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국제트리엔날레2021 국내 학술 컨퍼런스
생태 위기·지역 재생 관점 집중
미술의 사회적 역할 확대 논의
‘기후 미술’ 개념 처음 제안 주목
“예술제 후 재생의 단초 남아야
행정 차원 예술 철학 정립 시급”

현대미술의 역할을 기후위기 대응과 지역재생의 관점에서 되짚어 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강원국제예술제가 한국미술평론가협회,강원대 문화예술공과대학 공동 주관,강원도민일보 후원으로 마련한 국내 학술컨퍼런스가 24일 강원대 60주년기념관에서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코-아트를 통한 지역 재생’을 주제로 열렸다.‘강원국제트리엔날레2021’ 개막(9월 30일)을 한달여 앞두고 열린 이날 자리에는 이재언 2015평창비엔날레예술감독,홍경한 2018강원국제비엔날레 예술감독을 비롯한 전문가들이 모였다.

논의의 흐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먼저 에코아트,생태미술의 시대적 필요성이다.과학과 철학,정치 영역만큼 예술도 기후위기 대응과 환경 이슈에 실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김병수 미술평단 주간은 “현대미술의 미학에서 기후 이슈를 다룰 때 윤리적인 차원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공동체의 감각이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했다.두번째는 지역재생이다.유휴공간의 예술적 활용과 지역공동체 회복을 위한 예술의 역할이 집중 논의됐다.

임재광 공주대 교수는 “미술이 스튜디오와 화이트박스를 벗어나 대중과 호흡하고 새로운 확장을 꾀하는데 공공미술이 적합하다.지역재생의 열풍이 불 때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홍경한 감독은 “지역재생은 하드웨어가 먼저 갖춰져야 가능하다.강원국제트리엔날레도 행사와 동시에 문화거점공간으로 사용되어야 종료 후에도 재생의 단초를 열어놓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컨퍼런스 내용은 청정 강원도 전역의 예술공원화라는 목표 아래 유휴공간을 중심으로 열리는 강원국제예술제의 비전을 다듬는데 활용될 예정이다.발제와 토론 내용을 요약 정리한다.

▲ 강원국제트리엔날레2021 국내 학술컨퍼런스가 지난 24일 강원대 60주년기념관에서 미술계 전문가들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 강원국제트리엔날레2021 국내 학술컨퍼런스가 지난 24일 강원대 60주년기념관에서 미술계 전문가들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세션 1.서구의 에코로지컬 공공미술(변해가는 지구 행성과 새로운 생태 이미지)

△이혜정 홍익대 교수=인류세로의 진입은 생태 미술(ecological art)의 역사에서 또 한 번의 전환점이 되고 있다.과거 생태미술이 생산해 온 ‘자연’에 대한 오래된 이미지에 저항한다.과거 생태 미술의 반문명적·자연회귀적 태도,자본주의에 대한 저항,비인간과의 조화 등 실천적 미학의 관행 안에 있으면서도 자연의 개념접근에 있어 보다 구체적이다.예술가들은 고정된 자연의 환상을 깨뜨리고,인간을 지구에 묶인 자(earth-bound)로 정의,가능한 냉철한 자세로 변해가는 지구 풍경에 접근하고 있다.캐나다 사진작가 에드워드 버틴스키(Edward Burtynsky)는 석유가 유출된 바다,도시로 개발된 사막 등 ‘21세기 유적’이라는 표현대로 지구 풍경의 ‘거대한 변환’에 주목하게 한다.미디어 아티스트 트레버 파글렌(Trevor Paglen)이 촬영한 우주 쓰레기,파편들로 형성된 궤도는 기술권의 경계를 표시하는 새로운 지층이 된다.이처럼 인류세는 자연에 대한 예술가들의 인식을 바꾸고 있다.

△고동연 미술평론가·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집행위원=‘어떻게 재생하나’라는 지점조차 인간중심적인 고민이라는 태생적 문제가 있다.자연을 환상화하거나 활용·개발 대상으로 여기는 두 가지 자세 모두 문제가 된다.자연을 추상화하고 인간세계와 분리하는 행동도 결국 인본주의적 사고의 산물이다.이분법적 관점을 극복하고 철저히 타자화된 시점에서 바라보는게 가능할지 궁금하다.

△이=인류세가 지속되어 온 인간 중심주의를 되돌려야 하는 강력한 촉구인 것은 사실이지만 역설적으로 인간의 힘이 예전보다 커졌음을 내포하고 있다.인류세 시대 생태미술이 인간의 우월한 지위를 더 인식시킨다는 것을 ‘새로운 인간 중심주의’라고 한다.인류세를 지난날의 환경운동과 같게 봐선 안 된다.인류세의 역설적인 면이 드러나는 작품들이 인류세의 풍경이 되고 있다.인간의 큰 힘에도 불구하고 지구온난화,코로나19 등을 극복하지 못한다는 점이 인류세의 진정한 의미라고 생각한다.
 

▲강원국제트리엔날레2021 국내 학술컨퍼런스가 지난 24일 강원대 60주년기념관에서 미술계 전문가들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강원국제트리엔날레2021 국내 학술컨퍼런스가 지난 24일 강원대 60주년기념관에서 미술계 전문가들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세션 2.재난 시대의 에코-아트(시대의 카타스트로프에서 예술의 카타르시스는 가능할까?)

△김병수 미술평단 주간=공상과학의 SF(Science fiction)처럼 클라이파이(Cli-fi·Climate-Fiction)라는 말이 등장했다.그래서 ‘클라이 아트’,‘기후미술’이라는 말을 명명했다.미술은 인공적이다.그런데 가끔 자연을 얘기한다.이제 훨씬 현실적인 세계로서 기후가 등장했다.최근 몇 년간 세계가 직면한 가장 시급하고 포괄적인 주제 중 하나인 기후 변화에 미술사학과 시각문화,미술 및 전시 관행 등 새로운 관련성이 부여됐다.녹아내리는 빙하,산불로 인한 서식지 파편화,바다·대기·토양 오염,전염병과 생물 다양성 위기에 이르기까지 영역은 광범위하다.미술은 새로운 상상력의 세계를 건설함으로써 환경 변화에 대한 중요한 렌즈를 제공한다.환경을 주제로 하는 인문학이나 문학의 생태비평 분야와 달리 현대미술과 기후변화의 교차점에서 주제적인 사유는 아직 희미하다.미래를 위한 사유와 실천의 형성이 다급한 상황이다.생태문제 논의에 미술과 시각문화를 포함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고충환 미술평론가=이번 발제가 기후미술이라는 개념을 처음 정의한 경우로 보인다.종전의 자연미술,생태미술,환경미술,대지미술 등과 어떻게 다른지 논의가 필요하다.기후미술이라는 용어가 생성되고 논의되는 과정이라고 전제했을 때 생태예술의 대체 용어가 될 수 있는가.자본주의와 무한정 착취주의에 대한 대안이 될 지도 생각할 지점이다.

△김=“기후미술은 기후를 다룬다”고 요약할 수 있다.과거에는 기후가 특정 지역의 날씨만을 의미했다면 현재는 글로벌한 이슈가 됐다.국내 대표 미술관들에서도 이를 다루는 전시들을 하고 있다.인류세가 양가적인 측면이 있듯이 지구와 기후도 마찬가지다.기후미술도 그냥 날씨를 주제로 한 미술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에 양가적인 측면들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세션 3.에코-아트와 일상재생

△임재광 공주대 교수=지역재생의 키워드는 ‘역사’,‘문화’,‘환경’이다.구도심은 인간의 기록,삶의 문화를 갖고 있으므로 이 곳에서 문화는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아지는 것이다.‘연미산자연미술공원’은 국내 유일의 친환경 생태미술공원이다.국내외 작가 작품 100여점이 있는데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수명의 한계에 따라 지속 교체된다.충남 부여 작은 면소재지의 ‘자온길 프로젝트’,공주 구도심에 공간재생으로 조성한 ‘카페 서천상회/갤러리쉬갈’도 있다.오래된 건물을 매입해 최소의 작업으로 완성했다.카페와 갤러리 네이밍은 기존 상호를 그대로 재활용했다.버려지는 사물들에 오방색을 입히는 본인 작품도 소개한다.소반이나 벼루함,됫박 등 목기에 부분 컬러링을 한다.쓸모 없어졌으나 버리기엔 아쉽고 두고 보기에도 애매한 사물에 미술 행위를 더하는 작업이다.기존의 아름다움을 훼손하지 않고 소극적 개입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지는 새로운 이미지가 탄생하는 일상의 재생이다.

△최창희 감성정책연구소 소장=예술적 도시재생의 한 방식으로서 공공예술을 연결한 에코아트와 일상재생에 대한 문제의식은 삶으로서의 지속가능성과 공존이라는 의미의 축에서 개연성있는 작업이다.자연미술과 옛도심의 재생공간이 지역사회에서 일상재생의 기능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도 중요하다.

△임=‘카페 서천상회/갤러리쉬갈’을 함께 운영하는 이유도 문화예술사업의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갤러리 운영이 어려운 지방 소도시의 경제적 부족함을 카페를 통해 충족시켜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갤러리 전시가 주기적으로 교체돼 작가와 함께 오는 손님들이 바뀌어서 홍보효과가 있다.또 카페는 언론에서 다룰 수 없지만 전시는 문화예술 행사라 다룰 수 있다.홍보와 함께 작품과 작가를 소개하는 효과를 누린다.

■세션 4.유휴공간의 예술적 활용을 통한 지역재생 - 경기상상캠퍼스를 중심으로

△김종길 DMZ아트프로젝트 전시감독=경기 수원에 있는 경기상상캠퍼스는 2003년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이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유휴공간으로 남아 있던 교정과 건물들을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생활문화와 청년문화가 혼합된 새로운 공간으로 탄생한 곳이다.모두에게 열린 문화공간이자 시민들이 문화를 통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아지트다.도심 속 문화 휴식공간,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배움터,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창작공간,함께 누리는 문화공유지대를 지향한다.수원 인근 10여개 대학 문화예술 관련학과 학생 1000명의 창직과 다양한 문화예술 실험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전환시대를 맞이하는 청년세대들이 마을,공동체,지속가능성,자율,자립,공생 등의 가치를 찾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의 주민을 위해 자립형 재생사업의 선순환 경제를 실험하는 경기수원생생공화국도 공방 운영 등을 통해 호응을 얻고 있다.

△임창섭 미술평론가=과감하게 유휴공간을 가공한 사례는 생활환경과 복지를 높이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앞으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문화 장르가 다양하게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부분을 함께 발전시켜 나갈 계획도 궁금해진다.

△김=청년이 중요한 키워드이긴 했지만 지역주민을 위한 공간이기도 했다.또 단순한 예술가 레지던시 공간이 아닌 창직의 공간으로 생각했다.마켓을 열어 하루 종일 축제가 펼쳐지도록 했는데 하루 5000명 이상이 찾을 정도로 대박을 쳤다.코로나19로 많이 위축된 것은 사실이다.디지털 관련으로는 3D 프린터 등 일종의 테크놀로지 시스템을 갖춰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세션 5.에코-아트를 통한 지속가능한 지역 재생 - 강원도를 중심으로

△홍경한 2018강원국제비엔날레 예술감독=강원도는 도립미술관이 없는 유일한 곳으로 미술 불모지라는 말이 틀리지 않다.에코아트와 지역재생 모두 어려운 주제지만 강원도는 산,호수,바다 등 다른 곳에 없는 장점들이 있어 다른 어떤 곳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자원에 예술가 아이디어를 빌리면 실현할 수 있다.특히 고유자원을 통해 지역재생을 해야한다.탄광처럼 강원도만의 고유자원에 예술을 덧입혀 지역 가치를 높이는 방식이다.관련 프로그램이 없지 않지만 거시적 플랜 아래서 움직인다기 보다는 일시적 문화향유 차원이다.이마저도 지속적이지 못하다.시장·군수가 바뀔 때마다 정책이 바뀐다.예술가 아이디어에 지역민의 창의적인 발상을 접목시킬 수 있고 주변 환경도 갖춰져있는데 행정적 걸림돌이 너무 많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탄광을 재생한 대표적 관광지인 독일 에센의 졸페라인은 연간 관광객 100만명을 넘어서는 세계 문화수도로 선정됐다.일본 세토우치 트리엔날레도 정치권과 관계없이 나오시마에 수백억을 투자해 만들어졌다.우리에게는 과연 이같은 추진력이 있나 자문해본다.지역재생은 하드웨어를 먼저 만들어야 가능하다.강원국제트리엔날레도 행사와 동시에 문화거점공간으로 사용되어야 종료 후에도 재생의 단초를 열어놓을 수 있다.해당 지자체의 마인드가 필요하다.또 강원도가 창조적 계급 육성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미술관이 필요하다.

△엄선미 박수근미술관 관장=가치철학과 창조적 계급인 예술가 육성이 필요하다는 점에 깊이 공감한다.특히 강원도 DMZ지역은 에코아트 실현에 적절한 공간이다.자연의 도움을 받아 이뤄내는 예술을 지역재생과 연계해 다양한 아이디어로 창조해내야 한다.문화공간과 사회예술단체,주민간 관계 맺기를 위한 매개자 양성도 중요하다.

정리/김여진·한승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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