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TV에 매일 등장하는 단어가 백령도이다. 침몰한 천안함 인양 때문이다. 이제 함미, 함수의 인양이 모두 끝났다. 먼저 순직, 산화한 천안함 장병들의 명복을 빈다.
나는 30년 전 해병대 장교로 현재 천안함의 함미와 함수가 침몰한 인접 백령도 해안의 소대장으로 근무했다. 어느 해 여름 전투수영 훈련을 하던 중 튜브가 바람에 실려 연봉바위 쪽으로 흘러가는 것을 추격하여 회수하려던 마음을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너무 물살이 빨랐다. 그때 포기하지 않았다면 인명사고가 났을 것이다.
30년 전 냉전시대 백령도 전출 발령은 해외로 파병 가는 느낌이었다. 바다 건너 북한의 ‘장산곶’ 촛대바위와 ‘월례도’ 섬이 보이고 잔잔한 바다위로 물살을 내며 북한 고속정이 어선을 감시하며 다녔다. 큰 상선들이 북한의 남포항으로 가는 모습도 자주 관측되었다. 인적이 드문 초소 아래 좌우로 펼쳐지는 콩돌 해안과 사곶 비행장은 지금은 관광객으로 성황을 이룬다. 저 멀리 대청도가 보이고 그 중간의 인당수에 떠있는 ‘연봉바위’는 심청의 연꽃 환생을 알려주는 곳이다. 예부터 이곳은 파도가 험한 바다로 사람들은 경계를 한 곳이다. 바로 이곳에서 천안함이 사고를 당했다니…
오월 어느 날 까나리 조업이 한창인 정오쯤에 갑자기 해무가 짙게 몰려오고 앞도 안 보이는 백령도 전역에 전투배치 비상경계 태세가 내려져 전원이 완전무장하고 참호에서 실탄을 장진하고 지시를 기다리던 기억이 난다. 그날 북쪽 어선이 해무로 남쪽으로 표류하다 레이더에 포착되어 내려진 실제 상황이었다. 그날 구조된 북한 어민들이 며칠 후 판문점으로 송환되던 모습이 TV로 중계되었다. 대부분의 장병들은 전투가 발생하면 백령도는 육지와 단절되어 독자적으로 본토에서 지원이 올 때까지 생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오직 군인정신과 충성심으로 명령에 죽고 살았다. 사병들은 제대 날짜만 손꼽아 기다리고 간부들은 전출만 고대하였다.
청년들에게는 병역의무가 가장 큰 스트레스이다. 인생의 황금기에 2년 정도 사회와 격리되는 이 기간이 너무 힘든 것이다. 어른들은 모이면 군대 이야기를 많이 한다. 군대 생활이 춥고 배고프고 힘들어서 추억과 할 얘기거리가 많다. 예전에는 ‘군대 갔다 와야 인간이 된다’고 했다. 지금은 틀린 말이다. 앞으로 군대에 대한 인식을 이대로 두면 어떻게 될까? 어느 누가 애국심으로 미화하여 군인정신을 갖도록 할 수 있겠는가?
그 옛날 백령도에서 함께 한 전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해병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고 힘든 생활을 참고 인내하도록 요구한 소대장을 얼마나 원망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