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현 횡성주재 부국장

▲ 박창현 횡성주재 부국장
▲ 박창현 횡성주재 부국장

최정예 공군조종사로 구성된 블랙이글스 특수비행부대의 마술 같은 곡예비행공연은 국군의 날뿐만 아니라 각종 축제의 하이라이트로 초청받으며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하지만 블랙이글스의 부대사는 그리 순탄치 않았다.1953년 10월 1일 국군의 날을 맞아 블루사브레(BLUE SABRE)라는 명칭으로 관람객에게 특수곡예비행의 첫 선을 보인 이후 1967년 블랙이글로 공식 창설됐지만 이때만 해도 국군의 날 공연을 위한 비상설팀이었다.1978년부터 1993년까지 15년간 활동이 중단됐다가 1994년 12월 대한민국 유일의 상설 곡예비행팀으로 재창설되면서 현재 소속된 원주 8전투비행단으로 배속됐다.2007년 기종 전환을 위해 잠정 해체됐고 다시 2009년 8월 1전투비행단 광주기지에서 T-50 기종(8기)으로 재창설된 뒤 이듬해 12월 8전투비행단 원주기지로 이전,현재까지 원주와 횡성의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다.이처럼 지난 60여년간 부대 창설 이후 해체와 재창설을 반복한 블랙이글스의 이면에는 이·착륙과 저공비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극심한 소음피해를 감내하고 있는 지역주민의 인내가 숨겨져 있다.여기에 그치지 않는다.지난 한 해 동안 이른바 ‘에어쇼’ 훈련과정에서 200ℓ드럼통 650개 분량의 디젤오일(경유) 성분의 연막을 분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기환경오염과 인체 유해성 논란까지 빚어지고 있다.

불의의 추락사고로 인한 젊은 조종사들의 잇따른 순직도 블랙이글스의 암울한 그림자다.1998년 5월 8일 춘천시 북산면 인근 야산에 블랙이글스 전투기 2대가 공중에서 날개가 충돌하면서 추락해 조종사(당시 33세)가 생명을 잃었다.2006년 5월 5일 어린이날 축하 비행도중에도 추락사고가 발생,조종사가 숨졌다.2012년 11월 15일에는 횡성읍 도심에서 불과 1.8㎞ 거리의 민가에 블랙이글스 1기가 추락해 국민적 애도 속에 조종사의 영결식이 치러졌다.당시 이 사고의 충격으로 정비사의 상관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사건이 이어져 부대 해체설이 제기됐다.이 처럼 대한민국 공군을 상징하는 블랙이글스의 부대창설 취지에도 불구 국민과 조종사의 생사까지 위협하는 ‘불편한 진실’ 만큼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횡성지역사회는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블랙이글스의 해체를 주장하며 두 달여째 1인시위를 이어가고 있다.지역주민들은 수십 년을 국가안보라는 이유로 군용기 비행소음을 묵묵히 참았지만 시대상황에 맞지 않는 곡예비행의 소음까지 인내하기에는 한계에 봉착했다고 분노하고 있다.이들은 횡성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군용기 소음저감대책과 주변 환경영향조사,블랙이글스 해체에 대한 명확한 대책을 마련해 달라며 추운 겨울날을 길거리에서 보내야 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부대 측의 대응은 오히려 성난 민심을 자극하고 있어 아쉽다.공군본부는 최근 8전투비행단에 지역민심 달래기용 대책으로 ‘지역축제 축하공연 우선검토’라는 웃지 못할 대책을 시달했다.한마디로 아이러니다.블랙이글스의 경유성분 연막분사로 인한 주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환경영향조사는 뒷전이고 ‘임시방편용’ 꼼수로 일관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어찌보면 군부대와 지역주민간에 현 상황을 바라보는 문제의식의 간극이 작지 않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물론 공군부대 측은 현재 항공기에서 배출되는 대기환경기준이 마땅히 없어 환경조사방안을 고심하고 있다고 해명하고 있다.그렇다면 최소한 정확한 조사결과가 나올 때까지라도 블랙이글스 비행을 잠정 중단하는게 옳다.군대의 가장 큰 힘은 국민적 신뢰이기 때문이다.

블랙이글스의 화려한 연막 속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을 덮으려 애쓰기보다 지역사회의 요구에 진지하게 고민하는 대한민국 공군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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