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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하고 불러보면 언제나 다정한 그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어린 시절 툇마루에 앉아 장에 다녀오시는 어머님을 기다리는 마음과 어머님의 앞길을 비춰주는 달빛의 고마움을 느껴보았다.코로나19로 점점 힘들어져만 가는 세상을 읽어 가면서 부질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 하늘 한 번 볼 마음의 여유도 없는 날이면,그래 이제 밤하늘의 별도 달도 바라보며 옛날 막살이집 툇마루에 앉아서 듣던 어머니의 발자국 소리도 다시 들어 보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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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2020.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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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이 어디서 태어났느냐 하는 질문에 서울 건천동이다, 아니다 강원도 강릉이다 하는 등 몇 가지 설이 있다. 그럼에도 나는 허균 선생의 고향을 명백히 강릉이라고 말하고 싶다. 허균 스스로도 강릉 사천 마을을 고향으로 여기고 있으며, 자신의 시에서 고향에 돌아가 살고 싶다는 심경을 술회하기도 했다.훠이훠이 역외로 돌아다니다가 그런 강릉을 내가 다시 돌아온 지 10 년의 세월이 다 되어간다. 그리하여 허균과 나는 강릉이라는 공간성으로 다시 만나게 되는데, 내 어찌 이 오래된 인연을 다만 그대로 지나가게 내버려 둘 수 있겠는가.반평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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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식
2020.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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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년(1618년) 추팔월 경진(24일) 아침 일찍 나는 인정문 마당에 버려졌다. 그들은 며칠 동안 사람을 잡아 족치길 그치지 않았다. 내게 고문을 하여 죄를 불게 하는 딱장받기도 밥도 호되게 받았다. 그들은 무고한 사람을 가둬 놓고 쉼 없이 갈마들면서 억지 자백을 받으려고 단지곰을 쉬 거두지 않았다. 쉴 듯하다가도 곧장 도리매(곤장)로 되게 치고, 물볼기와 회초리로도 계속 때리는 잔채질도 거침없이 해댔다. 발목을 묶은 뒤 두 팔을 뒤로 엇갈리게 묶어 높이 매달고 양쪽에서 때리는 학춤, 줄로 다리를 돌려 감고 양쪽에서 톱을 켜듯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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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식
2020.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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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친국은 당장 이뤄지지 않았다. 계사(啓辭, 논죄에 관한 글)를 통해 다양한 의견이 임금께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허균의 행적에 대해 좀 더 알아본 뒤에 일국의 임금으로서 분명한 관점을 갖고 친국에 임하는 것이 모양새가 바르다는 견해들이었다. 광해는 전날 밤의 친국 하명을 잠시 거둬들였다. 그리하여 다음날 아침부터 정전에서 정청이 열렸다. 사안이 중대했으므로 당상관 모두가 명징하게 자기의 의견을 개진하기 시작했다. 주위를 휘둘러보던 병조 판서 유희분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전하, 역적의 우두머리를 잡았으니 엄하게 국문하여 실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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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식
2020.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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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인 이재영은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며 소의문 언덕배기 숲속에서 밤이 오길, 허균이 도착하길 기다렸다. 지난밤에 낙산 성곽에서 일전이 있을 바로 그 전 한낮에 품속에 창칼을 숨기고 삼삼오오 도성 안으로 들어선 호민군을 이재영은 아무도 모르게 소의문 옆 언덕에 숨겼다. 이재영은 어금니를 물고 눈을 부라리며 서궁을 내려다보았다. 저기 한 시대의 불운한 여인이 있다. 그녀는 이제 사라져야 할 것을. 시대는 우리로 하여금 천하를 차지하라 하는도다! 나는 판서가 될 것이고, 다른 동지들 모두 한 자리를 차지하여 태평성세를 이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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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식
2020.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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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떨어졌다. 한성부 좌윤 김개는 다시 한 번 의금부 뇌옥으로 다가갔다. 아무도 없다면 영어의 몸이 된 교산 허균을 끌어안고 옥에서 나와 그대로 밤섬으로 달아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잠시 했으나, 현실적으로 그게 이뤄질 리 만무라 푸석 헛웃음을 흘려 본다. 혹은 다른 계획이 있는가? 횃불이 이글거리는 옥문으로 다가가 살피니, 거기엔 그 어느 때보다도 엄중한 분위기 아래 칠팔 명으로 증강된 옥리들의 완강한 파수가 그대로 보였다. “아무도 오지 않았지?” “예, 나리.” 김개가 의금부 고위 간부인 동지의금부사인데다가 국가의 중대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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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식
2020.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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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이 상곡 집을 떠나 스승 기윤헌의 집에 가서 지내는 지 여러 날이 됐다. 비복 돌한은 우리 굉이 가출했다고 했지. 가출이라. 나는 저 옛날 한 때 구월산 자락으로 가출했었어. 거기서 공력을 키우고 진정 사내가 된 것을! 우연주도 만나고…. 그 우연주의 동생 경방이 의금부에 잡혀 있으니, 나와의 관계를 그들은 이미 잘 알고 있을 터. 어찌하였거나 먼저 굉을 만나야 해. 내 상소를 광해가 의금부에다가 내렸다 하지 않나. 내 상소가 의금부로 내려가면, 그리고 동시에 기준격의 상소 또한 그리로 내려가면, 나에 대한 대신들의 비방이 죽 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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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식
2020.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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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 수레국화와 자색 금낭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장원서(掌苑署, 현재의 서울 종로구 화동)의 오솔길에서 푸르다 못해 검게 변해가는 백악산을 바라보며 병조 판서 유희분이 수염을 쓸며 걱정스런 얼굴을 만들고 섰다. 그 옆에 햇빛에 내리 쬐이는 얼굴에 주름을 만들며 이이첨이 헛기침을 했다. “허균을 이젠 어떻게 해야 하지 않나, 하는 게 내 뜻이오.” 유희분이 목소리를 약간 높였다. “그 일로 판의금 대감께서 이렇게 만나자 했으니, 오늘 여기 장원서에서 해결의 길을 마련해 봐야 하겠는데, 그러니까 광창 부원군(이이첨)은 허균을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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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식
2020.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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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은 가을 하늘 아래 고아한 지붕의 선을 더욱 분명히 드러냈다. 돈화문으로 들어가 금천교를 지나면서 나는 신료들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걸어가면서 내는 두런거리는 말소리를 들었다. 며칠 전에 인사 발령이 났다. 광해는 박승종을 좌의정으로, 박홍구를 우의정으로, 이이첨을 판의금부사로 제수했다. 판의금부사란 의금부의 으뜸 벼슬인 판사로 종1품의 관직이다. 이이첨이 누구던가. 이이첨은 대북의 영수로서 그 적합함을 주장하여 우여곡절 끝에 광해군을 즉위하게 하였고, 이후 조정에서 소북파를 숙청했으며, 영창 대군을 죽게 하고, 인목 왕후 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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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식
20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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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경(새벽 4~6시)에 혜성이 중태성 아래에서 나왔는데, 꼬리 길이가 1장 남짓 되고 빛깔은 희었다. 불길한 징후였다. 일찍 일어난 나는 툇마루에서 하늘의 혜성을 걱정스런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지난밤엔 신창동 추섬의 집 안방에서 나는 가녀린 추섬의 허리를 잡고 잤다. 어제 밤늦게 나는 이재영과 함께 반촌에서 술을 거나하게 마셔 거의 정신없는 상태로 교자에 올라 신창동에 들렀던 것이다. “추섬아.” “갑자기….” “네게 늘 미안하구나. 그래, 나는 여기 신창동에 늘 갑자기 왔었지. 그건….” 그건 추섬을 보고 싶은 마음이 늘 존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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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식
20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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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쪽 변방의 일로 시끄럽다. 여진족의 누루하치가 강력해져 후금을 세워 지난 윤4월에 드디어 명나라를 공격했고, 다급해진 명이 조선에 원병을 요청했으며, 조선은 후금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 하면서도 명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 곤란해졌다. 나는 임금과의 긴 대화 뒤 집에서 몸을 쉬었다. 일단 이이첨의 공격에 방어망을 친 것으로 여겼다. 어디까지나 혼자만의 생각이었지만 임금이 이이첨을 견제하는 기제로 자신을 내세우는 것이라 믿어 기준격의 비밀 상소 및 대론과 관련하여 최근의 심적 압박으로부터 조금 벗어나 비교적 편한 마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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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식
20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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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진달래, 개나리, 철쭉은 물론 등꽃, 싸리, 영산홍, 작약, 찔레, 모란 등이 온 세상을 희고 붉게 물들였다. 그랬음에도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여인, 각 지역의 동지들이 다시 한 번 모여야겠어.” “정황에 변화가 있나?” “변화를 일으켜야지.” “그런데 자네, 이 중요한 시기에 첩실 추섬의 집에 머무는 이유는 뭔가?” 그때 추섬이 술상을 내왔다. 추섬은 물겹저고리에다가 장식연(裝飾緣)을 두른 치마로 조용히 나타나 웃음을 머금으며 이재영에게 목례를 했다. 이재영은 입을 벌려 안채로 들어가는 추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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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식
2020.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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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다. 광해 10년 무오년(戊午年, 1618)이다. 새해 벽두부터 성균관 유생의 우두머리 격인 장의 하인준(河仁俊)이 ‘아, 서궁 인목 대비의 죄악을 말한다면 참혹하다.’로 시작하는 통문(通文)을 팔도에 보냈다. 나는 하인준이 팔도에 내려 보낸 통문을 읽으며, 조카 하인준의 듬직한 태도에 술을 마시며 큰 소리로 웃었다. 성균관 유생들에 의해 장의로 선출되었다는 소식을 듣기 전부터 이미 비범한 아이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삼촌인 나는 조카의 과감한 행동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대론(大論, 폐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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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식
20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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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년(1617)은 쉽게 저물지 않았다. 허균이 엄청난 고통을 겪으며 병석에서 신음하는 중에 삼사가 합계(合啓)했다. “기자헌을 비롯하여 대론을 극력 반대하는 이항복, 정홍익, 김덕함을 의금부에서 마땅히 극히 먼 국경 지방에 귀양 보내야 될 것인데, 이에 감히 사정(私情)을 따르고 국법은 지키지 않아서 모두 내지(內地)에 편리한 곳으로 배소를 정한다 하였으니, 당상관과 낭청을 모두 파직하고 네 흉인은 국경 가까운 땅으로 옮겨 귀양 보내기를 청합니다.” 이에 고무되었는가. 양사에서도 비밀히 아뢨다. “남해는 섬나라의 오랑캐와 아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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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식
20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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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격이 나를 찾아 명례방 상곡 집으로 왔다. 기준격이 내민 종이에서 나는 이런 글귀를 읽었다. 合司三啓 玉堂再箚 答曰 奇自獻遠竄 李恒福放歸田里. (삼사합계 옥당재차 답왈 기자헌원찬 이항복방귀전리.) “이것이 스승님이 바라던 결과입니까? 이것이 관송 이이첨이 그토록 원하던 일입니까? 이런 일이 대북이 소망하던 것입니까?!” 느티나무 가지 사이를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겨울바람은 문풍지를 흔들며 비집고 들어와 심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듯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젊은 기준격의 숨소리가 거칠어져 갔다. “아버지는 갑자기 대비의 폐출을 주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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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식
20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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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헌은 강릉으로 내려간 뒤 줄곧 보현사(普賢寺)에 기거했다. 보현사는 대관령의 동쪽 사면 보현산 혹은 만월산으로 불리는 산의 기슭에 자리 잡은 절이다. 경내에 낭원대사 부도가 있고, 고색 짙은 대웅전이 절의 내력이 만만치 않음을 귀띔해준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를 차지한, 한 나라의 영의정 기자헌은 요사채에 들어앉아 신세를 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놈의 서궁 흉서가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으니, 허균이 죽일 놈이란 생각을 한다. 흉서에서 인목 대비를 보호하고, 혹은 인목 대비를 외면하려 한다는 등 이상하게 자기를 일그러뜨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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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식
202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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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령을 넘을 때 파암 박치의는 다만 땅을 내려다 볼 뿐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주막집에서 밥을 시켜 먹을 때에도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말이 없었다. 그런 박치의를 바라보며 나는 그가 죽은 서얼 친구들을 생각하느라 그런다고 믿었다. 그 분위기 그대로 원주를 지나 홍천으로 갈 때까지 우리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봄이 다가오는 홍천의 아늑한 산골짜기 입구의 허름한 주막에서 짐을 풀고 막 잠을 이루려는 무렵이었다. 강릉으로 가자는 내 제안에 박치의가 동의해 함께 온 것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혁명의 불길이 세상을 밝힐 것을 스스로 느껴 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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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식
2020.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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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해 9년(1617) 정사년 정월 스무날 저녁이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아 경운궁(慶運宮, 서궁, 현재의 덕수궁)은 한낮 내내 삭풍을 맞아 특히 이 초저녁 무렵에 하얗게 얼어붙은 듯 보였다. 긴 담장 밖에는 사람이 없었고, 한성부 서부 황화방의 정릉동 전 거리 어디에도 지나다니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삭풍이 사람들을 집 안으로 몰아넣은 모양이다. 그런 저녁거리를 김윤황은 조심조심 걸어갔다. 지난 광해군 3년 신해년(1611) 시월에 친정아버지 김제남과 친아들 영창까지 몰려서 잃게 된 인목 대비를 서궁에 유폐시키려고 일부러 경운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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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식
2020.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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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겨울이 찾아왔다. 추섬의 집에 머물다가 상곡 본가로 가 외별당의 문을 활짝 열어 보았다. 정치를 논하던 칠서는 사라졌지만, 그들의 호방한 기상과 울분에 찬 목소리가 쟁쟁히 들려오는 것 같다. 눈시울을 적셨다. 손곡 이달 스승이 평양에서 늙은 기생과 산다는 소식만 들려올 따름이다. 다음날 나는 이이첨의 집으로 곧장 들어가 사랑채에서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방안은 온통 호피(虎皮)였다. 호탄자(호피 무늬로 짠 담요)로 깔린 보료에다가 벽에 그대로 호피가 붙여져 있었다. 권위와 함께 더 할 수 없는 사치가 여기 있구나. 그런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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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식
2020.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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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영은 경기도 여주에 도착해 남한강변 남쪽 칠서들의 근거지에 이르러 필사한 ‘홍길동전’을 건네주었다. 하루 지나 연의를 다 읽을 칠서들은 모두 ‘수호전’을 의식한 작품임과 동시에 조선의 형국에 맞는 매우 독창적이고 충격적인 내용이라며 감동했다. 몇은 아무 말 없이 하늘만 바라보았다. 이재영은 석선 서양갑이 전과 다른 의태로 자신을 맞고 있음을 느꼈다. 이게 뭐지? 오늘의 서양갑은 전날의 그보다 더 불안정한 분위기를 풍겼다. 저녁이 되자 마치 토굴처럼 생겨먹은 칠서의 거처에서 눈짓을 보내 서양갑을 불러내 함께 둑을 걸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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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식
2020.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