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영 화천주재 취재부국장
▲ 이수영 화천주재 취재부국장

짹짹이 할머니와 까불이 친구 분,막걸리집 아저씨와 면사무소 직원들,그리고 원천상회 사장님….

얼마 전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했던 화천 원천리 주민들은 방송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화제다.인상 좋고 맘씨 고운 원천상회 사장님의 아름다운 후일담이 무성하다.요즘에는 전국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의 발길이 상회로 이어진다고 한다.이 때문인지 화천군은 방영 후 한달새 관광객 방문이 39.2% 늘어 도내 최고 증가율을 보였다는 도관광재단의 조사도 나왔다.

화천군 하남면사무소 옆 원천상회 단골손님들의 이야기를 다룬 ‘어쩌다 사장’은,그저 시청률이 꽤 높았던 예능프로만으로 지나치기에는 많은 여운을 남겼다.“늦게까지 일하느라 힘들죠?” “항상 계획된대로 되는게 아니에요.” 상회 사장님이 남긴 말은 메마른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큰 위로가 됐다.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무엇을 새삼 떠올리게 된 것이다.

아파트에 살며 대형마트에서 쇼핑을 하는 현대인들에게 ‘마을’이란,도대체 쉽게 떠올릴 수 없는 단어가 돼버렸다.하는 듯 마는 듯 엘리베이터에 눈인사만 나누는 도시인들에겐 오래 전에 화석화된 단어로 여겨진다.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누군가 기침이라도 하면 꺼림직 해 하는 요즘 우리들에게 ‘마을’은 그저 옛 이야기 일수도 있다.오랫동안 사회적 거리두기에 익숙해지면서 정서적 거리감이 일상화되었는지도 모른다.

아파트값 급등,코로나19확진자 증가세 등 삭막한 단어에 파묻혀 생활하고 있는 도시인들에게 시골마을 원천상회 이야기는 메마른생활 속에 단비 같은 풍경을 보여주었다.술 마시는 남편을 데려 가려고 가게를 찾는 부인,고생하는 상회 식구들을 위해 음식을 가져온 동네 아주머니들,마을 아이들의 음식값을 치러준 할머니….당연했던 모습들은 이제 낯설고 비현실적인 장면이 돼 버렸다.

프로그램은,의도했던 아니던 우리들의 마음 속에 숨어 있던 정서를 건드렸다.아니면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는지도 모른다.생계와 이익,의무감을 바탕으로 맺어진 도시인들과,마음과 정을 주고받는 시골 마을 주민들의 관계는 극명하게 대비된다.그래서 프로그램에서 그려진 원천리는 ‘마을의 원형’으로도 볼 수 있다.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고 생활하는 가장 보편적이었던 일상은 이제 하나 둘 씩 사라져 가고 있다.농산어촌 인구는 급속히 줄고 고령화돼 지역 소멸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30년 뒤면 전국 자치단체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사라질 위기에 놓인다는 어두운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원천리 마을이 있는 화천은,국방개혁 2.0 계획에 따라 1개 사단이 폐지되는 등 지역 소멸 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인구의 급격한 감소가 불 보듯 하기 때문이다.인구의 감소는 마을 공동체와 문화의 소멸을 의미한다.언젠가 인구가 줄고 또 줄어든다면 원천리 마을의 생존도 장담하지 못한다.마을의 소멸은 정겨운 마을풍경·아름다운 관계와의 작별을 뜻한다.원천리 주민들의 정감어린 패션과 표정도 언젠가 옛 이야기가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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