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스스로…’ 오늘 개막
춘천 문화공간 역 20일까지
지난해 화재 피해 후 첫 개인전
그림계 결성 등 개막 전 화제

▲ 김영훈 작가가 14일부터 개인전을 통해 ‘스스로 스스로’ 연작들을 공개한다. 개막하루 전인 13일 전시장에서 만난 김 작가.
▲ 김영훈 작가가 14일부터 개인전을 통해 ‘스스로 스스로’ 연작들을 공개한다. 개막하루 전인 13일 전시장에서 만난 김 작가.

내가 바라는 것과 남들이 원하는 것.

사람들은 이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살아가고 있다.예술가들에게는 더욱 가혹한 질문이다.‘내가 그리고 싶은 작품’과 ‘팔리는 작품’ 사이의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최근 한 작가가 정답 없는 이 질문에 대한 우문현답을 보여주고 있다.주인공은 춘천에서 활동 중인 김영훈 판화작가다.

김영훈 작가는 현대사회와 인간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선보이면서 판화계 중심에 선 화제의 인물이었다.그러던 그가 지난해 10월 큰 불로 작품과 작업실,집이 모두 전소되면서 ‘화재’의 인물이 돼버렸다.

14일 춘천 문화공간 역에서 개막하는 이번 전시는 화재 이후 갖는 작가의 첫 개인전이다.화마로 모든 것을 잃은 듯 했던 김영훈 작가는 1년만에 54점의 작품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13일 작품 디스플레이를 하고 있는 작가를 만나기 위해 방문한 문화공간 역은 이미 관람객들로 가득차 있었다.
▲ 김영훈 작, '스스로 스스로' 연작 중 실크스크린 작품 일부
▲ 김영훈 작, '스스로 스스로' 연작 중 실크스크린 작품 일부

작품을 관람하던 관람객들은 바로 작품 구입 리스트에 이름을 적었다.모르는 사이 전시가 앞당겨졌는지,수많은 콜렉터들이 어디서 일제히 등장했는지 물음표가 가득해졌다.

이들의 정체는 김영훈 작가 작품으로 ‘그림계’를 하던 계원들로 전시에 앞서 작품을 먼저 보고 구입을 원하는 작품을 표시하는 작업 중이었다.

‘그림계’의 역사는 김영훈 작가와 그의 아내 지유선 도예가의 터전이자 작업실이 전소됐던 지난해 10월로 거슬러간다.

수많은 작품도 세간살이도 모두 잃고 입고 있던 파자마와 가방 한 개만 건진 김영훈 작가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박미숙 카페 느린시간 대표,서숙희 작가,정현경 개나리미술관 대표 등을 중심으로 그림계 이야기가 나왔다.

‘그림계’는 작품 구입비용이 부담스러운 소장가들이 작품값을 분납,작가가 안정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김영훈 작가의 작품으로 그림계를 하자는 것.

일반적으로 작가와 계주가 먼저 협의하고 계원을 모으는 방식이지만 이번 경우에는 작가 몰래 계주와 계원들이 먼저 모였다.박미숙 대표 등은 남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구속받는 것을 싫어하는 작가 성향상 거절할 것을 감안해 23명의 계원을 먼저 모은 뒤 김영훈 작가에게 이야기했다.

당장 수입이 필요했던 김 작가 입장에서 고마운 제안이었던 만큼 수락했지만 걱정도 컸다.작품 구매자들이 정해져있다는 부담감에 김 작가는 계원들을 절대 알려주지 말라고 당부했다.실제로 중도포기도 생각했다.개인적으로는 기존보다 단순화하는 판화 작업에 매진하고 싶었지만 페인팅 작품 구입을 원하는 계원들도 많았다.또 기존 김 작가의 작품은 어두운 분위기지만 소장가들을 위해서는 우울한 부분을 덜어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하지만 호의를 거스를 수 없었고 이후 다른 작가를 향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할 수 있다는 생각에 힘을 냈다.
▲ 김영훈 작, '스스로 스스로' 연작 중 페인팅 작품 일부
▲ 김영훈 작, '스스로 스스로' 연작 중 페인팅 작품 일부

이번 전시 타이틀은 ‘스스로 스스로’다.전시장에 들어서면 왼쪽과 오른쪽 작품이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전시장 좌측의 페인팅 작품들은 기존 김 작가의 작품들에 비해 분위기가 밝고 다양한 디테일들이 더해진 모습인 반면 우측은 선과 면을 덜어낸 단순한 실크스크린(공판화의 한 종류) 작품들로 채워졌다.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다르지 않다.모두 ‘나’에 대한 이야기다.실크스크린 작품에는 모두 2명의 인물이 등장한다.모두 한 사람의 자아를 의미하는 인물들로 스스로를 보듬고 대화하면서 상처를 치유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김 작가 작품 고유의 캐릭터는 이목구비가 사라지거나 선으로만 표현되는 등 극도로 단순화됐다.
▲ 김영훈 작, '스스로 스스로' 연작 중 페인팅 작품 일부
▲ 김영훈 작, '스스로 스스로' 연작 중 페인팅 작품 일부

페인팅 작품들은 주로 1명이 등장,자아를 끄집어내고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물과 구름,연기,꽃,달 등과 같은 부산물들로 표현됐다.문학으로 빗대면 페인팅은 자아를 표현하는 ‘산문’이고 실크스크린은 이를 함축한 ‘시’다.전시장 안쪽에 위치한 메조틴트(동판화의 일종) 작품 5점에서는 두 가지의 표현방식이 고루 드러난다.

김영훈 작가는 “화재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잠도 잘 못 자고 밥도 먹지 못했는데 힘을 모아주신 분들 덕분에 이를 작업으로 승화할 수 있었다”며 “병원도 가려고 했지만 모두 예술로 치유됐다.참여해주신 계원 분들은 의사이자 심리상담사와 같다”고 말했다.

전시는 14일 춘천 문화공간 역에서 개막,오는 20일까지 열린다. 한승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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