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 사이서도 “선거 파괴 말자”…‘투표 심판론’ 우세
홍콩 정부, 3만 경찰 비상대기 속 투표소 인근 배치는 자제

▲ 구의원 선거 투표 위해 줄 선 홍콩 시민들[AP=연합뉴스]
▲ 구의원 선거 투표 위해 줄 선 홍콩 시민들[AP=연합뉴스]
홍콩 민주화 요구 시위의 향배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 홍콩 구의원 선거가 24일 국제사회의 큰 관심 속에서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다.

이번 구의원 선거는 정치적으로는 위상이 가장 낮은 풀뿌리 단계의 선거다.

하지만 지난 6월 이후 홍콩에서 대규모 시위가 반년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홍콩인들의 민심을 정확히 드러내는 첫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24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홍콩 언론과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30분(현지시간)부터 홍콩 일반 투표소 610여곳과 전용 투표소 23곳에서 일제히 투표가 진행 중이다.

이날 투표는 오후 10시 30분까지 진행된다. 선거구별 당선자는 25일 오전부터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홍콩선거관리위원회는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오전 8시 15분 현재 모든 투표소가 유권자들의 투표를 위해 열려 있다”며 “일부 투표소에서는 긴 줄이 형성되고 있으니 유권자들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달라”고 당부했다.

▲ 구의원 선거 투표 위해 줄 선 홍콩 시민들[AP=연합뉴스]
▲ 구의원 선거 투표 위해 줄 선 홍콩 시민들[AP=연합뉴스]
이날 투표소 주변에서는 우려했던 혼란은 빚어지지 않았다.

대신 어느 때보다 뜨거운 선거 열기를 보여주듯 투표소마다 긴 줄이 형성됐다.

위엔룽 지역 투표소에서 줄을 서 있던 찬(31)씨는 로이터 통신에 “전에는 이런 선거를 본 적이 없다”며 “현재 상황 때문에 투표는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과 조슈아 웡 데모시스토당 비서장 등 여야 정치인들도 이날 이른 오전 투표를 했다.

3만명이 넘는 경찰이 투표소 인근에 투입돼 비상 근무를 서고 있다는 홍콩 현지 언론의 보도가 나왔지만 각 투표소 인근에서는 경찰의 모습을 직접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투표소마다 폭동진압 경찰을 배치했지만 선거 영향 논란을 의식한 듯 최대한 유권자들의 눈에 직접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경비를 서고 있다.

민주화 요구 진영에서도 선거일에는 최대한 폭력을 자제하고 투표로 현 정부를 심판하자는 목소리가 크다.

시위대가 자주 이용하는 온라인 토론 사이트 LIHKG에서는 많은 이용자가 “선거를 파괴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홍콩 시민들은 이날 선거를 통해 18개 선거구에서 구의원 452명을 뽑는다.

현재 홍콩 내 친중파 정당 중 최대 세력을 자랑하는 민주건항협진연맹(민건련)이 115명의 구의원을 거느린 것을 비롯해 친중파 진영은 327석의 절대적인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18개 구의회 중 절대다수를 친중파 진영이 지배하고 있다.

반면 범민주 진영은 118석으로 친중파 진영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민주당이 37명으로 가장 많은 구의원을 거느리고 있으며, 다음으로 신민주동맹(Neo Democrats)이 13석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선거는 지난 6월 8일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 100만명 행진을 계기로 홍콩에서 전면적인 민주화 요구 운동이 벌어지고 나서 진행되는 첫 선거라는 점에서 역대 구의원 선거와는 정치적 위상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선거로 평가된다.

아울러 이번 선거는 차기 행정장관 선거를 위한 전초전의 의미도 갖는다.

452명 구의원 중 117명은 홍콩 행정장관을 선출하는 1천200명의 선거인단에 포함된다. 홍콩 행정 수반인 행정장관은 유권자의 직접선거가 아닌 선거인단의 간접선거로 선출된다.

구의원 몫의 117명 선거인단을 선출하는 것은 진영 간 표 대결을 통해 이뤄진다. 따라서 구의원 선거에서 이긴 진영이 선거인단 117명을 독식하게 된다.

이날 선거 등록 유권자는 413만 명으로 지난 2015년 369만 명보다 크게 늘었는데 이는 이번 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높은 관심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최대 수백만명이 참여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수개월째 이어진 가운데 이번 선거에서 야권이 더 유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 2003년 국가보안법 사태 직후 치러진 구의원 선거에서도 범민주 진영이 반정부 시위 흐름을 타고 승리한 바 있다.

다만 올해 야권이 과반 의석까지 달성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범민주 진영이 승리할 경우 중국 중앙정부의 강경한 대응 방침 등으로 최근 들어 수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시위대에 큰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행정장관 직선제 등 정치개혁 요구가 활기를 띨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친중파 진영은 최근 두드러지는 시위대의 폭력에 반감을 가진 ‘침묵하는 다수’의 의견이 이날 투표를 통해 표출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홍콩 민주화 요구 시위는 최대 수백만명까지 참여하면서 폭넓은 호응을 얻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경찰의 강경 진압 속에서 시위대 역시 상점 파괴와 도로 교통 마비 등 극단적인 폭력을 행사하면서 온건·중도층의 참여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친중국 진영이 예상 밖의 승리를 거둔다면 수세에 몰린 시위대의 기세가 더욱 꺾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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