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민일보 발행인의 ‘강원도 시일야방성대곡’(Ⅱ)
미국 상·하 양원 구성 당시 논쟁
하원 인구비례·상원 주마다 2명
주민이 주인역할 지방자치 성장
선거 때마다 강원 누더기 선거구
국회의원 수 8~9명서 변함없어
장밋빛 지역개발 공약보다
‘지방분권형 개헌’ 언약하는
이름에 맞는 후보 선택 필요

▲ 김중석 강원도민일보 사장
몇달 전,‘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라는 타이틀 아래 인구과소의 설움을 토해냈다가 CEO가 직접 글까지 쓰느냐니, 무대접·푸대접한 쪽을 탓해야지 굳이 우리 탓까지 할 필요가 뭐 있느냐느니, 이런 저런 소리를 들어야했습니다. 찢는 소리가 불편했던 사람들이 제법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낭보로 큰 기쁨을 누릴 때‘시일야박장대소(是日也拍掌大笑)’를 쓰는 게 낫겠다싶어 제 신문에 글쓰기를 자제해왔습니다.

그런데 웬걸, 이런 다짐이 얼마못가 무참한‘21대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에 다시 격문을 쓰기에 이르렀으니 평생 지적 질(?)을 해온 직업병이 참으로 무서운 것 같습니다. 오호 통재라!

▲ 미국 제헌헌법회의 모습. 하원은 인구에 비례해 선출하고 상원은 모든 주가 2명씩 선출하는 ‘코네티컷 대타협안’에 합의한다.
▲ 미국 제헌헌법회의 모습. 하원은 인구에 비례해 선출하고 상원은 모든 주가 2명씩 선출하는 ‘코네티컷 대타협안’에 합의한다.

>>>미국 , 인구 적은 주 상원 배려

초반부터 분노와 격정에 휘둘릴까 저어되어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우리 헌법과 정체의 모태가 된 미국의 건국초기로 가봅니다. 7년여의 치열한 전쟁 끝에 영국의 식민주로부터 독립한 13개 주의 대표들이 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라 국민이 다스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필라델피아에 모여 헌법제정에 착수합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헌법초안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제임스 메디슨이 마련한 버지니아 안은 상·하 양원을 구성하되 하원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고 상원은 각 주정부에서 선임한 의원을 하원에서 인준토록 하며, 양원의원 수는 각 주의 재산과 인구에 비례하여 정하자는 규정을 담고 있었습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표와 뉴욕 펜실베이니아 등 큰 주 대표들은 강력한 중앙정부 수립과 각 주의 인구 및 세금부담에 비례해 의원 수를 배정하자는 버지니아 안을 지지했지요.

반면 버지니아 주에 비해 인구가 12분의 1밖에 안 돼 국회의원수가 절대적으로 적어질 델라웨어 주와 뉴저지 등은 국회에서 큰 주의 횡포를 우려해 강력히 반대합니다.

버지니아 안이 통과되면 연방정부 구성에 불참하겠다고 위협했고, 큰 주 대표들도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양쪽의 격돌이 극심 하자 코네티컷 주 대표들이 중재에 나섭니다. 하원은 인구에 비례해 선출하고, 상원은 인구에 상관없이 모든 주가 2명씩 선출하자는 절충안을 내놓습니다. 저 유명한‘코네티컷 대타협 안’(the Great Compromise)입니다.

마침내 큰 주와 작은 주 대표들은 코네티컷 안에 합의합니다. 한고비를 넘기나 했더니 남부 주와 북부 주들은 다시 노예문제로 부딪칩니다. 격론을 벌인 끝에 한발씩 물러서 하원의원 수와 인두세를 결정할 때 5명의 노예를 3명의‘자유인(free person)’으로 계산하는 선에서 양보합니다. 투표권은 주지 않고 노예 한명을 사람 5분의 3명으로 쳐준 것이지요.

드디어 1787년 13개주가 인구에 상관없이 똑같이 2명의 상원의원을 갖게 되고, 인구 적은 남부지역의 선거인수까지 배려해준 연방헌법 제1조 제2절 3항의 연방헌법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인구 3천8백만 명인 캘리포니아의 하원의원은 무려 53명, 50만 명이 채 안 되는 델라웨어 몬태나 와이오밍 알래스카 등의 하원의원은 고작 1명이지만 상원의원만큼은 50개 주 똑 같이 2명씩 선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인구적은 설움이 어디 우리 같겠습니까?

부질없지만 미국의 건국아버지들이 우리나라 제헌헌법을 만들었다고 상상해봅니다. 하원은 인구대표로, 상원은 지역대표로 구성했을 테고 인구는 적지만 면적은 전국에서 두 번째로 넓은 강원도도 서울 경기와 똑같이 2명씩의 상원의원을 뽑도록 했을 겁니다.

여기에다 강원도에 상주하고 있는 군인들을 유권자수에 보태던가, 군인 한명을 5분의 3명으로 쳐주는 배려까지 있지 않았을까요?(오해 마십시오. 국방의 성스러운 의무를 수행하는 군인을 미국 건국초기의‘그 밖의 총인원수’로 보자는 뜻은 아니니까)

미국은 소수약자에 대한 포용과 배려의 정치체제, 주민이 주인역할을 하는 지방자치를 키워오며 건국 2백여 년 만에 세계 최강대국에 올라섭니다.

미국을 뒤따라 1848년 헌법을 제정한 스위스 역시 상치되는 두 의사결정원칙, 즉 1인1표의 민주주의 원칙과 인구규모에 관계없이 모든 칸톤 들이 동등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연방주의 원칙이 결합된 양보와 타협을 통해 26개 모든 주에서 상원을 두 명씩 선출하는 한편 강력한 자치분권체제를 통해 인구 850만밖에 안 되는 유럽의 산골짜기 작은 나라면서도 오늘날 1인당 국민소득 8만 달러가 넘는 세계최고의 번영을 구가하고 있습니다.

체제와 운영방식은 약간씩 다르지만 독일, 프랑스, 영국 등 대부분 선진민주국가들도 양원제 하에서 지방자치를 발전시켜온 나라들인 것, 잘 알고계시죠?

>>>버스 지난 뒤 손 흔들기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에다 처참한 국회의원 선거구 때문에 열 받아 있는 판국에 왜 생뚱맞게 우리와 먼 나라사례를 들먹이느냐고 핀잔줄 분도 있겠지만, 선진민주국가를 지향하고 그 체제를 빌려오지 않으면 지금처럼 인구가 적어 겪는 설움과 수모, 난도된 누더기 선거구는 면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번뿐 아니라 4년 뒤에도 똑 같이 이리 쪼개지고, 저리 합쳐지고, 그래서 열 받고, 성토하고, 규탄하고, 또 한참을 그러다 말고…

설령 강원도 선거구를 역사성과 지리성 생활권 등을 반영해 이리 저리 잘 쪼개거나 합쳤다고 칩시다. 출마하는 사람과 운동원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도대체 뭐가 달라지는 걸까요?

어차피 국회의원은 8~9명일 테고, 그들을 통해 대변되는‘강원도의 힘’은 253분의 8~9밖에 더 되겠습니까? 중앙정부가 재정과 정책의 80% 가까이 틀어쥐고 있는 판에 8~9명이 가져오면 얼마나 많이 가져오겠습니까? 우리보다 유권자가 많고, 정치력도 센 지역의 총합을 과연 뛰어 넘을 수 있을까요?

21대 지역구 국회의원수가 253명으로 정해졌을 때부터 재빨리 눈치챘어야 합니다. 지역구 한 석을 늘리거나 줄이는 문제를 놓고 타 시·도와 치열한 제로섬 게임을 벌일 것이 불 보듯 뻔했다면 전 도민이 떨쳐 일어나 총선 보이콧을 결행할 기세를 빌미삼아 현역 국회의원들이 앞장서 국회와 정치권을 압박하고 투쟁에 나섰어야합니다. 물론 그렇게 해도 될까말까였겠지만.

5개 시·군을 묶었던 공룡선거구도 참담했는데 ‘고양이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 격’이 될 줄이야.

6개 시·군을 묶어 헉 소리 나는 괴물 선거구 안이 제시될 즈음에서야 기껏 성명서나 결의문을 발표하는 정도였으니‘버스 지난 뒤 손 흔들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난리를 쳐서 다시 조정된 게 아니냐고 굳이 항변한다면 글쎄요, 더는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제도보다 위대한 개인은 없다

내친 김에 불편한 얘기 하나 더 보태보겠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할 거냐고. 총선을 보이콧 하고, 탈당을 불사하고,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는데 정말 그리 할 수 있겠느냐고.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선거구를 있게 한 책임을 누구에게 어떻게 물을 거냐고.현안이 있을 때마다 하도 탈당불사,결사항전,사퇴촉구,투표심판이란 허언을 귀 따갑게 들어왔기에 갖는 궁금증입니다.

선진국과는 판연히 다른 중앙집권체제에서는 강원도의 정치적 이익을 확보하기는커녕 대변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경고에 무심했던 국회의원과 정치인들…

선거 때마다 이 정당,저 정당,이 후보,저 후보한테 속고 또 속으면서 표를 주고는 무대접·푸대접을 입에 달고 살아온 유권자들…

힘센 국회의원을 뽑으면 중앙에서 예산을 많이 따올 거라는 미몽에 젖어있는 주민들…

하여 타령처럼 되뇌어 봅니다.선진민주국가처럼 정치·경제·사회·교육·문화 등 모든 영역의 자원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법제적으로 나눠 갖는 자치분권체제가 하루빨리 앞당겨지기를.

꿈꾸어 봅니다.인구대표형 하원과 지역대표형 상원을 통해 소수약자지역을 배려하고, 지금처럼 국민들을 짜증나게 하는 대립과 갈등구조가 혁파되는 국회모습을.

거의 모든 자원과 권한을 중앙이 갖고 있는 단방정부의 단원제 국회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강원도는 등신대 이상의 대우를 받을 수 없습니다.인구마저 153만 명대로 추락해 장차 지방소멸까지 걱정해야하는 지경이니 국회의원 수가 늘어나리란 소망 역시 접는 게 좋을 듯합니다.몇몇 힘 있는 정치인,몇몇 장·차관,몇몇 지도자가 다른 지역보다 더 나은 발전과 주민의 삶의 질을 담보해주리라는 기대도 너무 크게 갖지 마십시오.‘제도보다 위대한 개인은 없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강원도 유권자들의 복수 방법

지금은 무척 열 받아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무덤덤하게 다가오는 선거를 치를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감히 제언 드리는 외람됨을 이해해주십시오. 


시·군마다 선거구가 뒤죽박죽된 마당에‘단체장’이나‘지방의원’수준의 장밋빛 지역개발공약을 내세우는 후보보다는 승자독식 중앙집권체제의 후과 혁파와 함께 지방소멸위기와 지역불균형구조에 대응할 자치분권시스템 구축과 양원제를 포함한‘지방분권형 개헌’을 언약하고 앞장설,직명처럼‘국회(國會)의원’직에 합당한 후보들을 선택해 주십사 하는 부탁입니다.

때 마다 선거구를 이리저리 농단하며 수모를 안겨온 중앙집권세력들에게 미래를 지향하는 깨어있는 강원도 유권자들이 보내는 아마도 가장 통쾌하고 멋진 복수가 될 것입니다.

김중석 강원도민일보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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