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 순회전 ‘심연수가 1940년 수학여행을 기억하는 법’
본지 주최 26~31일 부산전
내달 인천·12월 강릉 전시
용정 국민고등학교 수학여행
금강산·서울·평양 등 여정 기록
67편 작품 ‘무적보’ 시조집 엮어

▲ 심연수가 중국 용정 지명 유래가 된 우물에서 용정국민고등학교 4학년 3반 동창생과 찍은 졸업앨범 수록 사진.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로 앉은 학생이 심연수이다.
▲ 심연수가 중국 용정 지명 유래가 된 우물에서 용정국민고등학교 4학년 3반 동창생과 찍은 졸업앨범 수록 사진.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로 앉은 학생이 심연수이다. 사료제공=심상만씨

‘경주’,‘부여’,‘설악산’의 공통점은 수학여행이고,지금도 유효하다.재작년 딸이 다니는 중학교 수학여행 일정과 코스를 자문하는 학부모위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내가 경험한 고등학교 수학여행 코스가 40년의 세월을 건너 거의 똑같이 실현되고 있었던 것.

수학여행은 학교가 의도한 교육이었으나 학생들은 해방감으로,생경함으로 자신만의 무늬와 색깔로 새겼다.수학여행의 기억을 증명할 소장품은 기껏해야 앨범 속 사진이나 촌스런 기념품 정도일 것이다.

대개는 심상에 간직된 수학여행의 추억을 슬며시 떠올리게 하는 기획전 ‘심연수가 1940년 수학여행을 기억하는 법’이 전국 순회전으로 열리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지난 12∼15일 유성문화원 전시실에서 대전전시회가 열려 호평받은데 이어 오는 26∼31일 부산전이 수영구생활문화센터 갤러리에서 마련된다.11월에는 인천전이 10∼15일 인천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 전시실에서,12월에는 고향 강릉에서의 전시로 이어진다.

강릉 출신 심연수(1918∼1945)는 일제강점기의 시 ‘소년아 봄은 오려니’로 유명할 뿐 아니라 개인으로는 드물게 방대한 문학사료를 남겨 국가등록문화재 신청 작업이 추진 중이다.강원도민일보·심연수기념사업회·강릉문화원이 공동 주최 주관하는 ‘심연수가 1940년 수학여행을 기억하는 법’ 전국순회전은 바로 심연수가 남긴 문학사료를 집중 조명하는 기획전.
 

‘심연수가 1940년 수학여행을 기억하는 법’ 전국순회전이 눈길을 끄는 것은 심연수의 수학여행이 좀 특별하기 때문.심연수는 8세에 고향 강릉을 떠나 러시아,북간도를 거쳐 10년 후인 18세에 만주국 치하의 한국인 문화중심지 용정으로 이주하는데 1940년 수학여행 때는 용정국민고등학교 4학년의 23세 늦깎이 학생이었다.

수학여행 기간과 일정도 남달랐다.5월 5일 용정역을 출발해 금강산,서울,개성,평양 등 모국의 역사유적지와 다롄,하얼빈 등 만주국의 신흥도시를 아울러 5월 22일 도착하는 18일간의 긴 여정이었다.

용정고 문예부 부원으로 활동하며 독서와 글쓰기에 몰입하고 있던 그는 수학여행의 경험을 문학으로 녹여내 시조와 산문으로 창작한다.수학여행 현장에서의 느낌을 기억하고 곱씹으며 ‘방울글을 쥐어짜내는’ 습작 끝에 67편의 시조를 얻어 원고지에 정서해 ‘無跡步(무적보)’라는 제목을 달아 유일무이한 수학여행 육필시조집으로 엮어낸다.

5월 10∼11일 서울을 견학했을 때는 시조 ‘한강’,‘남대문’,‘북악산’,‘서울의 밤’,‘경복궁’,‘경회루’,‘덕수궁’을 창작했다.5월 12일 개성에서는 ‘송도’,‘만월대’,‘선죽교’,‘송도를 떠나며’를,5월 13일 들른 평양에서는 ‘모란봉’,‘모란대’,‘을밀대’,‘부벽루’,‘대동강’,‘기자릉’ 6편의 시조를 지었다.

▲ 심연수와 함께 수학여행을 떠난 용정국민고등학교 동창생 사진이 출신지별로 표시돼 졸업앨범에 실렸다.
▲ 심연수와 함께 수학여행을 떠난 용정국민고등학교 동창생 사진이 출신지별로 표시돼 졸업앨범에 실렸다.

심연수는 수학여행 18일간의 여정을 산문으로 풀어낸다.처음에는 연습장 묶음 백지에 초고를 쓴다.이어 원고지에 정서해 ‘일만리 여정을 답파하고서’를 완성한다.그리고 수학여행을 다녀온 지 9개월 만인 1941년 2월 18일 당시 만주국 수도 신징(현 창춘)에 본사를 둔 만선일보에 ‘근역을 차저서’라는 제목으로 3회에 걸쳐 발표된다.‘근역’은 무궁화가 많아 불린 모국의 다른 이름이다.1만리 여정은 말 그대로 수학여행 전 구간 18일간의 거리를 통틀어 가리킨다.

심연수는 전체 여정을 담은 것 외에 가장 기대하고 인상 깊었던 금강산에 대해 한 편의 여행기를 더 썼다.‘무제(오날의 갈 길은)’은 제목을 붙이지 않았으나 원고지 앞부분을 비워 별도로 완성했음을 알려준다. 일부 원고는 누락돼 전체 분량은 알 수 없다.금강산여행기는 ‘오늘의 갈 길은 여행노정 중 제일 추모와 기대를 가진 코스’라고 시작된다.말로만 글로만 알던 금강산을 눈앞에 둔 벅찬 심경을 피력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금강산을 방문해서는 탐승지마다 일일이 관광스탬프를 찍어 34쪽의 병풍식 스탬프첩을 남겼다.겉면이 직물로 장식된 기념스탬프첩에는 금강산 탐승지를 비롯 서울,용정역 등 60여 종의 스탬프가 찍혀있다.

심연수의 1940년도 일기집에는 수학여행 관련한 상황과 심경을 담은 내용이 있다.2월 2일자 일기에는 ‘벌써 4학년이 되었다고 수학여행이니 앨범이니 하며 교실이 뒤숭숭하여진다.그러나 나는 그저 꼴만 보자하고 한 자리에서 듣기만 하고 있었다’라고 쓴다.수학여행을 떠나기 이틀 전 5월 3일자 일기에서는 ‘웨 마음이 떠들고 우중중하여 선생의 교수가 잘 들어가지 않는다.오 수학여행 때문인 모양이다.그것이 내 마음을 빼앗아가고 하는 통에 그런 일이 생하는 모양이다’라고 쓰고 있다.

수학여행 단체사진이 3쪽에 걸쳐 실려있는 용정국민고등학교 졸업앨범도 남아있다.

국가등록문화재 신청 추진 중이어서 원본을 접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있으나 스물세 살 늦깎이 문학도 심연수가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의도된 교육인 1940년 수학여행과 만나 어떻게 기억되고,기록하였는지 80년의 세월을 건너 오늘의 시공간 속에서 생생하게 펼쳐진다. 박미현 수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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