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대담] ‘100세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꿈보다 해야할 일이 많았던 삶
내 위치에서 최선다해 후회 없어
사회 위해 좋은 인생 시작해주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강원도민일보 김진형 기자]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삶인가’는 모든 인간이 가진 근원적 질문이다.얼마쯤 살아봐야 그 답을 얻을 수 있을까.100년쯤 살다보면 알 수 있을까.지난 23일 양구 인문학박물관에서 만난 ‘100세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인류 전체를 위하는 삶이 곧 나를 위한 삶”이라고 말한다.이날 양구인문대학 수료식을 겸해 열린 노교수의 올해 마지막 양구 강의는 무려 2시간 30분 이어졌고,중간중간 유머로 좌중을 흔들어 놓기도 했다.내년 만 100세를 맞이하는 그는 강의에 앞서 본지와 진행한 대담에서 “나에 대한 걱정은 없다”면서도 “사회에 대한 걱정은 여전히 많다.100년뒤 다시 와서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건강한 삶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대담┃김여진 문화팀장

-100세에도 강연현장 인기가 많으셔서 ‘100세 아이돌’이라는 별명도 얻으셨다.장수의 비결은.

“예전엔 회갑만 되어도 늙은 줄 알았지만 요즘은 60∼70대를 늙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10년쯤 지나면 90세까지는 누구나 살게 된다고 인식할 것 같다.지금 평균수명이 80세쯤인데 어려서 죽는 사람도 있고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도 있지 않나.50대부터 잘 관리하면 90세까지는 무난하게 간다.현대에는 성인병,고혈압,당뇨,치매 등이 문제가 되는데 90세까지 건강을 지키는 것은 자기 책임이다.

운동선수들은 젊었을 때 체력을 낭비하고,예술인들은 감정의 낭비가 많아 보인다.정신이 늙는 것은 신체와는 다른 문제다.나는 75세까지는 정신적으로 늙는 것을 몰랐다.내가 쓴 책을 가끔 읽어본다.주로 73∼74세 때 쓴 책들이다.지금은 그 책의 내용을 연장하는 중이다.신체가 늙었다는 것을 표준 삼지 마시길 바란다.90세까지는 정신적으로 늙지 않는다.”

-에너지의 원천은 무엇인가.

“자전거 페달의 두 발처럼 일하기 위해 공부하고,공부하기 위해 일한다.내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나이는 60∼75세였다.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면서 지금까지의 나를 연장하지 않았을까.4∼5개월 있으면 만 100살을 넘기게 된다.내가 계속하면 남들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다 구체적인 건강관리 요령이 있으시다면.

“신체적인 건강은 의사가 관리하고 정신적인 건강은 자기가 관리해야 한다.50세쯤 되면 운동하기가 싫어지고 몸이 지친다.건강을 위해 가벼운 운동이 좋다.독일 사람들은 50대 이상 되면 수영하고 자전거를 즐긴다.자전거가 건강에 좋은 이유는 노년이 되면 제일 빨리 약화되는 다리 힘을 기를수 있어서다.주말에 등산하는 시간을 굳이 마련하기 보다는 매일 걸어라.나도 매일 하루에 1∼2㎞는 걷고 있다.평소에는 수영을 하는데 팔다리 관절에 좋다.건강을 위한 운동이지 운동을 위한 건강은 아니기 때문에 무리한 운동은 안한다.”

-오히려 젊은 시절 건강이 더 많이 안 좋으셨다고 들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목숨을 유지한 것이 신기하다.간질 증상이 있어 갑자기 쓰러지곤 했다.의식이 돌아오기 전까지 고통도 없고 컴컴한 어둠이었는데 죽음이라는 것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나중에 차차 좋아졌지만 항상 건강을 조심했다.젊었을 때부터 항상 조심하는 습관이 오래 살게 만들어준 것 같다”

-하루 일과가 궁금하다.

“아침 6시에 일어난다.한 30분정도 손발도 좀 움직여보고 7시쯤 아침을 먹는다.요새 칼럼을 쓰고 있어서 신문과 뉴스를 보고 원고를 쓰는 편이다.점심은 12시 30분쯤 먹는다.강연이 없으면 한 30분 정도 낮잠을 자고 원고를 쓰거나 책을 본다.예전에는 2시간쯤 원고를 썼는데 요즘은 힘들어 1시간 정도 쓴다.잠은 저녁 10시 30분쯤 잔다.”

-식단은 어떻게 관리하시나.

“내가 만든 습관 중에 가장 좋은 습관은 수십년 동안 똑같은 아침을 먹는 일이다.계란,우유,호박죽,과일 조금,감자나 밀가루 정도를 먹는다.밥은 아침에 잘 안먹는다.세계적인 주식이 동양인은 쌀이고 미국인은 밀가루,독일 사람들은 감자인데 감자가 제일 소화가 잘 되는 것 같다.똑같은 것을 계속 먹어보니까 맛에 대한 느낌도 없다.또 과식 보다는 영양가 있는 것만 골라 먹는다.영양가 있는 음식이란 내가 먹고 싶은 것이다.장수하는 사람은 소식한다고 하는데 그건 아니다.나이가 들면 소화 기능이 떨어져 자연스럽게 많이 못 먹게 된다.가급적 약은 안먹고 꼭 필요하다면 한약을 먹는다.”


-북한이 고향이시다.김일성과의 아침식사 일화가 유명하다.다시 들려주실 수 있나.

“1945년 9월 18일 김일성이 만주에 있다가 원산을 통해서 평양으로 들어왔다.김일성 고향이 나와 같은 평안남도 대동인데 우리 집에서 1시간쯤 되는 거리에 살았다.9월 22일쯤 동네사람들이 성주(김일성)가 아침 대접을 한다고 해서 따라간 적이 있었다.그때 누군가 ‘해방이 됐는데 앞으로 우리나라가 할 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했었다.당시 김일성은 친일파 숙청,토지 국유화,사장과 지주 추방 등 여섯 가지로 일목 요연하게 대답했다.그 때 그가 공산주의자라는 사실을 알았다.보름 뒤에 평양 공설운동장에서 김일성 환영대회가 있었고 대회에 갔다온 동네 어르신이 김일성이 누구인가 했더니 우리 동네 김성주였다고 했다.”

-최근에 듣거나 본 음악,영화,책은.


“영화는 2시간씩 앉아있는게 힘들어 잘 안본다.예전에는 오페라나 가곡을 좋아했는데 요즘에 가사를 알아듣기 힘들어 기악곡 위주로 듣는다.예술 분야와 좀 멀어지는 것 같아 종종 그림을 본다.독서보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걱정이 있으신가.

“있으면 너무 많고 없다면 없다.정치,사회 변화로 인한 걱정은 많고 나에 대한 걱정은 별로 없다.”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나의 과거를 쭉 돌아봤을때 꿈을 가지고 싶은 팔자는 아니었다.일제시대에는 조선민족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고.공산 치하에서 살다보니까 공산주의가 없어져야겠다 생각했다.대한민국에서 독재와 군사정권이 지나가고 민주화가 되면서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나 개인에 대한 꿈은 없었던 셈이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할 일은 많았다.후진 국가의 젊은이들은 직장은 없지만 할 일은 많다.해방이 되고 나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정치였지만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봤다.한국전쟁 전까진 중·고등학교 교사를 생각했지만 연세대 교수로 부임하면서 대학생을 위한 철학자로 살고자 했다.환경이 내 꿈을 만들어줬고 그것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본다.내 위치에서는 최선을 다해 후회는 없다.이제 갈 나이가 됐는데 100년쯤 뒤에 다시 와서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고 싶긴 한다.”

-어떻게 사는 삶이 좋은 삶인가.

“선진국가에서는 윤리와 도덕이 행복의 중심이다.모든 사람이 인간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게 행복이다.돈과 명예는 별로 의미가 없다.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사회를 위해 좋은 인생을 시작해주시길 바란다.그보다 더 행복하고 보람있는 일은 없다.”

-강원도민일보가 청춘의 나이,스물일곱이 됐다.신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언해주신다면.

“신문이 전하는 소식은 모두 그 나름의 목적이 있다.그 목적은 단순히 부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좋은 병원도 좋은 의사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신문사도 결국은 인적 자원의 성장,기자 교육이 필요하다.기자 분들도 공부 더 많이 하셔야 한다.사회 발전을 위해 지역신문이 더 고민하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리/김진형



김형석 교수는?

1920년 평안남도 대동 출생으로 숭실중학교에서 윤동주 시인과 함께 공부했고,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의를 들었다.고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다닌 일본 조치대 철학과를 1943년 졸업,중학교 교사를 거쳐 1964∼1985년 연세대 철학과 교수를 역임했다.안병욱,김태길 교수와 함께 ‘한국 현대철학의 삼총사’로 불린다.1959년 첫 수필집 ‘고독이라는 병’이 큰 인기를 얻었다.‘영원과 사랑의 대화’,‘운명도 허무도 아니라는 이야기’,‘무엇을 위해 사느냐고 물으면’ 등 다수 저서에 이어 올해도 ‘백년을 살아보니’,‘100세 철학자의 철학,사랑 이야기’ 등의 책을 내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유일한상’,‘일송상’ 등을 수상했으며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받았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