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만섭 전 삼성생명서비스 대표이사 사장
▲ 심만섭 전 삼성생명서비스 대표이사 사장

고교시절 우리 집은 춘천의 위도라는 작은 섬이었다. 아버지가 창고업을 하시던 건설회사 부도로 농사일을 위해 이사한 곳이다. 고등학교에 합격했지만 아버지 일을 도와야겠기에 입학을 미루고 농사일을 시작했다. 다음 해도 시험에 합격했지만 입학금 마련이 여의치 않았다. 입학금 마감날 어머니는 친척집에 부탁해놓은 것이 있다면서 일찍 나가셨고, 마감시간을 안절부절 기다리다 소양강 다리에서 드라마같이 어머니를 만나 입학할 수 있었던 기억이 선하다.

마음고생만 하시던 아버지는 그해 지병으로 돌아가시고 설상가상 3학년이 되던 해 소여물을 끓이다 집에 큰 화재가 났다. 위도는 배를 타지 않으면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고, 집은 가재도구하나 꺼내지 못하고 순식간에 전소됐다. 얼마 후 강건너 이웃 분들이 간단히 거처할 양철집을 짓고 쌀, 옷가지 등 생활용품들을 마련해 주셨다.어머니는 부담감에 입원하셨고, 담임 선생님께 휴학 결심을 말씀드렸더니 “6개월 고비를 넘기자”며 사관학교나 교대, 농대 사범학과를 제안하셨다. 그렇게 예비고사를 치르고 강원대 경영학과에 합격했다.하지만 입학금 마련이 또 쉽지 않았다. 대학은 못 가겠구나 싶었는데 어머니가 자주 일을 도와드리던 이웃집 교장댁 사모님을 통해 등록금이 마련됐다며 지역 방송국에 오라는 전달을 받았다. 방송국에 갔더니 도지사 관사로 안내받았고 화심회 모임 분들이 반갑게 맞이하시며 축하인사와 함께 봉투를 주셨다.이 일은 뉴스로도 나왔다.

남다른 각오로 대학생활을 했다.가정교사,아르바이트 등을 하면서 등록금을 마련했고, ROTC 훈련도 해서 졸업과 동시에 육군소위로 임관돼 휴전선에서 소대장 생활 2년을 마쳤다.대기업 몇 군데에 합격했지만 특히 삼성이 장교를 특별채용한다고 해 선택했다. 많은 성과를 내며 일한 결과 특진과 빠른 승진을 거쳐 임원승진을 했을 때는 여한이 없었다.

지역본부장을 거쳐 본사 사업부장으로 발령받은 어느해 영업실적이 좋아 연말 특별상여금을 많이 받았다. 어려웠을 때 받은 도움을 한시도 잊지 않았는데, 10배로 갚겠다는 생각으로 춘천고 교감선생님을 만났다. 강원대 합격 후 입학금 마련이 어려운 학생 10명에게 1000만원을 기부하겠다고 했더니 무척 기뻐하시면서 졸업식에서 직접 수여해달라고 하셨다. 졸업 31년만에 모교 졸업식에 참석해 장학금을 전하는 영광스러운 자리가 그렇게 마련됐다.

고생하신 부모님, 화재 때 도와주신 서면 신매리 이웃 분들, 대학 입학금 마련을 위해 애써주신 분들을 영원히 잊지 못하고 있다. 최근 당시 분들을 만나 50년전을 회상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어려웠던 시절과 고마웠던 분들을 생각하면서 남은 인생은 봉사의 마음으로 힘든 분들을 도우며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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