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전국에 걸쳐 적지 않은 가을비가 내렸다.그야말로 겨울을 재촉하는 늦가을에 내리는 비였다.하루종일 내리던 비는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그쳤다.거리의 은행잎은 한껏 노랗게 짙어갔지만,비와 함께 찾아온 찬바람은 거리를 온통 낙엽으로 가득하게 했다.

가을비는 봄비와는 느낌이 다르다.봄비가 한 겨울을 걷어내고 봄의 기운을 모으는 비라고 한다면,가을비는 왠지 처연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우리는 봄비가 내리는 것을 두고 촉촉하게 내렸다고 예찬한다.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이 봄비인 까닭이다.

하지만 뜨거웠던 여름을 보내고 내리는 가을비를 두고 대지를 촉촉이 적신다고 하지 않는다.을씨년스러운 날씨와 함께 옷깃을 여미게 하는 비다.세찬 겨울이 다가왔음을 예고하는 비이기도 하다.이는 인생에서 황혼을 대하는 장년의 마음과 같다.삶의 여정을 돌아보게 한다.자연과 인생을 함께 볼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황금찬 시인이 노래하는 늦가을 비는 반전에 가깝다.“늦가을에/내리는 비 때문엔/우산을 준비하지 않아도 좋다/여름비처럼 세차지 않고/다정한 두 사람의 밀어같이/은혜롭다”고 했다.늦가을 비가 시인에게는 세찬 장맛비보다 부드럽고 우산을 준비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다정한 사람의 밀어처럼 느껴졌던 모양이다.

또한 김시탁 시인에게 있어 늦가을 비는 황금찬 시인과는 다른 울림을 전해준다.“가을비는 외투보다 가슴을 먼저 적신다/우체통보다 사연을 먼저 적신다/우산을 쓰고도 비를 맞는 사람들/대낮부터 낮술에 취해 벌겋게 달아오른 사람들/가을비 맞으며 길 떠나면/발길보다 마음이 먼저 젖는다/사랑이 먼저 젖는다”고 했다.계절탓일까.시인은 가을비는 가슴을 먼저 적신다고 노래한다.마음이 먼저 젖는다고 했다.

늦가을에 내리는 비는 사람들의 마음을 급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한 해가 얼마 남지 않기 때문이다.하지만 시인의 말대로 텅 빈 들녘이나 혹은 낙엽이 뒹구는 거리에 내리는 늦가을 비는 외투나 우체통보다 사람의 마음을 먼저 적시는 사랑의 비다. 천남수 사회조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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