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 PLZ 페스티벌 결산 지상대담
DMZ 일대 야외공연 30여 회
평화지역 5개군 장소성 부각
현장 음원 그대로 영상에 담아
관중들 총체적 경험에 집중
“모든 생명이 만드는 소리의 합
지역 역사와 함께하는 축제로”

▲ 2020PLZ페스티벌은 고성 화진포 해변의 에어돔 공연(사진 위,임미정 감독과 조윤경 첼리스트)을 비롯해 여러 진풍경을 연출했다.
▲ 2020PLZ페스티벌은 고성 화진포 해변의 에어돔 공연(사진 위,임미정 감독과 조윤경 첼리스트)을 비롯해 여러 진풍경을 연출했다.

평화와 역동성이 함께 숨쉬는 DMZ의 자연,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무대가 됐다.클래식 선율 속에 DMZ는 평화와 생태의 지대,‘PLZ(Peace&Life Zone)’라는 새 이름에 익숙해지고 있다.‘소리안의 소리여’를 대주제로 한 ‘2020 PLZ 페스티벌’이 일정을 마쳤다.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 5개 군에서 30여번의 공연이 열렸는데 어느 한 곳 쉬운 무대가 없었다.고성 화진포에는 에어돔이 동원됐고,백담사 돌탑 길 한가운데 피아노를 옮겨 연주하기도 했다코로나 재확산으로 관객을 많이 초대하지 못하는 대신 영상을 제작,5개 군특유의 장소성을 영상 콘텐츠로 살려냈다.폭우가 쏟아진 7월 고성 건봉사의 개막공연부터,차디찬 바닷바람이 불어 온 11월 화진포 해변까지…변화무쌍한 자연 속에 생명이 가진 힘을 공연 안으로 녹여내는 작업이었다.임미정 예술감독,이두현 음향감독,박재현 페스티벌 대외협력이사와 지상대담을 갖고 클래식이 강원도 비무장지대에 계속 울려퍼져야 하는 이유를 들었다.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라 페스티벌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평화로 가는 길이 그만큼 험난하다는 상징 같기도 합니다.
△임미정=“오프닝 공연을 폭우로 인해 취소해야 하나 고민했던 이후 30여회의 음악회 기획을 취소하는 과정이 몇 번 반복됐습니다.DMZ 넓은 지역의 상징적 공간을 찾아다니며 음악회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보통의 음악회보다 몇배 더 복잡한 작업이었는데 마치고 나니 꿈만 같습니다.피아노를 가을의 백담사나 겨울 화진포 바다앞에서 연주하는 경험은 정말 특별했었고요.어느 무대보다도 아름답고 감동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이두현=“영상제작을 위해 녹음을 믹싱,편집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데 연주들을 반복해서 듣다보면 그곳 현장의 자연,함께 했던 사람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며 또 그 연주의 아름다움에 전율이 일곤 합니다.코로나19로 인해 작은 규모로 열린 음악회들이었지만 그 울림이 결코 작지 않다고 느낍니다.추운 날씨에 핫팩으로 손을 녹여가며 온 마음을 실어 평화와 생명을 꿈꾸고 노래한 예술가들에게 경외심이 듭니다.그들이 노래한 꿈과 희망이 앞으로 나올 영상매체를 통해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공명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박재현=“이 시국에 강원도 야외에서 30여회 공연을 진행했다고 하면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십니다.얼마나 힘든 일인지,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을 하시는거죠.(웃음)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고 싶었습니다.어떻게보면 한국의 접경지역 아주 조그마한 페스티벌일 수 있겠지만,우리의 이 작은 시도들이 나비효과처럼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희망과 생명의 움직임이 될 수 있을거라 믿습니다.음악이 가장 효과적이고 거부감없이 사람들의 삶에 또 사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니까요.”
 

▲ 인제 비밀의 정원에서 박종성 하모니카 연주자의 연주를 듣는 노부부 관객의 평화로운 모습.
▲ 인제 비밀의 정원에서 박종성 하모니카 연주자의 연주를 듣는 노부부 관객의 평화로운 모습.


-올해 페스티벌에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부분은.
△임미정=“페스티벌이 표현해야 하는 정체성 확립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과거와 아픔과 미래의 희망이 어떻게 음악으로 드러나게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요.장소 선정,다양한 음악가들의 참여,청중이 음악만 듣는 것이 아닌 피아노 운반을 도와주거나 바닷가 산책을 하는 등 편안하면서도 총체적 경험을 나누는 것.그리고 영상으로 그 모든 뜻이 보여지도록 하는 것에 정성을 많이 들였습니다.”
△이두현=“역사의 아픔을 품고 있는 곳에서 울려 퍼지는 치유와 희망의 선율을 현장의 청중에게,그리고 앞으로 영상을 보게 될 많은 이들에게 현장감 있게 잘 전달하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제가 중점을 둔 부분은 기술을 사용하되 기술이 가급적 덜 드러나도록 하는 것입니다.공연음향에 있어서는 가급적 청중들이 소리를 스피커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듣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노력했고,그를 위해 공연용 대형 스피커가 아니라 녹음 스튜디오용 소형 스피커를 바닥에 설치,시각적으로도 연주자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또 영상감독과 협의해 영상을 위해 마이크가 꼭 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판단하면 음질의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기꺼이 마이크를 바닥에 놓았습니다.”
△박재현=“차별화입니다.임미정 예술감독님이 말씀하신 정체성 확립과 비슷한 궤를 가지고 있습니다.‘기존의 다양한 페스티벌들과 어떤 차별성을 가질 것인가’가 가장 큰 핵심이었습니다.저는 그 중에서도 한가지를 고집했는데요, 그건 ‘소리’였습니다.PLZ페스티벌의 핵심은 음악이고,음악의 핵심은 소리죠.특히 클래식 음악 페스티벌은 동영상을 만들 때 ‘소리’에 해당하는 연주음원은 스튜디오에서 따로 녹음을 주로 합니다.좀 더 완벽한 연주와 음질의 퀄리티를 확보하기 위함이죠.하지만 PLZ페스티벌의 영상은 ‘음악을 포함한 모든 소리의 합’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PLZ가 Peace & Life Zone인데 평화와 생명이 있는 장소가 주체인 페스티벌의 영상에는 당연히 모든 생명의 소리(새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등 자연의 소리와 사람들의 호흡소리와 발자국 소리 등)와 음악이 어우러진 총체적인 PLZ의 음악소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이 세상에 완벽하고 멋진 음원과 앨범들은 많지만,특별한 자연 속 공연은 상대적으로 희귀하고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이렇게 제가 고집한 덕분(?)에 2020년 PLZ페스티벌의 모든 영상은 현장녹음 음원을 그대로 영상에 담았습니다.이 자리를 빌어 엄청 고생해주신 이두현 음향감독님과 음악가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 철조망 앞에서 연주하는 임미정 예술감독.
▲ 철조망 앞에서 연주하는 임미정 예술감독.


-임 감독님은 모든 출연진들에게 특별한 편지를 보냈다고 하던데 어떤 내용과 의미가 있었나요.출연진들의 반응은?
△임미정=“같은 곡을 10년을 연주해도 연주는 매 장소에서 다릅니다.참여하는 분들의 연주가 그 장소에서 특별한 영적에너지를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정식 공연장이 아니라서 옷을 갈아입는 대기실 및 가끔은 화장실도 없습니다.날씨도 춥거나 비가 오는 가운데 연주해야 하고요.일반 상황이면 다시는 연주하지 않겠다는 조건이지요.하지만 우리가 음악을 처음 시작했던 가슴 속 이유들을 돌아보고,음악이 원래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역할을 아름답게 선사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이런 취지를 미리 알고 나면 연주자들도 특별한 애정과 경험을 가지게 되지요.참여하게 되어 영광이었다는 피드백들을 많이 주셨습니다.”

-7월 비오는 건봉사부터,11월 화진포 해변까지…PLZ를 따라 수많은 곳에서 다채로운 공연들이 진행됐는데,가장 기억에 남는 단 하나의 장면.묘사해 주신다면요.
△박재현=“그 동안의 에피소드로 책을 쓸수도 있습니다(웃음).그래도 굳이 하나의 장면을 꼽으라면 기획자로서는 제임스 홀 선교사의 선교기지가 보이는 고성 화진포 해변에서의 뮤직버블 공연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야외에서의 공연은 날씨로 모든게 좌우된다고 할 수 있는데,11월 말의 바닷가 야외공연은 악기 연주로써는 그냥 ‘말도 안되는’ 금지된 공연입니다.인기 유튜브 크리에이터인 첼로댁(첼리스트 조윤경)님에게 저를 한번만 믿어보라고 절대 악기에 차디찬 바닷바람 맞을 일 없이 야외연주를 할 수 있게 해드리겠다고 말씀드렸고,첼로댁님이 제안 내용을 들으시고는 바로 오케이 해주셨죠.현장에서 보신 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사진이나 영상을 보신 분들도 신기해 하시고 좋아하셨어요.연주자 분들도 다른 세상에서 연주를 하는 것 같다며 만족해 하셨구요.물론 기획과 제작,설치와 철거 과정은 변수도 많고 꽤 힘들었지만 그래도 아주 재미있는 작업이었습니다.”

-야외공연은 연주자나 장소섭외,장비 설치 등이 모두 매우 까다로웠을 텐데요.비하인드 스토리도 많겠습니다.
△임미정=“올 한해 주말마다 5개 군들을 돌아다녔습니다.어려움도,결정해야 할 것도 많았지만 집에 돌아갈 때는 이상하게도 머리가 맑았어요.노후에 강원도의 아름다운 산속에 집을 짓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항상 높은 산들의 장엄한 풍광을 좋아했거든요.주위에선 자연인 생활을 하겠다는 의미로 생각하시면서…쉽지 않을 걸? 하십니다만(웃음)”

△이두현=“전기 공급이 불가능한 장소에서 공연음향을 위해 고용량배터리와 220V 변환기를 사용했는데,화진포 해변의 폐막공연에서는 초겨울 바닷바람을 피해 연주자들이 에어돔 안에서 연주했고,바람을 넣는 750W 에어팬을 3시간 연속 가동하다보니 공연이 끝나갈 무렵엔 배터리가 거의 방전되어 변환기가 계속 경고음을 내고 있었습니다.에어팬이 멈추면 에어돔이 주저앉아 버리는데,다행히 공연이 끝나고 그 안의 피아노를 꺼낼 때까지 배터리가 버텨주었습니다.제겐 정말 가슴 졸이는 순간이었지요.에어돔 공연 전에는 바깥에서 팝페라 공연이 있었는데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핸드마이크에 스폰지가 아닌 깃털로 된 것으로 윈드스크린을 씌워야 했습니다.성악가가 입 속으로 깃털이 자꾸 들어가서 노래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했지만 대안이 없어서 그대로 진행해야 했습니다.성악가에게 참 미안했고,제겐 앞으로 그런 경우에 어떤 대안이 있는지 찾아내야 하는 숙제가 주어졌습니다.”

△박재현=“야외공연은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습니다.공연에 최적화 된 장소도 아니고,야외 공연을 음악가들이 환영하지도 않습니다.또 악기세팅이나 음향장비처럼 만족도 있는 공연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절대 쉽지 않죠.당연히 비용도 많이 들고요.이런 야외공연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관계들의 연합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페스티벌의 주관(PLZ페스티벌),주최(강원도 및 5개군),협력(악기렌탈 및 영상/음향팀),협조(군부대 및 관할부서),출연(음악가 및 사회)까지 이 다섯가지의 축이 서로 밀접하게 맞아 떨어져야 합니다.이를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근거인 페스티벌의 가치,취지가 그들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합니다.PLZ 페스티벌은 그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 올해 페스티벌을 진행하면서 그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결국 PLZ페스티벌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이 가장 중요합니다.”

 

▲ 인제 백담사 돌탑길 앞 김유철·임효선·전상영·장규민 피아니스트의 연주 모습.
▲ 인제 백담사 돌탑길 앞 김유철·임효선·전상영·장규민 피아니스트의 연주 모습.


-2021년 페스티벌에서는 어떤 그림을 그릴 예정입니까.
△임미정=“PLZ페스티벌은 고정된 무대에서 하는 것이 아닌,자연의 지형과 함께,그리고 그 지역의 역사와 함께 만들어가는 축제입니다.그러다 보니 세월이 가면서 그림이 더 잘 보여집니다.올해 진행하고 보니 첫회 때보다 더 많은 그림들이 나왔어요.오프닝 공연 인사말에서 ‘평화로운 것만이 아닌 이런 다이나믹한 모습이 자연이고 우리는 그 모든 것과 함께 공존한다’고 말씀을 드렸어요.내년에는 올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더 자연과 역사와 음악과 삶이 어우러지는 그림을 나오게 하고 싶어요.지역에 있는 이야기들도 더 촘촘하게 드러내고요.그것이 우리의 DMZ로부터 세계에 던지는,평온하지만 강렬한 메시지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모두에게 힘든 한 해였습니다.평화롭게 연말을 보낼 수 있는 클래식 음악 한 곡 하나씩 추천해 주신다면요.지금 이 순간 평화지역 하늘에 울려퍼졌으면 하는 그런 음악.
△임미정=“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 3악장을 추천 드립니다.장대하고 아름다워서 어머니 대지에 푹 쌓여 있는 느낌이지요.아련한 슬픔도 있지만 승화되는 감정이 있어요.힘들 때 자주 듣는 음악입니다.70년 전 비참했고 지난했던 과거를 지나 새로운 희망을 역동적으로 만들어 왔던 우리들에게,지난 한해가 힘들었으나 이제 다시 괜찮아질거라는 위로의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두현=“지금 그 곳에 차이콥스키의 발레음악 ‘백조의 호수’가 울려 퍼진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백조의 호수’는 제가 젊은 시절 심각한 정신적인 위기에 처했을 때 저를 치유해준 음악입니다.사랑의 힘으로 결국 악한 마법사의 저주가 깨진다는 음악의 스토리 자체도 현재 인류가 처해있는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박재현=“드뷔시(Debussy)의 아라베스크 1번(arabesque n.1)을 추천합니다.스위스 뇌샤텔 식물원에서의 연주영상이 아주 인상 깊었는데요.식물원 속 언덕에 빼곡히 앉은 사람들과 연주 시작전부터 간간이 울리는 새소리,살랑이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간혹 힘들 때마다 꺼내보는 영상입니다.특정한 장소와 음악이 주는 힘이 있음을 새삼 느끼곤 하죠.” 진행·정리/김여진 beatle@kado.net

■대담자 프로필

 

▲ 임미정 예술감독
▲ 임미정 예술감독

임미정=한세대 음대 교수.서울대·줄리아드 음대.스토니부룩 음대 박사.동아콩쿨·산안토니오 국제 콩쿨 1위.

 

▲ 이두현 음향감독
▲ 이두현 음향감독

이두현=독일 베를린 공대 음향공학과 및 베를린예술대학 톤마이스터학과.서울대 예술과학센터 선임연구원.

 

▲ 박재현 PLZ페스티벌 대외협력 이사
▲ 박재현 PLZ페스티벌 대외협력 이사

박재현=문화예술경영 박사.독일 베를린국립음대 학·석사 .한세대 및 동덕여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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