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국 개인전 ‘스밈과 수행’전
서울 갤러리 라메르 6∼11일
자작·동백 이어 단색화 시리즈
“한지 풍경에서 한지 인상으로”

‘회사후소(繪事後素)’.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이후에 한다는 뜻이다.본질과 바탕이 먼저이고,꾸밈과 지식은 그 다음이라는 것을 비유한다.

박서보·이우환·윤형근 등 단색화 대가들을 중심으로 모노크롬 열풍이 미술계에서 거센 이유도 이같은 미학에서 찾을 수 있다.

붓을 쓰지 않고 한지 콜라주로 자연과의 조화와 치유를 표현해 온 양구 출신 조병국 화가가 단색화로 돌아왔다.

‘한지 모노크롬(monochrome)’이다.

조병국 개인전 ‘스밈-수행(修行)’전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갤러리 라메르(LAMER)에서 6일 개막한다.그의 시그니처가 된 ‘자작나무 시리즈’와 ‘동백꽃 시리즈’에 이어 ‘모노크롬 시리즈’까지 50점의 신작을 볼 수 있다.

▲ 조병국 작,‘심상(心象) 2101’. 모두 색 한지를 활용해 새로운 색과 형태,질감을 만들어 낸 작품들이다.
▲ 조병국 작,‘심상(心象) 2101’. 모두 색 한지를 활용해 새로운 색과 형태,질감을 만들어 낸 작품들이다.

작가의 미학은 전시 타이틀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조 작가는 붓과 물감 대신 한지가 갖는 고유한 물성에 집중한다.고향이 같은 국민화가 박수근 화백 작품 특유의 마티에르(질감)를 보면서 물감 없이 한국적 표현을 드러내는 방법을 연구했다.‘심상’,‘숲’ 등의 제목을 단 그의 단색화에는 전통과 현대,동양과 서양의 미감이 오묘하게 섞여들어 있다.서로 다른 색의 한지들이 각자의 물성과 색감을 슬쩍 드러내면서도 조화롭게 겹친다.

그 과정은 곧 수행이다.작가가 지문이 닳도록 겹겹이 붙이고 두드린 색 한지의 레이어 사이로 빛이 투과하면서 새로운 색이 드러난다.

단색화를 만들어 내는데 쓰인 색의 종류는 12∼18색에 달한다.혼색이 이뤄진 화폭 위로 병치혼합 방식이 적용됐다.동양의 은은한 멋이 우연하게 드러나는 과정이다.수많은 점으로 그림을 완성한 쇠라의 작품을 연상시킨다.‘물방울 화가’로 유명한 김창열 화백의 ‘물방울’ 뒤 바탕도 모노크롬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 조병국 작, ‘숲 2104’
▲ 조병국 작, ‘숲 2104’


단색화에 집중한 이유에 대해 조 작가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여름이면 여름,겨울이면 겨울…자연은 전체로 보면 한 톤으로 보인다. 근본 바탕이 있어야 빛과 색,형태,질감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고 설명했다.작가노트에서도 “한지풍경에서 한지인상으로 전이시킨 감각을 담아내고 있다”며 “우리 색의 특성을 한 꺼풀 가려 간접 표현하는 것,안으로 스며들고 물드는 한지의 물성을 중시한다.한국적 미의 특성과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 작품 세계”라고 했다.

▲ 조병국 작,‘심상(心象) 2101’. 모두 색 한지를 활용해 새로운 색과 형태,질감을 만들어 낸 작품들이다.
▲ 조병국 작,‘심상(心象) 2101’. 모두 색 한지를 활용해 새로운 색과 형태,질감을 만들어 낸 작품들이다.

안현정 미술평론가는 “감각적 수행을 통해 한국화 특유의 한지 추상을 완성해 냈다”면서 “모노크롬으로의 전이과정은 전통수묵의 모더니즘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자작나무 시리즈에 대해서는 “차이와 반복의 층차를 한지 콜라주로 보여준 작가의 독특한 미학은 인내와 조화를 상징하는 자작나무와 만나 더욱 단단한 삶의 환희를 만끽하게 한다”고 평했다.전시는 오는 11일까지 열린다. 김여진 beatle@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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