주민 모두 예술에 가까워지는 것을 보며 대관령에 문화예술의 불씨가 지펴지는 것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 최근 춘천후평공단 옛 조은담배 건물에서 진행된 조성희아하댄스씨어터의 루미큐브 공연 모습.
▲ 최근 춘천후평공단 옛 조은담배 건물에서 진행된 조성희아하댄스씨어터의 루미큐브 공연 모습.

■ 폐공장과 현대무용의 만남

“비켜!”

차갑게 웅크려 있던 불꺼진 건물.10년 가까이 비어있는 춘천 후평일반산업단지 조은담배 옛 공장에 남자의 단말마가 울려퍼졌다.관객들 사이로 뛰어들어 온 남자를 시작으로 현대무용단 조성희아하댄스씨어터의 ‘루미큐브’ 공연이 시작됐다.폐건물 속에서 공간과 구조물 자체를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들여서 녹여 낸 시도다.무용수가 따라오라는 듯 고갯짓하는 방향으로 발길을 옮기면 전산,중고피씨 판매·매입,DVD 제작 같은 옛 간판들이 그대로 남아 관객들을 맞이했다.이곳은 영화 촬영 차 헐리우드 배우 메간 폭스가 찾아 주목받은 곳이기도 하다.

▲ 조성희아하댄스씨어터 ‘루미큐브’ 공연의 무대가 된 조은담배 내부.
▲ 조성희아하댄스씨어터 ‘루미큐브’ 공연의 무대가 된 조은담배 내부.
정해진 객석은 없다.차가운 벽과 좁은 길도 무용수와 관객들이 옮겨다니는 순서대로 무대가 됐다.감미로운 음악에 맞춰 이어지는 여성 독무,강렬한 여성듀오 공연,무도회장을 연상시키는 단체 무용 등 등 다양한 형식의 몸짓이 복도와 작은 방마다 옮겨다니며 펼쳐졌다.어느 새 광장처럼 보이는 넓은 공간에 모여 압도적인 군무로 공연을 마무리할 때까지 끊임없이 관객들은 공간과 소통했다.건물 외벽에도 화려한 조명이 입혀져 분위기를 끌어올렸다.일련의 흐름이 공연의 주제의식을 공간과 일치시키는 작업이었다.

공연이 진행된 닷새간 꽉 들어찬 관객들은 “반듯한 공간보다 불편하지만 굴곡진 인생을 투영할 수 있다”는 기획 의도에 대한 공감을 반증했다.



▲ 강원국제예술제가 열리는 홍천 탄약정비공장,외벽도 김수용 작가의 작품 ‘또 다른 위장’으로 재탄생했다.
▲ 강원국제예술제가 열리는 홍천 탄약정비공장,외벽도 김수용 작가의 작품 ‘또 다른 위장’으로 재탄생했다.

■ 홍천 탄약정비공장

19일 홍천에서 개막한 2019강원국제예술제도 이같은 ‘유휴공간 재생’에 목표를 두고 있다.군 폐막사나 폐교,빈 집 같은 곳들을 문화예술 공원으로 바꾸겠다는 발상으로 시작한 예술제는 그 첫 대상으로 홍천의 탄약정비공장을 낙점했다.민관군 협력 속에 전시장으로 탈바꿈한 탄약정비공장은 분단이 남긴 전쟁의 상흔을 문화예술공간으로 재창조한다.대립을 상징했던 공간은 평화를 희망하는 시각예술 작품으로 형상화된다.

김필국 강원문화재단 대표는 “전쟁의 아픔이 남은 강원도 분단의 유산을 문화예술공간으로 재창조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했다. 김여진·한승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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