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코로나 좁아진 취업문
“사회에 아무 쓸모없는 사람”
심한 불안·우울감 호소 증가
항우울제 처방 매년 증가세
환자 수 줄었지만 처방 늘어
코로나 후 ‘혼술’이라는 명목
알코올의존증 상담건수 두배
스스로 음주문제 인식 중요
코로나 사회적 단절 야기
경제적 어려움·도박까지
주식·도박 중독으로 이어져
개인회생·중독 치료 급증

강원도에 코로나19가 창궐한 지 1년하고도 3개월이 흘렀다.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감염병에 모두가 공포에 휩싸였다.사회적 거리두기는 고립과 단절을 낳았다.일상이 무너지고 사회는 우울해졌다.여기에 코로나 발(發) 경제위기까지 닥치면서 경제난,취업난이 가중되고 있다.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은 도박을 해서라도 처지를 바꾸려하지만 허황된 꿈이다.혼란의 시대,현재 진행형인 코로나19는 도내 곳곳으로 침투해 강원도를 병들게 했다.

■ 우울감에 빠진 청년들

이정운(28·춘천)씨는 매일 아침 7시 부모님보다 먼저 집을 나선다.2년째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탓에 부모님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또 한소리 들을까 조심스레 집을 나왔지만 이씨가 갈 곳은 없다.아직 도서관의 문이 열리려면 2시간이나 남았다.무인카페에 가서 1500원짜리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놓고 오늘도 취업시장 문을 두드린다.지금껏 이력서를 제출한 회사만 100여 개에 달하지만 이씨를 원하는 회사는 없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로 취업시장이 좁아진 탓에 취업이 잠깐 지연된다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안하다”며 “스스로라도 위안하지 않으면 기댈 곳이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두 달 전에 갑자기 가슴이 꽉 막히고 숨이 쉬어지지 않아 급하게 병원을 찾았다.CT 등 여러 검사를 진행했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다.곧이어 머리도 깨질 듯이 아파왔다.같은 증세가 반복되자 의사의 권유로 정신과를 찾았다.병명은 ‘공황장애’였다.그는 “스스로 위안해도 안 될 때가 많다”며 “가끔은 제가 사회의 아무 쓸모도 없는 사람인 것처럼 느낀다”고 했다.

최근 심한 불안과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강원대병원의 항우울제 처방 건수는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지난 2017년 167만1633건,2018년 178만7727건,2019년엔 무려 187만8361건으로 집계됐다.지난해엔 188만9547건을 기록했다.주목할 것은 코로나19 여파로 전년 대비 환자 수가 11.3%(8만9397명)나 감소한 상황에서도 처방이 늘었다는 점이다.환자수는 감소했는데 처방건수는 오히려 0.6% 증가,동일 환자수로 가정할 경우 처방 건수가 13.5% 증가했다.

■ 우울감, 음주로 이어지다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으로 인해 술에 의존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춘천시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 접수된 지난해 상담 건수는 1959건으로 전년(1050건) 대비 46.4% 급증했다.이중 전화와 사이버 상담 등 비대면 상담의 경우 617건에서 1276건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강릉시 역시 지난해 접수된 상담 건은 782건으로 전년(362건) 대비 두 배 이상 올랐다.센터 내 등록된 환자(중독질환자)도 같은 기간 17명에서 33명으로 크게 늘었다.원주지역의 상담 건수는 소폭 줄었으나 센터 등록 인원에게 제공된 개별 서비스는 2362건으로 전년 대비 57.7%가량 증가했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술에 더 기대게 됐다고 공통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사람 간 만남이 단절되면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저녁마다 ‘혼술’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홍천에 사는 안모(52·여)씨는 “홀로 아이 둘을 키웠는데 둘 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혼자 남았다”며 “적막감 때문에 매일 저녁 술을 마시는데 끊고 싶어도 끊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절대 술에 의지해선 안 된다고 당부한다.이상규 한림대성심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알코올 의존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음주문제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하다”며 “음주문제가 해결이 안 될 경우 지역사회는 알코올중독센터에서 상담을 받거나 더 심한 경우 알코올전문병원을 통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홍순일 속초시정신건강복지센터 상임팀장은 “지역 보건소 절주 예방사업과 함께 지역주민 누구나 센터로 전화나 방문해 상담이 가능하다”며 “강원도 내 부족한 인프라를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벼랑 끝 선택 도박·주식

강릉에 거주하는 직장인 A(26)씨는 개인회생을 준비하고 있다.주식과 불법인 FX 마진 거래를 하면서 전 재산을 전부 탕진했기 때문이다.더욱이 손실을 매우기 위해 빚까지 내어 다시 투자했지만 큰 손실을 입어 이제는 더 이상 감당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월 50만원의 수익을 달성하는 등 곧 경제적 성공을 이룰 것만 같았다.월 200만원의 쥐꼬리만 월급에서 해방될 기대감에 부풀었다.하지만 A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허황된 꿈인 걸 깨달았다.그는 지금까지 1억1000만원의 손해를 보았다.빚을 갚기 위해 퇴근해서도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개인회생에 납부할 돈을 모으고 있다.

30대 공무원 B씨도 최근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강원센터를 찾았다.주식 중독으로 인해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B씨는 학창시절부터 공무원을 꿈꿨고 그 꿈을 이뤘다.하지만 적은 임금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상당했다.코로나19 이후 계층격차가 사회적으로 더 드러나자 그는 투자를 결심했다.지난해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주식을 거래했지만 8000만원의 손실이 났다.B씨의 부모는 아들이 공무원 생활에 위험이 생길 것을 걱정해 자신들의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대리변제를 했다.

도내 도박중독센터엔 도박 중독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상담 건수는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연도별로 보면 2016년 1372건,2017년 1841건,2018년 1940건,2019년엔 무려 2967건으로 집계됐다.2020년의 경우 2951건으로 전년보다 준 것처럼 보이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상담건수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군인 상담이 전면 중단됐기 때문이다.센터 측은 군인상담도 계획대로 진행됐을 시 무려 3500건에 달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장효강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강원센터장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단절은 경제적 어려움을 만들어냈고 또 이는 자존감 하락으로 이어졌다”며 “최후의 선택으로 도박에 발을 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또 사회적 손실을 가져오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 나서서 해결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희문·정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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