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찾은 춘천 고인돌
그림 그리며 상상의 나래 펼쳐
선사유적지 주제 첫 개인전 개최
원시·현생 인류 그려낸 기상도
1995년 미술대전 대통령상 수상
복숭아꽃 만개한 이상향 표현

▲ 임근우 작가.
▲ 임근우 작가.

#소년이 고인돌을 만났을 때

1970년 소년은 12살 초등학생이었다.그는 수업 중에 선생님으로부터 춘천 샘밭에 고인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이상하게도 그 말을 듣자 소년은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그 고인돌이 소년을 이끌었다.

소년은 그곳에 가기로 마음먹었다.버스비도 없고,버스도 잘 다니지 않던 시절이었다.시내에서 12㎞거리의 샘밭까지 고무신을 신은 채 타박타박 세 시간을 넘게 걸었다.그리고 소년은 밭 한가운데 우뚝 자란 전나무를 보았다.

전나무 바로 옆에 검은 돌이 곰처럼 엎드려 있었다.고인돌은 선사시대 무덤이라 했다.

그로부터 소년은 수시로 고인돌을 찾았다.덮개돌에 누워 하늘에 뜬 흰구름을 바라보거나 돌에 귀를 대고 먼 청동기시대 고인돌 사람의 소리를 들었다.어느 땐 고인돌 사람과 마음속으로 이야기도 나누었다.소년의 상상은 고인돌을 둥둥 뜨게 했고,고인돌을 타고 행성처럼 우주를 유영하기도 했다.고인돌의 숨결을 느끼고 고인돌이 되어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펴던 소년은 집으로 돌아오면 크레용으로 고인돌 그림을 수도 없이 그렸다.

어느 날 소년은 덮개돌 위에 누워 하늘을 보았다.구름이 지나고 있었다.문득 어린 소년은 생각했다.

‘나는 누구일까.’

‘난 어디로 가게 되는 거지?’

소년은 성장하여 미술대학에 입학했다.젊은 대학생인 그는 자아정체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소년이었을 때 품었던 ‘나는 누구일까’가 또다시 의문으로 떠올랐다.어느 날,그는 방문을 걸어 잠갔다.그리고 벽 한 면에 가득히 흰 모조지를 붙였다.알몸이 된 그는,그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그리고 깨알 같은 이야기들을 벽면에 가득 채웠다.어느새 흰 벽면은 검게 변했다.그러자 무언가가 보였다.캄캄한 우주가 거기 있었다.거기에 한 소년 ‘임근우’가 있었다.거기에 소년이 그리던 이상세계인 유토피아가 있었다.청년은 그날 비로소 ‘임근우’의 정체성을 발견했다.70년대 TV에서 김동완 통보관이 매직펜으로 그려내던 비뚤배뚤 기상도가 떠올랐다.‘내일의 날씨’는 미래를 들여다보는 예측도라는 걸 그때야 알았다.임근우의 ‘Cosmos-고고학적 기상도’는 그렇게 하여 시작되었다.‘고고학적 기상도’는 까마득한 과거와 알 수 없는 미래가 동시에 만나는 우주-cosmos-였다.

▲ 임근우 작업실에서 최돈선 그림이 되다.
▲ 임근우 작업실에서 최돈선 그림이 되다.

#두 국립박물관장과의 만남

1985년 여름.

27세의 젊은 화가 임근우는 서면 신매리로 가는 통통배를 탔다.그 배에서 신매리 발굴단장인 지건길 박사를 만났다.고고학의 권위자라 했다.그는 춘천 중도와 신매리 등 의암호 주변의 청동기 유적지를 조사 발굴하고 있었다.지건길 박사는 나중에 국립박물관장이 된 분인데,청년화가 임근우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날 고인돌의 덮개돌이 크레인으로 올려지는 모습을 임근우는 처음으로 보았다.덮개돌이 들어 올려지는 순간,수천 년 동안 정지되어 있던 ‘시간의 푸른 녹’이 임근우의 눈을 찔렀다.눈이 멀 정도의 아찔함이 느껴졌다.5년 후,임근우는 중도,신매리,천전리 선사유적지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청동기 지석묘가 전공인 지건길 박사로부터 고고학적 기상도의 작품이 시작되었다면,그것에 문화인류학적 상상력을 더해 주신 분은 배기동 전 국립박물관장이었다.배기동 관장은 연천군 전곡리 구석기 유적을 발굴하여 유적지 조성과 더불어 전곡리 선사유적박물관 건립의 기틀을 마련한 분이었다.1990년대는 임근우가 연천 전곡유적지의 구석기축제에 참여할 때였다.당시 임근우는 고인돌의 덮개돌이 화면에 공중 부양되는,무중력 구도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배기동 박사와의 만남으로 춘천 고인돌의 거석문화와 전곡리의 주먹도끼가 융합하면서 태곳적 인류의 숨과 결을 임근우는 작품에 표현하기 시작했다.1995년 대한민국미술대전 대통령상 수상 소식은 전곡리 구석기축제가 진행되고 있을 때 전달되었다.수상 작품은 춘천 고인돌과 춘천 중도식 토기,그리고 전곡리 타제석기가 융합된 ‘Cosmos-고고학적 기상도’였다.그날 고고학자들과 축배의 잔을 들었을 때,임근우는 어린 소년과 아내를 떠올렸다.그리고 춘천 샘밭의 고인돌과 ‘시간의 푸른 녹’을 떠올렸다.

▲ 샘밭 지석묘군을 찾은 임근우 작가.
▲ 샘밭 지석묘군을 찾은 임근우 작가.

#Cosmos-고고학적 기상도

임근우의 그림은 독특하다.그리고 그림의 주제가 명료하다.‘Cosmos-고고학적 기상도’에 등장하는 인간은 원시인류인 호모에렉투스와 루시,호모사피엔스와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이다.또한 중도식 토기와 고인돌과 주먹도끼와 다완과 사발이 등장한다.이것은 과거의 고고학적 기상도이다.그러나 임근우의 상상은 현재에서 미래를 향해 있다.현재의 행복찾기는 임근우가 추구하는 이상세계의 실현이라 할 수 있다.그러므로 임근우의 그림엔 간절한 기원이 담겨 있다.현재에 대한 행복찾기와 미래에의 염원을 함께 동일시하는 시선은 형이상학적이고 유토피아적이다.

그 이상향이 바로 무릉도원이다.

임근우는 춘천에서 태어나 춘천의 지석군묘에서 어린 시절의 꿈을 키웠다.춘천은 봄이면 복숭아꽃이 만개하는 곳이다.아름다운 무릉도원을 꿈꾸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 리 없다.

임근우는 말한다.“작가는 고향의 양분을 먹고 산다”고.이 말은 그의 화두로 자리하여 일관된 그림의 정신세계로 자리하고 있다.

임근우는 그리하여 세 동물을 상징화한다.말,젖소,기린은 유토피아 캐릭터로 설정된다.말은 역동의 상징으로,젖소는 풍요의 상징으로,기린은 높은 이상향을 그리는 상징으로 표현된다.그 동물들은 하나같이 머리에 분홍 복숭아꽃이 만개한 나무를 이고 있다.복숭아꽃을 배달하는 이 이상향의 동물들은 모두에게 행복을 전달하는 전령사들이다.신인류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의 모자 쓴 머리에도 복숭아나무는 꽃을 피운다.

여배우 황신혜 씨의 거실에는 말 젖소 기린의 그림이 그려진 ‘Cosmos-고고학적 기상도’가 걸려 있다.흰 바탕에 흰 선으로 그려진 다완이 은은히 비치고,세 동물의 머리에는 복숭아꽃이 피어 있다.신인류의 중절모자와 그릇들이 제가끔 공간을 차지한 이 그림을 배우 황신혜 씨는 아침마다 맞이한다.이 그림을 보면 무언가 행복한 느낌이 파도처럼 몰려온다고 한다.

지금까지 임근우는 개인전 54회를 가졌다.국내는 물론이고 국외에서 많은 전시회를 가졌다.바르셀로나,베이징,상하이,도쿄,오사카,고베,LA,러시아,항가리,뉴욕,볼리비아 등.또한 국내외 아트페어 부스 개인전과 단체전이 무려 2천 회가 넘는다.이것만 보아도 이 작가가 얼마나 치열하게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강원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도 임근우의 작업은 쉴 틈이 없다.

퍼포먼스를 하는 임근우 작가
퍼포먼스를 하는 임근우 작가

#내 삶의 가속도 법칙 F=ma

임근우는 자신의 예술적 삶을 뉴턴의 제2법칙 가속도에 대입하여 설명한다.질량 m은 현재이다.재료와 열정이 그것이다.가속도 a는 과거로부터 축적된 경험과 미래를 향한 속도이다.이 둘이 융합하여 예술적 에너지 F가 생성된다.그러므로 임근우는 매시간 새로운 창조물과 마주한다.그것이 임근우의 예술적 삶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2021년 10월 5일 저녁 5시 30분,가을로 접어드는 부슬비가 내렸다.임근우 작가와 함께 찾아간 천전 지석군묘가 젖고 있었다.다섯 기의 고인돌이 놓여 있는 그곳.50년 전 임근우 소년이 덮개돌 위에서 ‘나는 누구일까’라고 물었던 그곳.

전나무가 베어지고 없군요.그는 덮개돌을 어루만지며 오랜 상념에 젖어 있었다.

시인·춘천문화재단 이사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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