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배 강릉본사 취재부국장
▲ 홍성배 강릉본사 취재부국장

지난달 천년의 축제 강릉단오제가 소리 없이 지나갔다.

무더운 여름. 갑자기 지나간 단오제를 떠올리는 건 천년을 이어온 축제를 코로나19 때문에 제대로 즐기지 못한 탓도 있지만 천년을 지켜온 축제도시에 걸맞게 과연 강릉이 천년의 도시 모습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다.

누대에 걸쳐 마을을 이루고 도시를 형성하면서 영동권 수부도시 강릉은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도시가 형성됐지만 수 천년 이어온 도시답게 강릉이 치명적인 아름다운 매력을 지녔는가? 이 물음을 놓고 여러가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백두대간 등허리인 대관령에서 동해 바다를 향해 뻗은 야트막한 산들. 그 산과 마주한 바다는 태고의 자연 그대로여서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경포호수도 한자리 차지해 강릉의 매력을 이끌고 있다. 빛의 반사에 따라 이국적 색깔을 뽐내는 바다는 사람의 발길을 절로 불러 모은다.

강릉의 빛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치르면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인구 21만여명이 거주하는 작은 도시 강릉은 KTX강릉선 시대가 열리면서 유동인구 포함 34만명의 거대 도시로 탈바꿈했다. 주말이면 관광객들이 경포와 안목을 비롯해 주문진, 사천, 정동진 등 해안가 곳곳을 가득 메우고 있다. 외국인이 눈에 덜 띄어서 그렇지 국제 관광도시처럼 주말이면 발디딜 틈조차 없는 관광도시로 완전히 변모했다.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고, 산나물을 뜯어 생활하던 농산어촌 강릉이 아니다. 도시의 젊은 청춘들이 캐리어를 끌고 도심지 관광에 나서고 있으며 지역의 유명 맛집들 앞에서는 뙤약볕을 무릅쓰고 길게 줄을 서서 몇십분씩 기다리고 있다. 진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강릉의 관광이 맛집 앞에서 줄을 서고 바다만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이 전부일까? 앞으로도 이런 광경은 계속될 것인가? 이런 물음에는 고개가 갸웃해진다. 그럴 수도 있지만 그래서는 안될 것이다.

국내 관광지 최고를 자랑하는 제주도와 ‘관광지 1번지’ 자리다툼을 벌이고 있는 강릉이 오죽헌과 선교장, 몇몇 맛집 투어에만 관광객들을 찾게해서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변모할 수 없다. 수도권 관광객들이 KTX를 타고 2시간이면 바다가 있는 강릉에 도착하고, 강릉이 이웃동네라고 인식하고 있을 때 관광지 이미지를 확 바꾸어 놓을 필요가 있다.

미세먼지가 없는 청정 환경에서 미술품을 감상하고 음악·연극·영화를 보며 커피한잔을 마시는 여유. 배드민턴을 치러 한강변을 가듯 스케이트와 축구, 야구, 서핑, 요트 등 취미 생활을 하러 강릉으로 원정 오는 그런 이웃동네. 그런 편안한 관계가 지속돼야 한다.

볼거리도 과거에 비해 색달라야 한다. 최근 삼성전자를 세계적 기업으로 키우면서도 예술품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던 컬렉터 고 이건희 회장이 2만3181점의 세계적 작품들을 국가에 기증했다. 여기에는 국보 14건, 보물 46건 등 국가지정문화재 60건이 포함돼 있으며 서적, 도자기, 고지도, 공예, 불교 미술품 등이 즐비하다. 이런 가운데 문화체육관광부가 기증 작품을 전시할 별도의 기증관을 ‘서울’에 건립하겠다며 소장품 활용방안을 발표해 강릉에 ‘이건희 미술관’ 유치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순회 작품전시회라도 열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때마침 ‘백색의 건축가’ 리차드 마이어가 강릉 민자7공원에 들어설 미술관을 설계하고 있어 첫 전시회를 유치해 봄직하다. 그것도 부족하면 전북함을 해체하고 있는 정동진 통일공원 일대에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음악공연장과 미술전시관을 건립해 문화 자생력을 키우는 것도 필요하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작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전 세계인들이 몰려 가듯 강릉의 문화를 만나기 위해 관광객들이 찾아오길 바라본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영혼의 쉼까지 더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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