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의도 상무이사· 원주본사 본부장
▲ 김의도 상무이사· 원주본사 본부장

최근 들어 코로나 19 확진자가 하루 2000명 가깝게 발생하고 있다. 대부분 우리네 소시민은 순한 양처럼 정부의 방역지침에 따르고 있는 이때 팬데믹 상황으로 치닫는 게 믿기지 않는다. 4인 이상 금지, 오후 10시 이후 영업금지, 결혼식장 장례식장 49명 이하 참석 등 정부가 하라는대로 한치도 어김없이 지키고 있다. 조금이라도 어기면 큰일이 생기는 것처럼. 대통령이 자랑하는 K 방역에 자부심(?)을 느끼며 ‘짧고 굵게’ 한마디에 모두들 숨죽여 방역지침에 따랐다.

우리네 희망과는 달리 코로나는 소위 4차 유행이 한창이고 백신 접종은 어떻게 될지 몰라 소시민들은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우리나라 자영업자들은 빚 때문에 폐업도 하지 못한 채 암울하게 보내고 폐업한 자영업자들의 한숨은 깊어만 간다. 멋모르고 들어간 식당에서 코로나에 감염되면 코로나 환자로 낙인이 찍히고 식당은 폐업 직전까지 몰린다. 또한 동시간대에 함께한 사람은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자가격리 14일이다. 모 대학생은 어렵사리 구한 아르바이트 첫날 식당 주인이 코로나에 감염돼 일도 못하고 꼼짝없이 14일 동안 자가격리 당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렇게 힘없는 소시민들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처럼 코로나 세파에 흔들리고 있다. 대부분 소시민들은 외국처럼 정부의 방역지침에 화염병을 던지거나 백신 맞기를 거부하는 등 경거망동하지 않고 정부의 방침에 순치된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교회 예배와 노동단체 집회는 우리네 소시민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방역지침을 지킨다고 하지만 정부의 요청을 무시하고 일부 교회의 예배 강행은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노동단체의 집단행동은 소시민들과는 달리 멋대로다. 지난 3월 원주지역 민주노총 소속 레미콘 노동자들은 시청 앞에서 한 달여 동안 시위를 벌였다. 노동자들의 절박한 사정은 이해되지만 코로나 팬데믹시대 과연 그랬어야 했는지. 강원도내에서 코로나 환자가 제일 많은 원주지역에 한때 전국의 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대형버스 100여대를 타고 몰려와 코로나로 지쳐있는 소시민들을 화나게 했다. 최근에는 건보공단 콜센터 직원의 직접고용을 둘러싸고 벌인 민노총의 행태는 정말 가관이었다. 경찰의 저지선을 교묘히 피해 언덕을 넘어가는 모습은 블랙 코미디 한 장면이었다. 노동단체의 어깃장에 코로나 보릿고개는 깊어만 간다.

어쩌면 코로나는 독감처럼 인간이 싸워 나가야할 전쟁보다 더 독한 질병으로 자리잡는 것이 아닌지. 그래서 소시민은 두렵고 무섭다. 코로나가 진정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우리네 일상의 삶은 점점 팍팍하다. 가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갈수 없고 친지나 친구를 만나고 싶어도 마음만큼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며칠 전 친한 친구의 장인상에 문상을 갔지만 간단한 예만 차리고 도망치듯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우연히 들린 곳에서 생면부지의 확진자가 나오면 보건당국으로부터 오는 검사요청 문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 다음날 음성통지를 받기 전까지는 하얀 밤을 지새운다. 혹시 양성이면 어쩌나, 음성이라도 14일짜리 자가격리가 되는 것은 아닌지 등등. 누구누구를 만났는지 세고 또 세고 휴대폰 문자만 뚫어져라 보는 게 우리네 소시민이다. 이런 진풍경이 코로나 시대 일상이다.

2000년 전 공자께서 “선한 사람은 하늘이 복을 내리고(善者 天報之爲福) 악한 일을 하는 자는 하늘이 화를 준다(爲不善者 天報之爲禍)”고 했다. 평범한 말이지만 코로나 시대 무엇이 선과 악인지에 대한 답은 나와 있다. 모두가 코로나를 극복하는 데 동참하는 착한 일로 하늘의 복을 받아 마음껏 활동하는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기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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