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병문 다큐 사진가
국내 처음 여성광부 주제 작업
‘광부 프로젝트’ 네 번째 시리즈
4개월 설득·10년 간 렌즈 담아
"여성도 석탄산업 엄연한 역사"

▲ 박병문 작 ‘자아의 무게’
▲ 박병문 작 ‘자아의 무게’
▲ 박병문 작‘선탄장은 삶의 현장이다’
▲ 박병문 작‘선탄장은 삶의 현장이다’
▲ 박병문 작‘이것이 현실이다’.선탄부들이 휴식을 취하는 모습과 컨베이어 벨트에서 석탄과 잡석을 가려내는 작업 현장,인원감축이 있는 12월 달력 앞에서 미래를 고민하는 모습 등에서 광부의 고된 노동과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전해진다.
▲ 박병문 작‘이것이 현실이다’.선탄부들이 휴식을 취하는 모습과 컨베이어 벨트에서 석탄과 잡석을 가려내는 작업 현장,인원감축이 있는 12월 달력 앞에서 미래를 고민하는 모습 등에서 광부의 고된 노동과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전해진다.

“뽀오얀 분가루 대신 검은 석탄가루를 칠해도 몇 백만원의 부채를 갚아야 한다는 집념 때문에 부끄러움과 서글픔도 잊은 채…참아야만 했다”-1991년 ‘석공’ 5월호에 실린 태백 여성광부 문계화 씨의 ‘부활의 희망을 안고서’ 중


그림자처럼 숨어있던 여성 선탄부들의 삶이 밝은 동해바다 옆 전시장으로 들어왔다.태백 출신 박병문 다큐멘터리 사진가(사진)의 개인전 ‘여성 광부,선탄부 검은장미’는 폐광지역 여성광부를 다룬 작품을 강원도에서 처음 선보이는 자리다.강릉 한국여성수련원 갤러리 솔에서 개막한 전시는 “여성도 석탄산업의 엄연한 역사”임을 알리는 현장이다. 광부였던 부친 영향을 받아 광부와 탄광을 주제로 진행한 ‘광부 프로젝트’의 네번째 시리즈다. 국내 처음 여성광부를 사진으로 조명한 박 작가는 17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여성 광부를 본 순간부터 역사로 기록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가 처음 선탄부를 본 것은 2007년.광부 프로젝트의 첫 주제 ‘아버지는 광부였다’ 촬영을 위해 방문한 삼척 도계 경동탄광에서다.그는 촬영을 준비하다 멀리서 여성의 실루엣을 봤고, 안전요원에게 “여성이 맞다.선탄 작업을 하는 분들”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박 작가는 여성 광부가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광부의 아들로 탄광지역에 살면서도 이들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이다.박 작가는 “기차에서 떨어진 탄을 주워 되파는 낙탄작업을 하는 여성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탄광 안에도 있다는 것은 몰랐다”며 “여성이자,가장으로서 식구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들을 부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들의 작업장이 궁금해진 박 작가는 촬영하지 않는 조건으로 카메라를 내려놓고 선탄 작업장에 들어갔다.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선 20∼30여명의 여성들이 쉴 틈 없이 일하고 있었다.이곳에서 여성 광부를 작품으로 소개하겠다고 확신했지만 설득이 쉽지 않았다.탄광사고로 남편을 잃은 여성들에게 승계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일자리인데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금기가 많았던 탄광 분위기가 어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탄광버스에 여자가 얼씬거리면 운 이 없다’는 식의 말들이 횡행했다.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이에 대한 편견 등도 이들을 짓누르는 요소 중 하나였다.박 작가는 “선탄부들은 바깥에 얼굴을 내보내는 것을 꺼리면서 그림자처럼 숨어 있었다”고 했다.

 

 

▲ 박병문 다큐멘터리 사진가
▲ 박병문 다큐멘터리 사진가

작가는 3∼4개월 간 끈질긴 대화 끝에 이들을 설득했다.선탄부들도 “후세를 위해 사라지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해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했다.박 작가는 “처음 셔터를 눌렀을 때 여태껏 촬영한 가운데 가장 큰 희열감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이후 10년간 삼척,태백 등 탄광 4곳의 선탄부들을 설득해 카메라에 담았다.2017년 첫 선을 보인 선탄부 사진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박 작가는 여성 광부들을 여성이 아닌,가장의 무게를 짊어진 광부로 바라봤다.전국 순회전시에서 가장 많은 질문을 받은 작품은 목욕 사진이었다.그의 시리즈에 빠짐 없이 등장하는 사진 중 하나다.고된 노동으로 땀과 함께 눌어붙은 탄가루를 씻어내는 모습.박 작가는 “광부의 목욕사진은 생명을 다투는 일터에서 오늘 하루도 잘 살아냈다는 안도감,탄을 닦아내면서 되찾는 자신의 존재감을 표현하는 중요한 소재다.선탄부들도 광부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진”이라고 설명했다.

박 작가는 여성 광부를 주제로 한 전시와 작업을 확대할 예정이다.이들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 이번 전시의 주제라면 다음 전시에서는 고된 선탄 작업을 보여주는 현장감 있는 사진들이 중심이 될 예정이다.해외 여성 광부 촬영 기획에도 들어갔다.

‘광부 프로젝트’의 마지막 시리즈 ‘진폐’ 주제의 작업도 시작한다.진폐증으로 고통받는 선탄부들까지 카메라에 담는 것이 목표다.박 작가는 “선탄부들도 분진이 많은 곳에서 일해 진폐를 앓고 있는데 갱도작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국가가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지금까지 여성 광부를 제대로 다룬 자료가 없었기 때문인 것 같아 그들의 삶을 보여주기 위한 전시이기도 하다”고 했다.이어 “여성 광부가 남성과 차이 없이 똑같이 일한다는 것을 모두 아셨으면 한다”며 “여성이자 가장으로서 탄광의 중심에 있었던 이들이 역사로 사라지지 않고 오래 기억되길 바란다.사진을 보고 함께 판단해 달라”고 덧붙였다. 한승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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