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DMZ 문화예술삼매경 홍경한 예술감독
작가 20여명 폐호텔 리모델링
객실 8곳 평화 키워드 아트룸
예술의 영구성 고민한 결과물
고성 안보관광→문화관광 전환

삼매경(三昧境).오직 한가지 일에만 마음을 집중시키는 경지를 이르는 말로 수나라 혜원스님이 불교용어들을 정리한 대승의장의 지론에 등장한다.지론은 삼매경을 두고 ‘구불구불하게 다니는 뱀이 대통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곧아지는 것’에 비유한다.최근 고성에서 버려진 호텔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드는 프로젝트가 진행됐다.프로젝트명은 DMZ문화예술삼매경 ‘Re:MAKER 고성’으로 삼매경 앞에 문화예술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어느 경지에 올라야 예술로 삼매경에 빠질 수 있을까.이 프로젝트는 예술가들이 꾸민 호텔로 관람객을 초대한다.호텔 방문객은 마치 대통의 뱀처럼 이곳에서 먹고 자면서 각 공간이 유도하는 예술적 사유에 빠져든다.오는 17일 프로젝트 공개에 앞서 이를 기획한 홍경한 예술감독과 장민현·이린우 큐레이터를 만났다.

▲ 사진 왼쪽부터 DMZ문화예술삼매경 ‘Re:MAKER 고성’ 프로젝트를 이끈 홍경한 예술감독과 장민현·이린우 큐레이터.
▲ 사진 왼쪽부터 DMZ문화예술삼매경 ‘Re:MAKER 고성’ 프로젝트를 이끈 홍경한 예술감독과 장민현·이린우 큐레이터.

프로젝트 첫 구상시기는 지난해 11월쯤.홍경한 예술감독의 총괄 아래 세 사람은 ‘예술의 영구성’에 대해 고민했다.그 결과 일회성으로 휘발하는 행사가 아니라 일반인들이 실제 체험할 수 있는 영구적 공간을 만들자는 결론을 냈다.큐레이터들은 “실향민이 오가는 길목에서 북을 바라보며 그리움을 달랠 수 있는 공간을 꾸미자”고 의견을 모았다.그리고 3∼4개월 간의 장소 물색 끝에 찾은 곳이 ‘명파DMZ비치하우스’다.명파해변의 청록색 바다가 아름답지만 30m만 걸어나가도 철책이 가로막는 곳이다.

홍경한 감독은 이곳에서 분단의 현실을 봤다.홍 감독은 “해변에서 사진 한 장 찍지 못하는 현실 속에 우리의 평화가 얼마나 위장된 평화인지 알 수 있다”며 “현실을 직시하면서 예술적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희망을 더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옛 명파DMZ비치하우스 건물 2동은 20여명의 예술가가 참여한 아트호텔로 완성됐다.로비·안내데스크,카페·레스토랑,커뮤니티룸,굿즈샵,프로그램 운영공간 등의 공유공간도 현대미술 작품으로 채워진다.

▲ 옛 고성명파DMZ비치하우스의 객실 8곳이 DMZ문화예술삼매경 프로젝트를 통해 ‘아트룸’으로 재탄생했다.스포라 스포라의 ‘스펙트룸’
▲ 옛 고성명파DMZ비치하우스의 객실 8곳이 DMZ문화예술삼매경 프로젝트를 통해 ‘아트룸’으로 재탄생했다.스포라 스포라의 ‘스펙트룸’
▲ 옛 고성명파DMZ비치하우스의 객실 8곳이 DMZ문화예술삼매경 프로젝트를 통해 ‘아트룸’으로 재탄생했다.오묘초 작가의 ‘Weird tension’
▲ 옛 고성명파DMZ비치하우스의 객실 8곳이 DMZ문화예술삼매경 프로젝트를 통해 ‘아트룸’으로 재탄생했다.오묘초 작가의 ‘Weird tension’
▲ 옛 ‘명파DMZ비치하우스’ 객실 모습.
▲ 옛 ‘명파DMZ비치하우스’ 객실 모습.

객실 8곳은 예술가가 직접 기획하고 꾸민 ‘아트룸’이 됐다.참여작가들에게는 ‘DMZ’,‘평화’,‘생태’,‘미래’를 키워드로 줬다.여덟 팀은 △스포라 스포라(배희경·리테시 아즈메리) ‘스펙트룸(spectroom)’△도자기공방숲 ‘조선 왕가 Again’△오묘초 ‘Weird tension’△박진흥 ‘쉼’△류광록 ‘금속방’△스튜디오 페이즈(임수정·재혁) ‘테실레이션(Tessellation)’△신예진 ‘산수설계 홈 프로젝트’△박경 ‘김작가의 방’ 등 모두 다른 주제와 콘셉트로 방을 완성했다.

스포라 스포라 팀은 고성 현장을 방문했을 때 마주한 ‘무지개’를 주제로 한 방 ‘스펙트룸’을 만들었다.황동,구리 등 무기가 되는 다양한 금속을 이용해 빛을 표현한 리테시 아즈메리의 작품 ‘Ray’는 철책으로 둘러싸여 접근이 금지된 바다와 무지개의 이질성을 통해 한반도의 오늘을 비춘다.스펙트룸 전반을 휘감는 배희경 작가의 벽화는 이념의 색채나 역사적 의미를 넘어 하나의 공간을 지향하는 의미를 담았다.오묘초 작가의 ‘Weird tension’은 숙소에 머무는 이들에게 ‘불편함’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천장에 누워야 볼 수 있는 TV,일부만 열리는 문 등 익숙하지 않은 이상한 모습의 물건들로 낯선 감정을 느끼도록 유도한다.휴전상태에 익숙해져버린 현대인들의 지나친 무관심을 지적하기 위한 기획이다.

반대로 박진흥 작가의 ‘쉼’은 전쟁에서 벗어나 휴식을 하기 위한 곳으로 완성됐다.휴식을 상징하는 나무로 공간 대부분이 채워졌다.국민화가 박수근 화백의 손자인 박 작가는 건물 콘크리트 일부를 남기는 등 이전 공간을 노출하고 각자 다른 뿌리에서 자란 나무의 나이테를 활용해 서로 다른 시간과 성질을 가진 개인이 사회와 집단을 형성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구현했다.

장민현 큐레이터는 “완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무형의 존재가 아닌 유형의 공간으로 남아있는 만큼 강원도의 예술적 개념과 영역을 넓히는 시작의 거점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리메이커’라는 프로젝트명처럼 공간을 새롭게 꾸민 것 뿐만 아니라 관람객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이나 고정관념까지 부수고 다시 짓도록 유도하는 공간이다.이린우 큐레이터는 “정답을 알려주는 공간이 아니라 평화와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곳”이라며 ‘평화를 고민하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아트호텔 리메이커는 오는 31일까지 시범운영을 거친 뒤 내달부터 고성군이 운영한다.영국 작가 뱅크시가 이스라엘 베들레헴에 세운 ‘벽에 가로막힌 호텔’이 분쟁지역임에도 하루 700명이 방문하는 관광 필수코스가 됐듯이 지역경제를 견인할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 홍경한 예술감독
▲ 홍경한 예술감독

홍경한 감독은 “문화예술로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 등의 시너지효과가 만들어지는 만큼 문화시그널을 발산할 수 있는 모체로 이같은 공간이 더 많이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호텔은 17일 오후 2시 기자간담회에서 언론에 먼저 공개되며,20일 참여작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정식 개소식을 갖는다. 한승미 singme@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