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노믹스 리포트] 강원 레미콘업계 생존 위기 직면
평창올림픽 앞두고 업체 수 급증
144곳 난립·건설업계 ‘불똥’ 우려
출하량 전국 평균 39.3% 그쳐
강릉·동해 등 도내 시멘트 업체
지난해 판매가격 7∼9% 인상
운송 단가 인상요구 등 ‘삼중고’

[강원도민일보 권소담·전소연 기자] 도내에서 144개의 회사가 경쟁하며 지역 건설업계의 주요 축을 이루고 있는 강원 레미콘업계가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지난달 기준 강원도레미콘공업협동조합에 소속된 도내 레미콘 업체의 제조업 상시근로자는 1392명에 달한다.이들이 부양하는 가족,운송업과의 연결고리 등을 고려하면 1만명 이상의 도민의 ‘생계’가 달린 산업이다.2011년 104곳뿐이었던 도내 레미콘 제조업체는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2017년 140곳으로 증가하며 불과 6년만에 업체 수가 36곳(34.6%) 늘었다.문제는 평창올림픽 이후 찾아왔다.일감이 대폭 줄었지만 지난달 기준 도내 레미콘 제조업체는 144곳으로 양적 규모는 여전하다.운송에 시간 제한이 있는 레미콘 특성상 건설 수요가 많았던 올림픽 개최지 인접지역인 평창,강릉,원주,횡성 등지에는 최근 3∼4년간 레미콘 업체 수가 두배로 늘었다.시·군별로는 삼척 21곳,원주 19곳,강릉 18곳,춘천·동해·평창 9곳 등이다.급격히 늘어난 업체 수로 인해 도내 레미콘업계는 무한 경쟁 상황에 놓였다.특히 지난해부터는 코로나19로 인한 건설경기 침체,벌크 시멘트 가격 인상 및 노조의 운송 단가 인상 요구 등으로 삼중고를 겪고 있다.


■ 한정된 일감,업체 수 증가로 인한 과당경쟁

레미콘(Ready-mixed Concrete)은 굳지 않은 상태의 콘트리크로,‘레미콘 제조업’은 시멘트와 모래·자갈 등 골재,물,기타 화학제품을 혼합해 제조한 후 굳지 않은 상태로 믹서트럭을 이용해 공사장 내 타설 현장으로 운반하는 일을 한다.미리 생산해 재고를 비축할 수 없고 주문 후 바로 생산해 현장까지 통상 90분 이내에 운반해야 품질이 확보된다.이 때문에 공급가능한 지역이 제한돼 지역 산업적 특성이 강하고 일정한 권역 내 업체들 간에 경쟁이 이뤄진다.또 레미콘 제조업은 비교적 생산 공정이 단순하고 KS표준 적용에 의해 제조업체 간 품질 차이가 거의 없어 시장 진입장벽이 낮다.업계의 98% 이상이 중소기업으로,판로 확보를 위해 조달물자(관급) 레미콘의 경우 권역 내 입지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제한경쟁입찰을 통해 공급되고 있다.

특히 강원지역은 겨울철이 길어 연간 공장가동 가능시간이 타 지역에 비해 비교적 짧고 산악지형이 많아 운반 거리 및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된다.즉 생산능력(공장설비) 보다는 운송능력(믹서트럭 보유대수 및 현장까지의 접근성)이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유사한 시장 규모의 타 지역과 비교하면 도내 2배 이상 많은 업체가 있어 과당 경쟁 상황에 놓여있다.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 및 강원도레미콘공업협동조합 등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기준 강원지역 레미콘 업체 142곳의 연간 출하량은 712만2986㎥로 업체당 평균 출하량 5만162㎥ 수준이다.전국 평균 업체당 출하량(12만7765㎥)의 39.3%에 불과하며 전국 권역 가운데 가장 적은 출하 규모다.서울·경인지역(32만4035㎥)과 비교하면 15.5%에 그친다.강원지역 레미콘 업계의 생산능력은 연간 6078만㎥로 서울·경인(1억7294만㎥),경북(7464만㎥),대전·세종·충남(6652만㎥),경남(6164만㎥)에 이은 전국 5위인 것과 비교해 한정된 시장 규모로 인해 출하량은 적고 영세하다.때문에 ‘적정 수의 공장 유지’는 지역 레미콘업계의 중요한 과제다.

지역 내 일감으로 파이가 한정된 업계 특성 상 업체 수 증가는 평균 판매량 감소와 직결된다.고정비용은 그대로인데 판매량이 줄면 레미콘 가격 인상 또는 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업체의 규모가 적을수록 주 원료인 시멘트 공급업체와의 원자재 구매 가격 협상이 제한되고 믹서트럭 운전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운반비용 및 제조설비 관리,인건비 등 고정비용 부담이 커진다.

이로 인해 품질관리와 공장 유지를 위해 불가피한 가격인상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 강원 레미콘업계의 현 주소다.또 강원지역의 경우 조달물자 수요 비중이 높고 도레미콘공업협동조합에서 대표로 계약해 업체별 균형배분하는 점을 이용,기존 업체가 물량 확보를 위해 타인의 명의로 추가 공장을 설립하는 등의 부작용도 발생한다.경기 부천시 등 타 지역에서는 레미콘 공장 설립승인 지침 등을 마련해 지역산업적 특성을 고려한 규제 등을 시행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 도내에는 특별한 제한이 없는 것도 업체 난립으로 인한 경쟁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 건설경기 침체에 벌크 시멘트값 인상 수익구조 악화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발표한 건설기업 경기실사지수(CBSI)에 따르면 서울을 제외한 지역의 이달 BSI 전망치는 76.9로 서울(81.8) 보다 4.9p 낮았으며 기준치(100)를 크게 밑돈다.건설업 관련 지수는 레미콘 산업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선행지표로,건설경기에 밀접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강원지역 레미콘업계의 부정적인 경기판단을 엿볼 수 있다.강원통계지청의 최근 산업활동동향 자료를 보면 지난해 11월 기준 레미콘·시멘트클링커 등이 포함된 강원지역 비금속광물 업종의 출하는 전년동월 대비 2.7% 감소했다.전체적인 광공업 출하 감소폭(0.1%) 보다 레미콘업계에서 특히 산업 활동에 타격이 컸다.

지난해 하반기 각 시멘트 업체에서 벌크 시멘트(포대에 담지 않고 전용 화물차로 수송하는 시멘트) 판매가격 인상을 각 레미콘 업체에 통보하면서 업계의 고심은 더 깊어졌다.

시멘트업계는 제조원가 상승,수익성 악화 등을 근거로 설명했지만 강원지역 레미콘업계는 “도내 다수 입지한 시멘트 공장을 통해 공급되는 벌크 시멘트의 물류비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것도 감내해왔는데,이번 가격 인상은 너무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시멘트 업체별로 살펴보면 강릉 한라시멘트는 지난 9월15일 출하분부터 t당 7만5000원에서 8만2000원으로 7000원(9.3%),영월에 공장을 둔 현대시멘트와 삼척 삼표시멘트는 7만5000원에서 8만1000원으로 6000원(8.0%),동해 쌍용양회공업은 7만5000원에서 8만500원으로 5500원(7.3%) 각각 공급가격을 올렸다.한일시멘트는 7만5000원에서 8만500원으로 5500원(7.3%),아세아시멘트도 7만5000원에서 8만300원으로 5300원(7.0%) 공급가를 인상했다.시멘트는 레미콘 제조 원가의 70∼75%를 차지해 시멘트 가격 인상은 레미콘 업계의 경영과 직결된다.

도내 레미콘 업체 132곳이 속한 강원도레미콘공업협동조합 등 강원지역 레미콘업계는 시멘트업계의 가격 인상에 대해 ‘동반자인 관련업계 및 지역과 상생을 포기한 실망스러운 결정이다’며 반발하고 있다.지난 2018년 10월 10% 수준의 가격 인상 당시 근거로 들었던 유연탄 시세가 최근 하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한국광물자원공사 자료를 보면 국제 유연탄 가격(뉴캐슬 기준)은 2018년 연평균 t당 73.0달러에서 2019년 55.8달러로 떨어졌고,지난해 45.9달러로 시세가 하락세다.유연탄은 시멘트 제조를 위한 연료의 80%를 차지,시멘트 업계의 원가 부담이 줄어들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강원지역의 경우 시멘트 제조 공장이 다수 위치해 있어 벌크 시멘트 공급을 위한 물류비 부담이 적음에도 타 지역의 대형 업체에 비해 비싼 가격으로 유통비용을 부담해왔던 것을 고려하면 상생과는 거리가 먼 결정이라는 비판이다.

이성열 도레미콘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시멘트업계가 가격 인상을 관철하려면 그에 앞서 물류비 대비 비정상적으로 가격이 높은 도내 시멘트 유통가격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 믹서트럭 운전기사와 갈등도 부담

최근 레미콘 믹서트럭 운전기사들이 운송 단가 인상을 요구하고 있는데다 지난해 11월 한국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 건설기계분과 강원지부 춘천지회 조합원 등이 주축이 돼 결성한 강원도영서레미콘운송협동조합이 출범식을 갖고 본격 활동에 들어가며 운송 배차권을 요구하고 있어 업계의 고민은 더 커졌다.

한국노총은 지난 22일 춘천시청 앞 집회를 열고 춘천·홍천 등 영서지역 6개 회사가 레미콘 기사에게 지급하고 있는 운송 단가에 대한 인상을 요구했다.노조가 공개한 영서지역 레미콘 기사들이 지급받는 운송 1회당 운송단가는 4만1400원으로 “수도권에 비해 약 30% 낮은 단가를 받고 있어 운송비 인상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종선 도레미콘공업협동조합 전무는 “수도권 믹서트럭 기사들이 4∼5회전할 때 강원지역은 운반비 효율이 높아 7∼8회전 할 수 있어 실제 수익은 강원지역 기사들이 더 많다”고 밝혔다.

믹서트럭 운전자는 자영업자로 계약을 맺는 근로자로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해당,노조활동을 펼치고 있으나 한쪽에서는 사업협동조합을 만들어 운송 배차권을 요구한다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익명을 요구한 도내 레미콘 업체 관계자는 “지역마다 특성이 다른데 수도권과 동일한 운송 단가를 요구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운송협동조합에서 배차권을 갖게 되면 레미콘 업체는 조합에 속한 운전기사와만 계약해야 하고,결국은 종속 당하는 구조가 될 것이다”고 우려했다. 권소담·전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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