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전 형성 국내 최고 추정
전문가 “한국서 매우 드문 사례”
이전 보존 등 후속조치 미흡 지적
당시 연구원 “충분히 검토 판단”

▲ 보고서에 실린 춘천 우두동 유적의 목조우물 모습.
▲ 보고서에 실린 춘천 우두동 유적의 목조우물 모습.

속보= 춘천 우두지구 택지개발사업에서 발굴된 후 덮인 우두동 유적의 목조우물(본지 9월 27일자 1면)이 국내 최고(最古) 우물에 해당,문화재 지정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와 파장이 예상된다.

고고학과 민속학 전문가들은 27일 강원도민일보에 “2000년 정도 된 목조 우물은 한반도에서도 유일해 보이며 한국에서 매우 드물어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며 “이전 보존조차 없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한강문화재연구원에 의뢰해 2013∼2014년 진행한 우두동 유적조사에서 발굴된 목조우물은 약 2000년전인 1세기 후반∼2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우물로 파악된다.사진 촬영 등의 기록 보존 후 다시 매장된 우두동 목조우물의 부식된 틀의 방사성 탄소연대를 측정한 결과다.

▲ 보고서에 실린 춘천 우두동 유적의 목조우물 모습.
▲ 보고서에 실린 춘천 우두동 유적의 목조우물 모습.

그간 가장 오래된 우물로 국내 고고학계는 백제 한성기 풍납토성의 목조·석조 우물,신라에 해당하는 경주와 경북,대구 등에서 발굴된 우물 등을 들었으나 모두 5∼6세기 백제와 신라시대 무렵이다.우두동이 이들보다 300년 앞선 것이다.이 목조우물로 인해 우두동 취락은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 존속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우물 깊이는 5m가 넘고 내부는 100×100㎝ 내외의 방형이다.목판을 횡으로 만들어 평면 우물 정(井)자상으로 조립했다.내부에서 타날문토기편도 출토됐다.단순히 식수를 얻기 위한 용도로 쓰였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취락시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쓰였을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는 것이 고고학자들의 분석이다.

한강문화재연구원의 보고서에도 “물이 용출된다는 의미의 우물에 부합되는 최초의 사례”이며 “조사 전 주거지로 오해할 정도로 수혈 자체의 규모가 매우 크다”는 등의 내용이 나와 있다.

이에 대해 LH와 당시 조사를 진행한 한강문화재연구원은 “우물 분야에 권위있는 학자와 함께 현장을 충분히 본 후 판단했다”고 설명했다.당시 문화재 학술 자문회의에 참여했던 학자 A씨도 “유적의 중요성이 낮다고는 할 수 없으나 모든 유적을 원형보존 할 수는 없다.유적 보존의 최종 결정 또한 문화재청 의결사항”이라고 말했다.

지역 고고학계는 최소한의 ‘이전 보존’을 포함한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점,불충분한 조사 시기 등을 지적하고 있다.목조우물 발굴 시기는 우두발굴 조사의 막바지였던 2014년 11월이었다.문화재청의 보고 완료는 두달여만인 2015년 1월.우물 조사결과가 문화재청 자료에 제대로 포함돼 문화재적 가치 등을 충분히 검토할 시간을 가졌었는지도 확인할 부분으로 남아 있다.

동아시아 우물을 연구해 온 김광언 인하대 명예교수(전 문화재위원)는 “원삼국시대 목조우물은 4∼5세기 고구려 벽화에 나온 것 외에는 남아있지 않다”며 “문화재 지정 가능성도 충분해 보인다.우물 내부 뿐만 아니라 우물 상단을 어떻게 구성했는지에 대해 다시 조사해 볼 필요성이 있는 것으로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김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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