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조 순 (강릉)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20년간 서울대서 후학 양성
경제부총리·서울시장·국회의원 지내
4·7재보선 집권당 참패 근원으로
“헌법에 의한 통치 부족” 꼬집어
권력구조 재편 ‘내각책임제’ 강조
백수 향하며 ‘뜻대로 삶을 즐김’ 지혜

▲ 조순 선생이 지난 23일 반세기 넘게 살고 있는 서울 봉천동 자택에서 봄꽃이 한창인 정원을 산책하고 있는 모습.
▲ 조순 선생이 지난 23일 반세기 넘게 살고 있는 서울 봉천동 자택에서 봄꽃이 한창인 정원을 산책하고 있는 모습.

노학자의 검박한 정원에도 봄이 한창이었다.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 선생의 글씨로 당호(堂號)를 삼은 ‘소천서사(小泉書舍)’ 입새에 우뚝한 소나무들은 싱그러웠다.

지난 23일 강릉출신 조순 선생의 서울 관악구 봉천동 자택을 찾았다.2016년 신년 대담을 계기로 만난후 5년만의 인사였다.

1928년 무진생(戊辰生)으로 올해 아흔 세 살을 맞았지만 선생의 얼굴은 더 풍성해진 하얀 눈썹(白眉)과 더불어 세월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서재에서 비서를 부를 때 목소리는 거실과 복도를 관통해 2층으로 울려 퍼졌다.

“우리 나이로 아흔 넷인데 큰 병은 없고 아직은 건강합니다.아침 저녁으로 정원을 오가고 가끔씩 집 근처 공원으로 산보도 가죠.”

강릉 구정 학산이 고향인 선생은 일제강점기 부모곁에서 보통학교를 마치고 숙부가 있던 평양으로 가 2년간 평양 제2고등보통학교를 다녔다.

“학산에 옛날 살던 집이 있고 작은 댁도 있지만 최근에는 찾아보지 못했습니다.초등학교를 마치고 평양으로 갔는데 일본 학생들은 평양 제1고보,조선 학생들은 평양 제2고보를 다녔죠.최고의 선생님들이 영어와 한문을 아주 잘 지도했습니다.”

어린 조순은 평양에서 2년간 공부하다 서울로 와 경기중을 마친뒤 경성 경제전문학교와 서울대 상과를 졸업했다.그리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 캘리포니아대학(UC 버클리)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선생은 1968년부터 20년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1988년 노태우 정부에서 경제기획원 장관 겸 경제부총리로 일하며 경제 이론을 시장에서 실천했다.이어 한국은행 총재,민선 초대 서울시장,제15대 국회의원 등으로 활동했다.현재는 서울대 사회과학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경제학자와 정무직 공직자 그리고 정치인으로 살아온 조순 선생에게 4·7 재보궐 선거가 집권 여당의 참패로 끝난 근원을 물었다.

“내가 아는게 상식적이고 언론에 나오는 것입니다.이승만 정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대 정부를 보면 헌법에 의한 정치,즉 헌정이 중요한데 헌법에 의한 통치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또 집권자들이 스스로 헌법을 지키지 않은 면도 많았습니다.”

노학자는 신중하게 말을 이어갔다.

“경제가 어렵습니다.부동산 시장도 흔들리고 민생은 더 힘들죠.코로나19 방역과 복지수요 증가로 국가 재정은 여러차례 추경과 빚으로 충당하고 있어 걱정입니다.일자리가 없다보니 재정으로 만드는 임시 일자리만 많아요.공무원도 최근 몇 년동안 크게 늘었는데 나도 공직에 있었지만 공무원들은 기본적으로 규제를 만들어 인·허가에 관여하는데 바람직하지 않습니다.공무원을 줄여 나가고 정원을 철저히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내년 3월 대선과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에게 어떤 지도자가 필요한지 질문했다.“미국에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있습니다.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승리해 나라를 세운 국부이자 초대 대통령입니다.두차례 연임후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그에게 국민들은 다시한번 대통령으로 일해달라고 했지만 그는 깨끗하게 물러났습니다.스스로 욕망과 권력을 제어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죠.전쟁에서 승리한후 왕이 되어 달라는 요청에도 그는 유혹을 과감히 뿌리쳤습니다.이제 우리도 권력의 절제와 상대에 대한 관용을 실천하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내년 선거에서 국민들이 그런 지도자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승자독식과 일당독재의 정치를 청산할 수 있는 권력구조 개편에 대해서도 물었다.

“저는 내각책임제를 여러차례 이야기했습니다.하지만 한 나라의 정치체제는 유권자의 몫이고 국민들의 정치의식과 직결됩니다.대통령제의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지만 국민들이 이 시점에 개헌을 통해 어떤 선택을 할 지는 역시 유권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후학 양성에 평생을 바치며 교수라는 소명에 응답한 조순 선생에게 후배들과 젊은이들에게 주는 조언을 부탁했다.“중용(中庸)에 보면 박학(博學),심문(審問),신사(愼思),명변(明辨),독행(篤行)을 당부하는 글이 있습니다.즉 널리 배우고 자세하게 물으며 신중하게 생각하고 분명하게 판단하며 충실하게 실천하라는 가르침이죠.국가와 미래에 책임이 있는 지식인들과 젊은이들은 이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내일을 준비하고 민생을 챙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생은 국내 대표적인 서예가로도 저명하다.2009년 3월에는 팔순을 맞아 학우와 지인들이 선생의 호인 ‘봉천학인(奉天學人)’의 이름으로 ‘한묵집(翰墨集)’을 헌정했다.경북 고령의 ‘대가야박물관(大伽倻博物館)’, 전남 강진의 ‘다산회당(茶山會堂)’, 북한산의 ‘동장대(東將臺)’, 강릉의 임영대종(臨瀛大鐘) 등이 모두 그의 글씨다.

“강원도에서 매년 열리는 님의침묵 서예대전에 참가해 왔는데 요즘은 같이 못했습니다.춘천은 맑고 깨끗하며 문화가 살아있는 고장입니다.잘 지켜 나가시길 바랍니다.”

백수를 바라보는 조순 선생에게 인생에서 행복은 무엇이냐고 여쭈었다.한학자 집안의 선비답게 고전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풀었다.“중국 후한시절 벼슬을 마다하고 평생 포의(布衣)로 살다 간 중장통(仲長統·179~220년)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그가 쓴 ‘뜻대로 삶을 즐김(樂志論)’이라는 글이 있는데 물적 소유는 최소한으로 하고 가족과 부모 그리고 친구들과 유유자적 즐기며 욕심에 연연하지 않고 마음 가는 데로 살아가는 것을 노래합니다.아마 우리네 행복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요.”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솔향 그윽한 ‘소천서사’를 나오면서 평생 소년처럼 밝은 미소를 간직한 선생의 비결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남궁창성 cometsp@kado.net

■ 소천(小泉) 조순(趙淳) 교수

강릉 학산마을에서 태어나 유년시절 선친으로부터 배운 한문을 바탕으로 고전을 자유자재로 읽었다.모교의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많은 학문적 업적을 이뤄 ‘한국의 케인즈’라는 이름을 얻었다.대한민국 학술원 회원·한국고전번역원 회장·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을 역임했다.조기송 전 강원랜드 사장이 큰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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