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의 봄은 언제나 올까? -김영규 철원역사문화연구소장
봄기운 완연해도 철원은 지금 ‘춘래불사춘’
철새 분변서 AI발견돼 관광객 발길 멈춰
주민 경색된 남북 관계 장기화·악화 우려
개발 제한·국방개혁 등 군민 5중고 고통 속
풍년 기약하며 지역내 곳곳 못자리 조성 시작
한반도 훈풍 불어 철원군민 얼굴 화색 돌길

▲ 사진 위부터 철원 금강산전기철도교량 정연철교,철원평야 두루미,철원군 노동당사.
▲ 사진 위부터 철원 금강산전기철도교량 정연철교,철원평야 두루미,철원군 노동당사.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은 한반도 비무장지대(DMZ·Demilitarized Zone) 속으로 강원도민일보가 더욱 깊이 들어간다.웹진 ‘DMZ-iN’을 연데 이어 ‘DMZ 통신원’의 생생한 글을 26일부터 매달 1차례씩 연재한다.분단의 최전선에서 DMZ의 미래를 고민하는 지역 향토사 연구가,군인 출신 등 전문가로 구성된 DMZ 통신원들은 비무장지대 안팎의 다양한 모습을 지면으로 옮겨 소개할 예정이다.

철원은 봄이 늦다.남한에서 위도가 가장 높으니 늦을 수밖에 없다.봄이 늦다는 것은 그만큼 겨울이 길다는 것이다.그런데 철원사람들 마음의 봄은 더 늦다.가슴 한편에 남은 응어리는 봄이 왔는데도 꽁꽁 얼어붙어 있다.“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다”라는 고사성어는 바로 지금 철원의 상황을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엊그제 수복지구의 상징인 노동당사 앞에 갔더니 봄기운이 완연하다.일부 농가에는 못자리 조성작업이 시작되었고 길가 밭에는 퇴비가 군데군데 쌓여 있으며 이랑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민통선 초소 입구에는 전방으로 향하는 트랙터들이 줄지어 서서 대기한다.농업군인 철원군에 풍년을 기원하는 농민들의 행렬이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켜고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그러나 산야에는 아직 회색빛이 짙고 푸른 색깔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따금 부는 돌풍은 아직 몸을 움츠리게 한다.가끔 아직 돌아가지 않는 겨울 철새 두루미와 기러기가 소리 내며 지나가는 것을 보면 봄은 왔는데 아직 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 철원군 동송읍 철원평야
▲ 철원군 동송읍 철원평야

그렇다.계절의 봄은 시간이 되면 곧 온다.그런데 분단 한반도의 봄은 언제나 올까? 철원사람들의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줄 평화의 봄은 언제나 올까? 늘 그러하듯이 곧 올 것 같은 봄이 가까이 와서는 돌풍처럼 사라지는 일들이 누누이 반복되었다.이제 철원사람들은 그 잊힌 봄을 잃어버린 듯하다.어떤 사람들은 다가올 봄을 기대조차 안 한다.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는 점이다.최근 미국 대통령이 바뀌고 대북정책이 어떻게 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터에 며칠 전 미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이 함께 내한해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했다고 전해진다.전방 지역 사람들은 2018년이나 2019년 같은 한반도 상황은 안 올 것이라고 낙담한다.지금의 냉각기가 장기화 되거나 상황이 더욱 악화될까봐 걱정이다.DMZ 일대 철원에서 추운 겨울을 지낸 천연기념물 두루미는 이미 휴전선을 넘어 북한 땅을 지나 시베리아로 돌아갔다.그들이 다시 돌아오는 올가을까지 한반도에 진정한 훈풍(봄바람)이 불어 다시 철원군민들 얼굴에 화색이 돌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 김영규 소장
▲ 김영규 소장

철원은 지금 5중고(重苦)를 겪고 있다.휴전 이후 접경지역에 드리워진 개발 제한과 차별은 67년 동안 지속되었고 아직도 여전하다.2019년 9월 발병한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접경지역 민통선 출입이 차단되었고,이후 닥친 코로나19 여파로 관광객 발길은 완전히 끊겼으며 지난 겨울 일부 겨울 철새 분변에서 발견된 조류독감(AI) 바이러스로 사람들 출입은 더욱 꽁꽁 얼어붙었다.거기에다가 국방개혁 2.0으로 철원지역에 주둔하는 6사단과 3사단이 후방지역으로 옮겨간다고 하여 그나마 버티던 지역 상경기가 완전히 붕괴될까 걱정이다.조금 있으면 주민들 이탈이 가시화될 듯하다.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어쩌면 이미 많이 빠져나갔을 것이다.가히 최악의 상황을 버텨내고 있는 접경지역 철원의 주민들은 그래도 새봄을 맞아 풍년을 기약하며 트랙터 위에서 함박웃음을 짖고 있다.마스크 안에 숨겨진 웃음을 보면 6·25전쟁 이후 폐허에서 맨주먹으로 철원을 일군 선조들의 의지가 엿보인다.지난 18일 강원통일교육위원 심포지엄에서 “비록 엄중한 시국일지라도 오직 평화만이 우리의 미래를 담보한다며 우리만이라도 희망을 갖고 두 눈 똑바로 뜨고 현실을 직시하자”는 어느 분의 발언이 귓가에 맴돈다.DMZ의 봄과 한반도의 봄은 언제나 올까? 어쩌면 바로 옆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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