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경 문화기획자 새 갤러리 개관
춘천 시화 이름 딴 ‘개나리미술관’
전시기획 경험 살려 전문공간 구상
“미술 관심부터 작품 구입까지 3년
작품 존중 위한 공간 필요성 절감”

▲ 화이트 큐브로 구성한 개나리미술관 내부.
▲ 화이트 큐브로 구성한 개나리미술관 내부.

‘화이트 큐브(White Cube)’.새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사각형 형태의 전시공간을 말한다.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지만 정적인 이미지로 인해 미술관이 어렵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때문에 최근에는 문턱을 낮추고 색다른 감상을 전하기 위해 전시공간에 변화를 주는 다양한 시도들도 생겨나고 있다.하지만 강원도에서는 반대다.전시장 자체가 적어 ‘문턱 낮은 전시공간’을 곳곳에 마련하다 보니 오히려 화이트 큐브 전시장이 낯선 경우가 많다.

최근 춘천에 화이트 큐브 형태의 미술관이 새로 문을 열었다.춘천 거두리에 개관한 ‘개나리 미술관’이다.이 곳이 눈길을 끄는 또다른 이유는 기관·단체가 아닌 개인이 열었기 때문이다.강원지역에서 미술기획자로 활발히 활동해 온 정현경 큐레이터가 주인공이다.정현경 개나리미술관 대표는 “작품을 존중하는 문화시민을 위한 갤러리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 밖에서 볼 수 있는 개나리미술관의 윈도우 갤러리.
▲ 밖에서 볼 수 있는 개나리미술관의 윈도우 갤러리.

춘천의 시화인 ‘개나리’에서 이름을 딴 미술관은 순백의 공간에 최소한의 조명만 달렸다.홍보물이나 현수막을 달 공간을 없애고 작품이 먼저 보이도록 하는데 집중했다.윈도우갤러리를 마련,창 밖에서도 작품을 볼 수 있다.

지난 달 개관했지만 이미 많은 관람객과 작가들에게 “오로지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입소문이 나고 있다.개나리미술관은 시각예술 분야에서 다양한 자리를 거친 정현경 대표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 개관전으로 선보인 최덕화 작 ‘2009’
▲ 개관전으로 선보인 최덕화 작 ‘2009’

10여년간 웹 디자이너로 활동한 그는 결혼과 육아를 계기로 잠시 일선에서 물러났다.아이들이 어린이집 다닐 나이가 되자 좋아하던 것을 다시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고 당장 춘천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았다.정 대표는 “미대를 희망할 정도로 미학과 철학을 좋아했다”며 “집 근처에서 동양화와 민화를 배우다 지역 문화행사를 점검하는 문화재단 모니터 요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고 했다.이같은 활동을 통해 지역 작가들과 소모임을 가지며 교류를 시작했다.

이어 춘천에서 열린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전에 도슨트로 참여한 것을 계기로 작품과 관객을 연결하는 기획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홍익대 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공부한 그는 강원민족미술인협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인 전시 기획을 시작했다.회원 작품을 나열하듯 보여줬던 기존 협회전에 색다른 기획을 더하고 체험 프로그램을 추가하는 등 변화를 줬다.

▲ 개나리미술관에서 오는 15일까지 진행하는 류재림 개인전 중 ‘Dots’(위)
▲ 개나리미술관에서 오는 15일까지 진행하는 류재림 개인전 중 ‘Dots’(위)

2017년 강원민족미술인협회장이었던 류재림 작가와 함께 가정집을 개조한 갤러리 ‘명동집’을 만들기도 했다.전시장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춘천 명동 한복판에 대안 전시공간을 마련했으나 많은 유동인구는 단점이 되기도 했다.

정 대표는 “작품을 가볍게 보고 존중하지 않는 모습들을 보게 됐다.많은 관람객 보다는 미술에 관심이 깊은 소수의 밀도 있는 관람과 맞춤형 공간도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라고 밝혔다.이후 ‘예술밭사이로’ 기획자로 활동하면서 약사명동 폐가를 개조한 전시공간 ‘터무니창작소’를 만들기도 했다.마을 주민과의 소통공간으로 공공미술의 역할을 했지만 공간이 좁아 전문작가 전시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처럼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자신이 원하는,또 지역에도 필요한 전시공간을 직접 구상했다.줄기는 이렇다.‘개인전 개최가 가능한 규모로 전시에만 집중할 수 있는 전문 시각예술공간.전시에 관심있는 이들이 찾기 좋은 적당한 접근성을 가진 곳’.

▲ 정현경 춘천 개나리미술관 대표가 본지와 인터뷰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 정현경 춘천 개나리미술관 대표가 본지와 인터뷰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정 대표는 지난해 강원키즈트리엔날레 수석 큐레이터로서 홍천지역 유휴공간을 전시장으로 꾸미고 대형 전시를 기획하면서 이같은 구상에 확신을 가졌다.그리고 지난 7월 조성을 시작한 끝에 두 달여만에 문을 열었다.기획자가 연 미술관인 만큼 기획전 중심으로 작품들을 소개해 나갈 예정이다.

올해는 초대 개인전 위주로 준비했다.먼저 개관전으로 최덕화 개인전 ‘Homesick(향수병)’이 지난 달 열렸다.그리움의 근원을 떠올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춘천이라는 지역적 향수가 강하게 스민 최 작가를 첫 전시의 주인공으로 정했다.이어 류재림 개인전 ‘점 점 점(dot dot dot)’이 오는 15일까지 열린다.류 작가는 실제와 허상의 구분이 모호해진 디지털 세계에 성찰이라는 화두를 던진다.작품 완성 전 단계인 연필 정밀묘사 작업도 볼 수 있다.

정현경 대표는 “전시장에 처음 방문해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 관람객이 작품 구입까지 3년 정도가 걸린다는 점을 전시기획·운영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다”며 “지역미술과 작가들에게도 이러한 ‘문화시민’이 늘어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이를 위한 전시들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한승미 singme@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