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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북부선 고성 노선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 당시 금강산 관광객들로 늘 만원이었다.과거 동해북부선 철도 노선 가운데 고성구간(남북 고성 포함)은 전체의 43.1%를 차지했다.함경남도 안변역∼양양역 구간 총연장 192.6㎞ 가운데 고성구간은 83㎞로 남고성 지역만 44㎞다.정차역도 모두 32개 역 중 13개가 고성지역에 위치해 있었다.북으로부터 남애,장전,외금강,삼일포,고성,초구 등 6개 역이 북고성지역에,제진,현내,거진,간성,공현진,문암,천진리 등 7개 역이 남고성 지역에 설치됐었다.일제는 1927년부터 대대적인 한반도 철도망 확
기획
이호
2018.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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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최북단역 ‘제진역’동해북부선의 철도역.고성군 현내면에 위치해 있는 현재 남한 최북단 역이다.1950년에 폐지된 초구역을 계승했으며 민통선 이북에 있는 탓에 군의 허가가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원래의 역명은 ‘저진(猪津)’이었으나 이 지역이 예전에는 ‘제진리’로 불렸다는 고성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한글표기는 ‘제진’으로 표기하게 됐다.동해선 복원사업에 따라 2006년 3월15일 남북출입사무소로 준공됐다.당시 정부는 제진역에서 군사분계선까지 7㎞에 철로를 놓아 북쪽에 있던 동해선과 연결했다.우여곡절 끝에 2007년 5월1
기획
이호
2018.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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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1937년 12월 1일 완전 개통한 동해북부선 양양∼원산 구간의 출발역이자 종착지였던 역이 위치했던 양양지역 주민들은 동해북부선을 통해 남북교류협력 시대 동해안 중심도시로서의 옛 영광 재연을 바라고 있다.동해북부선은 일제가 수탈을 목적으로 건설한 함경남도 안변역~강원도 양양역 구간(총연장 192.6㎞)의 철도다.일제가 석탄과 목재,광물,해산물의 반출,함경선과 부산과의 연락을 목적으로 건설한 동해선 북쪽구간이 동해북부선이었으며 그 중심이 양양역과 원산역이었다.양양역과 원산역 180㎞를 이어주던 동해북부선은 영동지역과 서울을 연
기획
이호
2018.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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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북부선의 출발역이자 종착역이었던 양양역과 선로는 지금 사라져 옛 성세조차 구전으로만 확인되고 있다.사라진 역터에는 잡초가 가득하고 농로로 변한 선로에서는 더이상 기차가 다닐수 없지만 역사 주변에 남겨진 플랫폼 흔적과 하천에 덩그러니 남은 일부 교각들은 이곳이 기찻길이었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본지 취재진의 요청으로 철길 흔적을 쫓던 팔순의 주민은 “동해북부선은 그냥 열차가 아니다.동해안 서민들에게는 가족의 희망인 자식을 대처(서울,일본)에서 교육시킬 수 있었거나,가족 모두 인생에 단 한번 갈수 있었던 금강산 관광의 꿈을 실어나르던
기획
이종재
2018.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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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양광업소-동해북부선 존재이유,일제 수탈의 흔적양양의 서쪽 설악산 대청봉 끝자락에 위치한 서면 장승리에는 양양 광업소가 있다.양양광산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38년이다.일제는 1933년 시험채굴을 해오던 중 이곳에 자철 함유량이 50~80%인 양질의 철광석이 대량으로 매장됐음을 발견하고 본격 채광했다.동해북부선은 이곳에서 생산된 철광석 수송에 주로 이용됐다.당시 양양광업소 주변에서 거주한 지역주민 김지윤(84)씨는 “한국전쟁이 날 때까지 화물열차가 하루 1~2회씩 부지런히 오갔다.열차가 이곳에서 나온 철광석을
기획
이종재
2018.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