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강원 첫 확진 1년] 집단감염 덮친 인제 북면 원통리,코로나19 그 후
방역수칙 지켰지만 첫 확진 발생
가짜소문·낙인에 자책 속 생활
‘너 때문에 망했다’ 메시지 쇄도
“첫 확진자 감내해야 할 고통 커”
교류 단절된 노인 고립감 호소
시골 상권 “월세 낼 형편도 못돼”

강원도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지 22일로 꼭 1년이 됐다.지난해 2월22일 춘천에서 두 명이 코로나19에 확진된 이후 1년 간 도내에서는 1800여 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왔다.코로나19는 도민들의 생활을 완전히 뒤바꿔놨다.이웃간 교류는 끊어졌고 ‘혹시나’하는 의심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경제지표는 연일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코로나19가 휩쓴 강원도를 22일과 23일에 걸쳐 조명한다.

코로나19.이름조차 생소했던 이 감염병은 기어이 인구 200여 명에 불과한 시골마을까지 덮쳤다.지난해 11월 이 마을 첫 확진자가 나온 인제 북면 원통리는 코로나19 이전과 전혀 다른 마을이 됐다.젊은이들은 모두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이 곳은 서로 일손을 돕고 음식을 나눠 먹던 정이 넘치던 동네였다.하지만 무시무시한 전염병으로 이웃간 교류는 끊겼고 첫 확진자는 ‘너 때문에’라는 낙인이 찍힌 채 자책하며 살고 있다.

■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는 확진자

“다 제 잘못입니다.죄송하단 말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이나은(55·가명)씨는 인터뷰 내내 눈물을 흘렸다.이씨는 지난해 11월 12일 발생한 이 마을 첫 확진자다.기관지가 좋지 않던 그는 코로나 사태 이후 만남을 자제하고 방역수칙을 철저하게 지켰다.그럼에도 코로나는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어디서 걸렸는지도 알 수 없는 전염병이 그의 몸으로 들어왔다.이씨는 “지인들이 ‘너는 정말 안 걸리겠다’고 말할 정도로 조심했는데 걸렸다”며 “마을 어르신들에게 정말 죄송하다.다행히 어르신들에게 전파되지 않아 그것마저도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다행히 완치했지만 이씨의 생활은 이 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마을엔 이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도 했다.이씨의 휴대폰엔 “너 때문에 다 망했다”라는 전화와 문자가 한동안 쇄도했다.가짜 소문과 주위 시선으로 퇴원 후 그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다.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할 때는 모자를 눌러쓰고 얼굴을 가렸다.그는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쥐 죽은 듯’ 살았다.이씨는 “첫 확진자이기 때문에 감내해야 할 고통이 너무 크다”며 “‘차라리 확진됐을 때 죽었으면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한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마을회관 앞에서 만난 이장 엄득용(73)씨는 이씨를 위로했다.엄씨는 “고개를 숙이고 없는 사람처럼 지나가는데 안타까워 죽겠다”며 “누구든지 걸릴 수 있는 건데 혼자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말했다.

■ 이웃까지 번진 불신

코로나19로 생활이 위협받는 것은 첫 확진자인 이씨 뿐만이 아니다.정신지체 2급인 김종태(42)씨는 마을의 유일한 청년이다.그는 마을 어르신들의 일손을 도우며 받는 돈으로 홀어머니를 모시며 살고 있다.그러나 네 달 전 코로나가 마을을 덮치면서 일은 끊겼다.살기 위해 김씨는 폐지를 주웠다.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주워도 그의 손에 쥐어지는 돈은 겨우 5000원이다.하지만 최근엔 폐지 줍는 일마저 이웃들의 따가운 눈총으로 쉽지 않게 됐다.폐지를 줍기 위해 길거리를 배회하는 그가 주민들에게 코로나를 감염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마을에 돌고 있기 때문이다.심지어 일부 주민은 면사무소에 김씨가 코로나에 감염된 것 같다는 신고를 하기도 했다.김씨는 “면사무소 직원이 와서 ‘주민들이 불안해 하니 주의해 달라’고 말했다”며 “마스크도 꼭 쓰고 다니는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며 울분을 토했다.

▲ 지난 19일 인제군 북면 원통리의 한 마을에 거주하는 신경옥 할머니(70)가 집에서 TV를 보고 있다.신 할머니는 지난해 11월 동네 주민이 코로나19에 확진된 이후 온종일 집에만 있다.
▲ 지난 19일 인제군 북면 원통리의 한 마을에 거주하는 신경옥 할머니(70)가 집에서 TV를 보고 있다.신 할머니는 지난해 11월 동네 주민이 코로나19에 확진된 이후 온종일 집에만 있다.

■ 이웃 간 교류가 단절된 마을

지난 19일 오전 10시쯤 찾은 인제군 북면 원통리의 한 마을은 고요함을 넘어 적막감이 느껴질 만큼 한적했다.마을을 흐르는 공기마저 무겁게 느껴질 정도였다.마을회관은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신문들은 문 앞에 그대로 쌓여있었다.60여명이 모여 사는 이 마을은 이웃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알 정도로 주민들이 가깝게 지냈다.그러나 지난해 11월 12일 동네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면서 상황은 예전과 다르게 흘러갔다.보건당국은 전 주민을 대상으로 검체 검사를 실시했다.주민들은 외출은 고사하고 마당에 있는 텃밭에도 나오지 않았다.

주민 교류가 단절되면서 노인들의 건강도 위협을 받고 있다.마을 주민 신경옥(70) 할머니는 한 달 전 급성협심증으로 쓰러졌다.급히 병원으로 옮겨져야 했으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다행히 외출에서 돌아온 남편의 신고로 병원에 갈 수 있었다.신 할머니는 “평소라면 회관에 있어야 할 시간인데 코로나가 터진 뒤로는 줄곧 집에만 있다”고 고립과 무력감을 호소했다.

■ 적막감 도는 시골 상권

인제의 대표 상권인 원통터미널 앞은 점심시간임에도 삭막했다.터미널 앞에서 20년째 중식집을 운영하는 김선오(58)씨는 “지난해 11월 원통에서 집단감염이 터진 뒤로는 이 상태”라며 “군인,관광객들 뿐만 아니라 주민들도 무서워서 안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미용실 업주 강명희(47·여)씨도 “집단감염 여파가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상권이 전멸했다”며 “당장 다음 달 월세 낼 돈도 없는 형편”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집단감염으로 몸살을 앓은 홍천군 서석면도 상황은 비슷했다.이 동네는 지난해 8월 29일 인근 장례식장에서 마을 이장이 확진된 이후 사람들이 자취를 감췄다.7년간 이곳에서 주점을 해 온 강모(48·여)씨는 “문 닫은 가게만 10곳이 넘는데 이대로 가면 우리 가게도 조만간 폐업할 것 같다”며 하소연했다.고깃집을 운영하는 박모(61)씨도 “장례식장에서 확진자가 터진 이후 한 집 건너 한 집 꼴로 문 닫은 상태”라며 “월세랑 공과금 해서 최소 월 100만원은 내야 하는데 그것도 안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양희문 heeem@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