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행스님 오대산 월정사 선덕스님·대한불교 조계종 원로의원

▲ 원행스님 오대산 월정사 선덕스님·대한불교 조계종 원로의원
▲ 원행스님 오대산 월정사 선덕스님·대한불교 조계종 원로의원
옛날 중국의 한 선사는 도를 묻는 제자에게 탁자 위 촛불을 가리켰습니다.그러고는 입김으로 촛불을 훅 불어 끄면서 도의 본질을 설파했습니다.촛불(지혜와 깨달음) 하나가 온 방을 환히 밝히지만,간단한 입김 하나만으로도 다시 암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3년 전 촛불로 시작된 문재인 정부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하는 까닭입니다.집권 초 국민은 문재인 정부가 밝힌 환한 촛불에 환호했습니다.젊고 참신한 인재발탁에 감동했고,어려움에 놓인 국민을 직접 찾아 어깨를 두드리고 셀카찍는 모습에 지지율은 정점을 찍었습니다.하지만 임기 반환점을 돈 요즘 그런 감동은 자취를 감췄습니다.감동적인 인재발탁은커녕 수많은 장관 후보자들이 그들 말대로 ‘만신창이’가 되어 줄줄이 사퇴했습니다.국정이란 것이 한두 해에 성과를 낼 수 있는 건 분명 아닙니다만,국민은 피부로 체감합니다.촛불이 훅 꺼지고 다시 암흑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입니다.

3년 전 분출했던 ‘촛불민의’가 우리 사회 전반에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지,불평등 해소,정의로운 사회,청년들이 겪는 구조적 문제,삶의 다양성 존중 등 사회개혁은 성과를 내고 있는지,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어디에서 꼬였는지 되돌아보고 참구(參究)해야 합니다.이러한 개혁이 단번에 실현될 수는 없다 해도 국가지도자는 국민의 신망을 얻어야 합니다.특히나 ‘촛불민의’에 의해 집권한 지도자라면 지금 허리띠와 신발끈을 다시 조여야 합니다.선사의 가르침처럼 촛불은 입김 한 번으로도 쉽게 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약자와 서민 편에 서서 어시장 새벽 장바구니와 실업자의 고민을 잊으면 안 됩니다.

오대산 월정사 탄허 조실스님은 21세기에는 한반도가 세계의 중심이고 우리 국민이 세계를 이끌게 될 것이라며,세계의 화두가 남북통일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역학과 지정학에 바탕을 둔 과학적 말씀이었습니다.최근 세계 정치흐름을 보면 탄허스님의 예지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남북미 삼국을 오가는 정상회담이 연이어 열렸고,그 행보를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지구에서 단 하나남은 경제적 잭팟 역시 한반도 통일과 연결돼 있습니다.어쩌면 우리는 천재일우의 기회와 대면하고 있는 셈입니다.때문에 정파적 견해와 상관없이 민의를 한곳에 모아야 합니다.

음양오행의 변화하는 진리인 역(易)의 관점에서 보면,한국의 촛불집회와 홍콩의 ‘우산혁명’은 하나입니다.2014년(갑오년) 시작된,한국인구 5000만명의 4분의1인 1700만 촛불이 광화문에서 외친 “이게 나라냐?”라는 함성과 홍콩인구 800만명의 4분의1인 170만명이 빅토리아공원에서 우산을 들고 외친 “홍콩은 홍콩이다!”라는 함성은 같은 맥락입니다.민의를 외면한 채 나라를 운영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세상만사 새옹지마 같아서 역경에 서러워 할 것도,순경(順境)에 좋아할 것도 없습니다.자연의 법칙은 순환이므로 초심만 잃지 않는다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부처님 말씀 중 ‘초발심시 변정각’이란 게 있습니다.처음 깨달음의 마음을 내는 순간 이미 깨달음이 성취되어 있다는 뜻입니다.처음 보리심을 내는 순간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3년전 겨울,우리는 처음 촛불을 들었습니다.촛불에 불붙이는 그 순간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발걸음은 이미 힘차게 시작된 것입니다.어김없는 계절의 순환 속에 또다시 12월이 됐습니다.청와대도,정치권도,국민도 ‘좋은 나라’를 향한 그 뜨거웠던 초심을 되새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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