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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가족과 지인을 모두잃어버렸다
독자시
김진숙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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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외로운 날이었다아주 오래 산길을 걸었다누군가 다가오는 듯하여 뒤돌아보면바람뿐이었다까마귀 두 마리가 순서를 맞추어 울었다쳐다보니 다래 덩굴이 나무를 감싸고애원하듯 매달렸다이제는 애원할 세상도 없는데무엇에 매달려야 할까해가 질 때까지 산길을 걸었다외롭고 추운 날이었다
독자시
김남극
2024.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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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아무도 오지 않았다차가운 우편함 속으로 냉랭한 바람 혼자 드나들 뿐안부 한줄 쓰지 못한 채 어둠이 덮쳐 오곤 한다가녀린 가지 끝으로 사뿐히 내려앉던새들마저도 오지 않는 날이 잦아졌다엇나간 문틀 사이로 황소바람이 드나들고간간이 들려주던 그 사람 안부마저도끊어 진지 여러 날이 흘렀다오늘은 안개가 바닥까지 내려왔다한 치 앞을 분별할 수 없더니희끗희끗 싸락눈이 눈물처럼 찔끔거린다어느새 어둠이 몰려와 사물을 검게 물들이고긴 골목길로 드나들던 사람들조차발길이 끊어진 초저녁집채만 한 적막이 문밖에서 나를 들여다본다차라리 이대로눈이라도 펑
독자시
전영순
2024.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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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고 사신 덕에산 하나 얻으셨네.엄마 몫의 나즈막한태백산맥 보다 더한뭘로도견줄 수 없는꽉 차고도 텅 빈 충만.
독자시
이향미
2024.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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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달을 피해 양지쪽으로 나앉은 촛불 방석의 두 줄 행렬빈 식용유 깡통 속에 촛불 한 자루씩 켜고 앉아 호객 중이다촛대 위의 경건한 촛불은 기도와 추모의 장소가 어울리고종이컵 속의 촛불은 혁명과 함성의 기호로 변용된 광장이 어울리고하루 벌어 하루 입을 사는 시장 통 엉덩이 아래 촛불은1인용 추위를 녹이는 간당간당한 난방촛불 방석에 걸터앉아 발갛게 언 손을 엉덩이 밑에 찌르고눈으로 입으로 오가는 사람들 뒤꿈치를 좇는 불의 사용법당신에게 초 한 자루 사용법을 묻는다면다락방에 두고 온 삼중당 문고와목침으로 베시던 아버지의 고물 옥편의 거처
독자시
박재연
2024.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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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대화퇴까치돌고래가 산다물고기들이 오가는 길목그물을 쳐두었다들어오기만 하면 빠져나갈 수 없는, 덤장여기 사람의 바다동해안 고불개 해변당신과 나만이 아는 아지트해당화 한 그루 심는다아직 사람에게 꿈이 되지 못하고누군가를 덤장에 가두고 있다먼 훗날, 사랑마저 덤덤해지거든묵호 등대 마을에 정박하지 말고얼른 뱃머리를 돌려도 된다밤중 같은 해무가 걷히고해당화 피는 계절이 오면동해 고불개 해변에까치돌고래가 다시 돌아오면 좋겠다* 동해시 천곡동에 위치한 바닷가
독자시
이애리
2024.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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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예보에는폭설이 내린다고 하는 저녁눈이 되지 못한 비가부슬부슬 내리고 있는데코로나로 세상은 뒤숭숭하고여기저기 들려오는 아프다는 소식에외출도 삼가고 집에만 있다 보니죽는 날 받아놓은 사람 마냥매사가 무기력하고 무료하기만 한데무엇을 해야겠다는 의욕도 목표도 없이집안일까지 밀쳐놓으며 하는 말옛날에도 나라에 역병이 돌 때는아무것도 안 하는 거라는 어르신의 말씀오늘은 나도 그렇게 그렇게핑계 아닌 핑계를 대는 날이다
독자시
송현정
2024.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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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은 이월 移越짧아서 게눈 감추듯얼음 풀어 강물 돋우는 달열두 달 중 키 제일 작아도기죽지 않고 온기 품어두꺼운 옷 한 벌 벗기고,몸집 가장 작아도아낌없이 등을 내주고겨울 녹여 봄을 건너게 하는 징검다리마른 가지 꽃망울 틔워 푸르른 들녘희망의 숨결로 춤추는수양버들의 가락이 온마을을 적시는작은 거인의 착한 달
독자시
심재칠
2024.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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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문장을 낳는 거대한 낱말밭저문 강으로 하나둘 물고기별이 뛰어내리면떼를 지어 떠오르는 은어 같은 비문들얼마나 많은 밤의 주름을 접었다 펴야한 줄 문장이 파닥거릴까나는 시방당에 주저앉아 등 굽은 관념을 썼다 지우며째깍거리는 어둠만 훌쩍거린다생각의 수위가 범람할수록 날파리처럼 따라다니는 단어들밤새 별의 부리로 쪼은 어둠의 문장이꼬리지느러미 흔들며 시어(魚) 떼처럼 떠 오른다
독자시
정클잎
2024.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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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보고환하게 웃었다착각은 순간밖에 위안하지 못한다는 말에내일이 까마득해졌지만잘못을 시인하고 싶지는 않았다전등 불빛이 뿌옇게 흐려졌다부둥켜안고 바라보고만 있었다시간이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독자시
정중화
2024.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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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곳에바람을 초지로 빌려 쓸 수 있다면그늘과 햇볕이 환승하는 곳마다꽃들과 초록이 야단스러워도 괜찮은이만금의 그늘과저만큼의 한 때를오후로 거느렸으니이제 맹지에 묻어두었던 약속을 하나씩 꺼내 볼 차례너무 이른 너의 말과 한참 지난 나의 말 중어떤 말투를 우리의 주소지로 정해야 할까도처에 출몰하는 서로의 이면들아무때나 정차하는 마음이 바람으로 분다면거기, 그곳에 폐각처럼 싸 놓은 그늘을 모두 버리고 올 수 있을까바람의 천성은 부순 걸 또 부수는 일산산이 부서져 다시 맨 처음이 되는 일그런 바람을 빌려 쓸 수 있다면
독자시
김정미
2024.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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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도 비도 가는 곳을 말하지 않았다.나의 사랑과 기다림 앞에애초부터 유예기간은 없었다.바람이 서걱이는 날이면그대가 보고 싶어졌다.기다리지 않아도 기다려졌다.연줄 마냥 풀렸다 팽팽히 당겨지는 삶내 삶에 가정법은 없다고살아가며 살아가며 되새김질 한다.빨랫줄에 줄줄이 엮어겨울바람에 깨끗이 말려 둔사랑과 그리움을 꺼내어그대 가슴 안에 걸어 둔다.툭- 툭툭- 툭
독자시
조남진
2024.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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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 낀 나무 물오르는 소리이름모를 꽃향기 닿는나뭇잎 날개펴는달뜨는 소리 귀 기울이는눈내리는 소리 쌓여가는승방의 묵언소리
독자시
정원대
2024.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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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한 마리 뉴스 상자 안에 누워있다별자리 따라먹이를 찾던 눈동자는 길을 잃었고눈밭의 외침도 난파선으로 잠기고 있다지금도,술래잡기처럼 잠수 중인 빙하가거짓말 같이 바닷속으로 누워 버리는 날북극곰은 어느 별을 걸어야 하나?우리의 발자국발자국의 발자국은 어디에 숨길 것인가?저녁9시 뉴스가 소금기에 젖어 말을 더듬고허공의 이마가 물에 잠긴다은하고 갔던 비행기가활주로를 잃었닫고 급히 타전하고 있다이땅의 사람들은하나, 둘 깊은 잠에 빠져들고……
독자시
심동석
2024.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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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에는 착한 아이가 끝내 행복해지는 옛날이야기와 아이 셋이 살았어. 착한 척만 하던 아이가 골로 가는 이야기도 있었나, 하여간 대개 호랑이 곰방대로 시작해 행복해지는 걸로 끝나는 이야기들이었어. 아이들은 여린 단풍나무 같았지. 이야기마다 실제로 다 보았다는 할아버지가 휘어 묶어주는 대로 잘도 자라나는.화투패 꽃점 치는 할아버지 뒤를 졸졸 따라 날아다니는 아기단풍들, 옛날이야기가 끝나면 마루벽에 걸렸던 호랑이 어슬렁거리는 마당에서 숨바꼭질을 시작했지. 열까지 천천히 큰소리로 세고 눈을 뜨면 들켜주느라 착해지고 못 본 척해주느라 착
독자시
조현정
2024.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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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오리 떼가느다란 발은물속에 담그고해 넘어가도 그 자리날아가는 법을 잊은공지천의 하루눈은 까맣고갈대 숲 사이눈발이 비늘처럼 휘늘릴 때도아무도 오지 않는 미동 없는 겨울강몸속에서 파닥이는동천 끝 수초들
독자시
석정미
2024.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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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하는 예감이당신의 뒤태에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겨우내 달고 살았던 영하의 관절은마디마디에 씨눈 같은 근력을 접붙입니다약사 천변엔 해동된 발자국들이 삼삼합니다
독자시
정클잎
202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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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남도 바닷바람은목숨을 걸고 동백꽃 모가지를 지나간다아! 붉은 피,비린내도 없이 소복하게떨어져 쌓이고저 징하디 징한 몸은 미련 따윈 없어싹둑 배꼽 빠진 자리아물 새도 없이 소금기 많은 바람을꼭지에 모셔 온다외면하고 싶은 마음은 늘 들키기 마련이어서발목을 접고 또 접어 그 앞에 나를 마주앉히며1월 동백이여비명을 틀어막느라전속력으로 자신의 발등을 찧는거기서나는 내 슬픔을 다 쓰고 또누군가의 슬픔을 빌려다 쓴다.
독자시
김창균
2024.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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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는 낮을 빨아들여 암흑에 가두고가면으로 낯을 가린 채 드러눕는다 얼굴 반쪽이 바닥에 닿으면 낮이라는 공장은 시동을 끈다밖으로 밀어내는 소용돌이에 넋을 놓아도 좋을 축제가 기다리는 파란겨울밤,고요를 찾아온 영혼들은스멀스멀 일어나 목을 늘인다공원 의자엔 별들이 내려와 졸고나무는 별꽃을 달고 광대처럼 춤춘다지나가는 바람은 음악이 되고달님이 축포를 터뜨릴 때고요는 실눈을 뜨고 파란 밤을 지킨다빛의 축제가 벌어지는 밤 속의 낮에는떨어지는 별똥별도 꽃처럼 피었다 진다불빛이 별들의 영토에 쳐들어와서 들쥐처럼 고요를 갉아 먹고 있다고요가 하품
독자시
김정서
2024.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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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 아래에는 낙엽이 살고 있었다 염색체도 국적도 모르는 나뭇잎 하나 이력서도 내지 않고 돌 아래에 주저앉았다 종교도 이념도 뭉개진 주인공이 들숨을 쉬기에 물살은 너무 빨랐다꼬르륵 물을 먹으며 지구가 뒤집혔다 神도 구름을 한 움큼씩 던지며 응원하고 있었다 물장구를 치다 고꾸라진 물방개가 찢겨진 허리를 휘어잡았다 숨을 고르던 나뭇잎 둥실 떠올랐다태평양 행이라는 팻말을 단 물결을 잡고 덤블링을 했다 둥실둥실 뱃노래가 반주를 하고 화석이 되려던 나뭇가지 노가 되어 물살을 갈랐다미끌 미끄러지는 미꾸라지도 은빛 반짝이던 피라미 지느러미도
독자시
이용희
2024.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