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82년생 강원도 김지영
20대 나만을 위해 살수 있어
결혼 후 늘 누군가 챙기는 삶
육아휴직 있어도 못쓰는 현실
사회에 대한 절망감 심해져
희생은 언제나 여성의 몫
일상속 나를 위한 시간 절실

▲ 어느 금요일.강원도의 82년생 동갑내기 7명이 춘천의 한 코워킹스페이스에 둘러앉았다.소박한 덮밥에 따뜻한 라떼 한잔 곁들인 이날 점심시간 꺼내놓은 속 깊은 얘기들은 서로에게 ’흔치않은 위로’ 였다고 했다.
▲ 어느 금요일.강원도의 82년생 동갑내기 7명이 춘천의 한 코워킹스페이스에 둘러앉았다.소박한 덮밥에 따뜻한 라떼 한잔 곁들인 이날 점심시간 꺼내놓은 속 깊은 얘기들은 서로에게 ’흔치않은 위로’ 였다고 했다.
[강원도민일보 김여진 기자] 소설과 영화 속 ‘82년생 김지영’은 아프다.무의식 중 엄마,외할머니,죽은 친구로 변신해 심장 구석에 화석처럼 박혀있던 말들을 쏟아낸다.마음 터놓을 ‘대나무숲’이 없었던 김지영은 그렇게 정신의학과에 가야했다.책·영화 흥행 덕에 ‘82년생’에 난데없는 관심이 쏠렸다.X세대 70년대생,밀레니얼 90년대생 사이에 끼어 있는 듯 없는 듯 자랐지만 어느 새 위아래 부양을 책임지는 사회의 허리가 된 이들.강원도에 사는 ‘82년생 김지영’들을 위한 작은 대숲 하나를 열었다.

춘천의 한 코워킹스페이스에 만 37세 동갑내기 7명이 모였다.살아온 시대는 같지만 결혼·출산,집안사정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양으로 각자의 삶을 털어놓고 위로하는 자리.이혼 고민,정신과 진료 등의 고백과 함께 30대가 사회에 느끼는 무력감도 토로했다.2002월드컵부터 촛불집회까지 ‘광장문화’의 중심에 서봤지만 결론은 “바뀌는 건 없다”는 것.가장 필요한 것은 ‘작은 위로’와 ‘온전한 내 시간’이라고 했다.3시간여 이어진 대화는 요즘 말로 ‘저세상 텐션’ 속에 ‘단짠단짠’을 오갔다.


>>> 참석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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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우리나라가 경제적 안정기에 접어든 때 태어나 평범하게 자란 세대라는 느낌이다.

△박정순=“아니다.삶이 스펙타클했다.힘들었던 시절이 생각날까봐 영화도 일부러 안봤다.사정상 붙은 대학도 못가고 22살에 결혼,시동생까지 함께 시댁에 살았다.남편사업이 잘 안돼 모유수유 하다가도 뛰쳐나가 일했고,과호흡증으로 3번 실려갔다.워킹맘에게 많은 증상이라고 했다.작년에 아이들과 따로 나왔다.이제야 내 삶을 찾고 있다.”

△임유진=“나도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취직했다.이후 졸업한 전문대는 인정해주지 않더라.방통대에서 교육을 전공하고 계속 일하며 여러 자격증을 땄다.투잡,쓰리잡에 블로그 운영까지 일을 놓지 않고 살아왔다.”

-30대 여성들은 경단녀,워킹맘,전업주부 같은 말들로 쉽게 분류된다.어떤 ‘선택’이 곧 무언가에 대한 ‘포기’가 된다.

△목선혜=“미술학과 여자 동료들이 결혼과 동시에 사라지는 마법이 시작됐다.아기를 낳고 나면 작가에서 ‘한때 그림을 그렸던 여자’로 바뀌었다.남자가 하는 일은 다 해야 한다는 생각에 작품을 위해 직접 망치질하고,5m 사다리도 올랐었다.그렇게 해오던 일을 놓을 수 있는 용기가 과연 내게 있을까.”

△최윤희=“힘들게 아이를 얻었지만 육아현실과 부딪치면서 둘째는 낳지 않겠다고 결심했다.육아가 내 일과 시간을 희생해야 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출근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아기엄마가 있는데 날 보며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일한다고 부러워할까,이기적인 엄마라고 생각할까.”

△김미경=“내가 그 엘리베이터 엄마 입장이었다.남편 직장 때문에 강원도에 와서 육아만 했다.완모(100%모유수유)가 당연했고 일할 생각은 전혀 못했다.놀이터에 앉아있고 싶어서 있는게 아니었다.일 찾으러 간 단체면접에서 싱글들에만 질문이 몰려 들러리가 된 것 같았고,또다른 금융기관 면접에선 ‘애들 셋 어쩌실거에요’ 대놓고 묻는데 참 아팠다.”

△김기혜=“확실히 20대 때는 나만 보고 살 수 있었다.하지만 아이 낳은 후 요구받는 역할은 늘 주위를 둘러보고 챙기는 일이다.”

△박=“원하던 어린이집 교사가 됐지만 더 젊은 직원을 선호하기 시작할 때쯤 그만뒀다.국공립에서는 높은 호봉에 아이 엄마라고 꺼렸고,민간에서는 반기지만 월급이 너무 적었다.그렇게 이직을 선택,열심히 했더니 4년차에 연봉 5000∼6000만원대를 받게 됐다.시댁에서 나온 것과 이직은 좋은 선택이었다.”

-남성 입장도 궁금하다.남녀차별금지법이 제정될 때 10대를 보낸 성평등 교육 1세대이기도 하다.아버지 세대와 삶이 많이 다를텐데.

△이병재=“퇴근하면 바로 젖병 설거지,분리수거,아기 목욕과 재우는 몫까지 전담한다.남성도 육아에 적극참여 하는 세대다.육아휴직도 생각해봤지만 쉽지는 않다.육아휴직 수요가 많은데 강원도는 아직 가능한 곳 자체가 적다.공무원과 사회복지기관 제외하고는 큰 기업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최=“육아휴직 규정이 있는데도 못쓰나.그런 분위기 속에 희생은 계속 여성 몫이다.남편들은 여전히 아내를 통해 효도하려는 것 같다.영화 속 공유 같은 남편은 현실에 없다.”

-듣다보니 82년생들의 투쟁은 광장 보다는 집안에서,일상 속 선택을 통해 이뤄지는 것 같다.

△이=“공시 준비하던 2000년대 중반쯤 ‘남혐’,‘여혐’ 얘기가 처음 불거졌다.그때 남성 모임이나 집회에 나가보기도 했다.하지만 내가 의사표현을 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지는 않더라.이제는 어떤 일이 터져도 ‘나서봤자 되는 것도 없는데’하고 체념하게 된다.사회에 대한 절망이다.”

△목=“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아버지께 위압적인 말투,나를 부르시는 표현부터 바꿔달라고 부탁드렸다.아버지들에게 딸의 성공은 ‘경제사회적 지위가 번듯한 남자에게 의탁하는 삶’인듯하다.“그렇게 하면 남자들이 싫어해”라는 말씀에 “그런 남자는 나도 싫다”고 되받아왔다.요즘은 조금 변하시는 듯하다.”

△박=“가까운 사람들의 인식부터 극복해야 했다.별거 결정에 여동생들은 ‘참고 살지,형부 혼자 두냐’고,남편은 ‘어머니 적적하시니 둘째는 두고가라’고 하더라.하지만 나왔고,둘째도 함께다.”

△김미경=“결혼하고 6년간 매주 1박2일로 시댁에 갔었다.남편에게는 옳고 그름을 따질 새 없이 당연했던 일이었다.”

△김기혜=“영화에서 ‘맘충’이란 말을 대놓고 하는 장면이 가장 쇼킹했다.그런 단어를 일상적으로 내뱉고,들어야 하는 사회가 된 것인가.내게 그런 상황이 온다면 과연 싸울 수 있을까.”

-영화 속 ‘김지영’은 그렇게 속으로 투쟁하다 중간중간 ‘나’를 잃고 다른 사람이 된다.‘나’를 잃지 않으려면.

△최=“다만 1시간이라도 내 시간이 있어야 한다.‘남들 다 그렇게 살아’라는 말은 위로가 못된다.”

△박=“최근 취미로 밴드 보컬을 시작,버스킹 공연을 하고 있다.마음이 풀린다.좋은 멘토도 중요하다.부디 모두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늦기전에 찾길 바란다.”

△김미경=“컴퓨터 전공을 살려 내년쯤 풀타임 근무를 생각중이다.아이들에게 일하는 엄마 모습을 보여주며 새롭게 다가가고 싶다.”

△임=“육아에 부모님도 아프시기 시작한 낀 세대가 딱 요즘 우리다.고달파도 위로받을 곳이 마땅치 않다.단체 채팅창의 소소한 정보공유와 따뜻한 말 한마디,커피 쿠폰 한 장에 마음이 녹고 살아갈 힘이 난다.주위를 조금씩 더 챙겨봐야겠다.그런 의미에서 오늘 참 후련하다.” 진행/김여진·정리/한승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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