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기준 영월주재 부국장
▲ 방기준 영월주재 부국장

영월 상동읍 구래리에는 거대한 화강암 바위인 명물 고두암(高頭岩·일명 꼴두바우)이 우뚝 서 있다. 웅장하고 기묘한 형세가 좌우의 산들과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이룬다.

‘관동별곡’ 등 4편의 가사와 시조 107수로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대가로 이름을 떨친 송강 정철(鄭澈·1536∼1593)이 1580년(선조 13) 45세로 강원도관찰사로 부임했다.

그가 강원도 땅을 두루 돌아 보다가 상동읍 꼴두바우 앞에 이르러 “먼 훗날 이 큰 바위 때문에 심산유곡인 이 곳에 수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바위를 우러러 볼 것이다”고 예언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예언대로 300여년이 지난 1916년 바위 인근에서 단일 규모로는 세계 최대의 매장량을 보유한 텅스텐(중석)광맥이 발견됐고, 1923년부터 본격적인 광산개발이 시작되면서 전국에서 몰려든 수 만명의 인구가 이 바위를 우러러 보며 살기 시작했다.

1945년 8월 해방과 함께 경영권이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넘어온 뒤 1952년 9월 국영 대한중석에 인수되면서 국내 텅스텐 생산량의 80%를 생산하며 국가경제의 중추적 기능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1952년에는 전체 수출액의 56%인 1645만여달러 수출에 이어 1959년 화학처리공장 준공, 1961년 뉴욕과 런던지사 설립, 1963년 도쿄지사 설립 등 전 세계를 대상으로 영업을 확대했다.

1966년 수출 순위 2위로 제6회 수출의 날 표창, 1967년 수출 순위 3위로 제7회 수출의 날 표창을 수상하는 등 승승장구를 거듭했으며 1968년에는 대한중석 25%와 정부 75% 지분으로 포항종합제철 창립에 기여하기도 했다.

2011년 별세한 박태준 전 국무총리가 1968년 4월 포항종합제철 초대 대표로 취임하기 전 1964년부터 대한중석광업 6대 대표를 지낸 일화도 있다.

대한중석은 1974년 텅스텐파우더공장, 1977년 중석종합가공공장, 1978년 코팅공장, 1979년 툴홀더공장, 1988년 카바이드롤공장,1989년 텅스텐와이어공장 등을 연이어 준공했으나 중국산 중석과의 가격 경쟁에 밀리면서 1992년 6월 채굴 중단에 이어 1994년 2월 폐광되면서 상동읍 부귀영화 1막은 아쉽게도 막을 내렸다.

이후 침체를 거듭하면서 1000여명의 폐광촌으로 전락한 상동읍에 바야흐로 2막이 시작됐다. 지난 10여년 동안 추진된 상동광산 재개발 움직임이 올해 들어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업주체인 알몬티대한중석은 지난 5월 AKTC 상동프로젝트 착공식에 이어 최근 갱도 굴진발파 작업을 재개하는 등 텅스텐 개발을 위한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기 시작했다.

채굴한 텅스텐 원석에서 선광과 정광작업을 위한 공장 건립 부지 확보에 나서고 공장과 광산을 연결할 새로운 도로 개설 공사에도 들어갈 예정이다.

특히 본격적인 재개발을 위한 자금 확보에도 나서 9월 초쯤에는 프로젝트 파이낸싱 은행인 독일국책은행(KfW)으로부터 총 7500만 달러의 사업자금 가운데 우선 750만달러(약 86억여원)를 들여온다는 반가운 소식이다.또 이달 말쯤 캐나다 본사로부터 1차로 112억원을 들여올 예정이다.

송강 정철의 예언대로 상동읍에 제2의 부귀영화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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