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숙의 심연, 마르지 않는 호수에 문장이 흐른다
공무원 아버지·서예가 어머니 사이
꿈꿔온 화가의 꿈 학비 벽 막혀 좌절
공무원 생활 중 홀린듯 백일장 참여
문학 수업 찾아다니며 깊어진 필력
25년간 수필집 12권 발간 활동 왕성
현재 강원도문인협회 회장 중책 맡아
어린 시절 순수한 ‘나’로 돌아가
시 쓰고 수채화 그려넣는 삶 꿈 꿔

▲ 수필의날 낭송
▲ 수필의날 낭송

아 저기 호수지기가 오시네

호수지기님 안녕하세요,안녕,안녕…

마치 동화의 한 장면처럼 모임마다 사람들은 그니를 반가이 맞으며 인사한다.왜 사람들은 그니를 호수지기라 부르는 것일까.

그 이유는,45살에 그니가 낸 수필집 ‘호수지기’가 그냥 그니의 호가 되어 버린 때문이다.그니는 춘천 토박이다.세계여행은 1,2년마다 자주 다니는 편이지만,그니는 70평생을 단 한 번도 춘천을 떠나서 살아본 적이 없다.

▲ 박종숙 수필가가 출간한 서적들
▲ 박종숙 수필가가 출간한 서적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되던 해 소양로1가에서 그니는 태어났다.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서예가였다.
날 때부터 전쟁이 바로 주변에서 일어났으나 아이는 그 전쟁을 뚜렷이 알지는 못했다.그리고 휴전이 되고 학교에 들어갈 무렵 비로소 아이의 눈에 전쟁이 남긴 흔적들이 희미한 잔상으로 남았다.근화초등학교와 춘천여중,춘천여고를 다녔다.아이는 아버지가 틈만 나면 그림 그리는 모습을 자주 보곤 했다.그런 영향 때문일까.
그니는 봉의산에 올라가 스케치를 하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고2 때 담임선생이 그니의 재능을 보고 미술대학에 가라고 했지만 춘천엔 당시 미술대가 없었다.서울로 가야 했다.하지만 학비가 만만치 않았고,부모님은 낯선 서울로 맏딸을 보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대학을 포기한 그니는 일찍부터 공무원이 되었다.그러나 학업을 포기할 순 없었다.독학을 결심하고,1970년 방송통신대 가정과에 입학했다.

4년 후 같은 직장의 공무원과 결혼했다.딸 셋을 낳았다.그때부터 일인다역의 주부가 된 그니는 자신도 모르게 원더우먼이 되었다.

▲ 지난해 수필집 ‘공지천의 봄’을 출간한 박종숙 수필가가 표제작의 배경인 공지천을 둘러보고 있다.
▲ 지난해 수필집 ‘공지천의 봄’을 출간한 박종숙 수필가가 표제작의 배경인 공지천을 둘러보고 있다.

<즐거워서 무엇이든 한다>

어린 딸 셋에,남편에,살림에만도 벅찬 주부생활이었다.거기다가 방송대 공부도 해야 했고,노래가 너무 좋아 ‘YMCA 은하수 합창단’에도 들었다.춘천소년원과 교도소 종교지도위원으로도 활동했다.눈코 뜰 새 없는 하루 하루였다.그러나 그니는 즐거웠다.무엇이든 즐거웠다.새록새록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공부가 즐거웠으며,교도소를 찾아 무엇인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다.방이 어지럽다며 불만을 나타내는 남편에게 주섬주섬 물건을 치우며,자 이젠 됐지요?슬쩍 웃어넘기는 일도 즐거웠다.커튼을 열어젖히면 신선한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와 저절로 콧노래가 흥얼거려지는 것 또한 즐거웠다.아이들은 식물처럼 푸르게,푸르게,쑥쑥 자랐다.그 모습은 지상에서 누리는 최고의 즐거움이었다.아이들을 대하면 늘 가슴이 벅차올랐다.


<우연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 다섯 살 바기 막내딸을 데리고 공지천을 산보할 때였다.우연히 그니는 그곳에서 백일장이 열리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갑자기 무엇이든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용기를 내어 원고지 몇 장을 얻어 한적한 나무 아래 앉았다.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시를 써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시간이 점점 흘러 마감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아이가 똥이 마렵다고 칭얼댔다.똥을 누이고 원고지로 아이의 뒤를 닦아주었다.그리고 떠오르는 대로 원고지 칸을 메워갔다.무엇을 썼는지 지금은 가물거려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입선’이란 통지가 집으로 날아들었다.

박·종·숙.

이 이름 석 자가 누구인지를 확인했다.그니는 그로부터 박종숙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얼굴을 알렸다.

당시 YMCA합창단이 해체되어 YWCA합창단에 다닐 때였다.YWCA에서 합창을 마치고 복도를 지나다 우연히 방 하나를 발견했다.조용한 분위기였고,사람들은 매우 진지해 보였다.그곳에서 ‘문학을 공부하는 모임’이 열린다고 했다.그 모임은 풀무문학회였다.당장 박종숙은 문학회에 가입했다.처음엔 시를 쓰고 싶었다.그런데 지도 선생님이 수필가여서 수필을 공부하기 시작했다.2년 동안 배우다가 열차를 타고 서울로 갔다.한국문예진흥원의 윤모촌 선생께 지도를 받았다.춘천에서 서울로,서울에서 춘천으로 결석 한 번 없이 열심히 다녔다.수필에도 이론이 있다는 걸 박종숙은 그때 비로소 알았다.좋은 수필의 품격과 수필가의 진실한 자세에 대한 말씀을 귀담아 들었다.
1989년 드디어 월간수필에 ‘편지’로 초회 추천을 받고,그 이듬해 ‘등불을 밝히며’로 추천이 완료되었다.
그때부터 박종숙은 일인다역의 보기 드문 문단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춘천에 뿌리 내린 수필이란 나무>

춘천엔 30년 된 나무가 있다.박종숙이란 이름의 나무.또 그 나무는 ‘춘천수필’이란 이름의 나무이기도 하다.
첫 수필집 ‘호수지기’가 나온 해는 1995년이었다.그로부터 25년 동안 12권을 수필집을 냈다.왕성한 창작활동임을 알 수 있다.그 중 여덟 권이 춘천과 호수를 테마로 하고 있다.제목만 보아도 그것은 명약관화하다.1,2년 간격으로 출간된 책을 살펴보면
‘내 영혼의 강가에서(1998)’,‘호수보다 깊은 침묵(2002)’,‘호반의 축제(2004)’,‘이야기로 쓰는 수필(2004)’,‘노을이 타는 강(2007)’,‘호수에 그린 달빛(2008)’,‘내 안에 춘천이 있었네(2010)’,‘점 하나 의미(2013)’,‘바다엽서(2015)’,‘시선 그 너머(2018)’,‘공지천의 봄(2020)’ 등.

여기에서 주목할 책이 있는데 ‘시선 그 너머’와 ‘공지천의 봄’이 그것이다.놀라운 것은 책표지는 물론 속지의 그림들까지 손수 그려 넣었다는 점이다.그림들이 수록된 수필집을 펼치는 순간 독자는 내심 감탄을 자아내게 마련이다.박종숙 수필가는 20년 동안 춘천문화원에서 수필을 강의하면서 옆방에서 진행하고 있는 한국화 강좌에 빠짐없이 참석했다.드디어 그토록 화가가 되고 싶어 했던 소망이 조금이나마 이루어졌다.

▲ 강원도문화상 수상모습
▲ 강원도문화상 수상모습

<나여,어디든 떠나자>

1997년 유럽여행부터 시작했다.박종숙 수필가의 해외나들이는.

그 후 그니는 거의 해마다 외국나들이를 했다.서유럽과 동유럽,미주,동남아,오세아니아,중국,일본,남미,이집트,인도,네팔,백두산,남미 전역,러시아,실크로드 등 돌아다닌 국가 수만 해도 60여국에 가깝다. 도시여행은 수백 개의 도시를 거쳐 왔다.도시마다 스케치를 했고 글을 메모하여 ‘계간 수필’,‘월간 수필문학’,‘시와 수필’지에 세계여행기를 꾸준히 게재해 왔다.아울러 국민일보에 3개월 동안 ‘여의도 에세이’를 연재해 독자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그것은 박종숙 수필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토록 많은 여행과 여행기를 썼건만 여행서 한 권 내지 못했음을 몹시 아쉬워했다.

12권의 수필집과 여행에세이,그림그리기와 쉼 없는 종교활동,그리고 문인단체의 장을 꾸준히 병행하면서 그니는 살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물론 이해심 넓은 남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때로는 아이들에게 소홀한 점은 없을까를 곰곰 생각하기도 했다.그때마다 무엇이든 열심히 했다.그것만이 박종숙 수필가가 홀로 설 수 있는 힘이었다.‘호수지기’를 출간한지 3년 만에 수필의 꽃인 제8회 ‘수필문학상’을 수상했다.그 후 23회 강원문학상,4회 강원수필문학상,11회 탐미문학상,51회 강원도문화상,제10회 강원펜문학상,4회 연암수필문학상,그리고 2017년 2회 김규련수필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강원도문인협회 회장이란 중책을 맡고 있다.그간 각종 문학단체장,편집위원,추천위원,심사위원,석왕사 총무,20년의 장기 수필문학 강의,여행과 그림….

아,그러나 너무나 많은 일을,너무나 많은 시간을,너무나 많은 글을 써온 박종숙 수필가에게 몸의 이상이 왔다.관절에 무리가 와서 수술을 해야 했다.회복기간 동안 자신을 돌아보았다.70이 넘은 원로수필가로서가 아닌,박종숙의 어린 시절로 순수하게 남고 싶었다.그게 가능할까.남편과 아이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갖도록 하자.마음속에 흐르는 따뜻한 가족애가 새삼 느껴졌다.

그런데 또 다른 마음속 울림은 생경한 메아리처럼 미지의 세계로 향하고 있었다.그건 풋풋한,설렘 같은 것이었다.

난 언젠가 시를 쓸 거야.그리고 그 곁에다 맑은 수채화 한 점 그려 넣어야지.

<시인·춘천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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