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생태의 공간(Peace & Life Zone)으로

한국전쟁 이후 휴전기간이 길어지면서 이제 국경분쟁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DMZ 바로 아래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일본이 교과서에 독도 영유권을 명기하면서 국경을 둘러싼 국가 간의 영유권 분쟁 문제는 우리의 현실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크고 작은 영토와 국경분쟁이 인류 역사의 숙명처럼 지구상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수많은 민족이 맞대고 살았던 국경은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소통의 공간이지만 때로 분쟁의 장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로 돌변하기도 합니다. 강원도민일보 웹진 ‘DMZin’은 접경지역 문제를 오랜기간 연구해 온 차용구 중앙대 역사학과 교수의 기획 연재를 통해 세계의 국경선 이야기를 새로운 시각에서 전합니다. 연재 타이틀은 ‘제국의 유산, 피흘리는 세계의 국경선’입니다. 차 교수는 다섯 차례에 걸쳐 싣는 이번 연재를 통해 강대국의 논리에 의해 굳어져 온 국경에 대한 개념을 다시 설명합니다. 국경선은 강대국 힘의 논리가 작동하는 공간이지만 이와 동시에 피지배자가 담론적 질서를 횡단하는 가변적 공간이기도 하다는 점을 밝힐 예정입니다. 이로써 지배세력이 관철시킨 배제와 분단의 국경을 피지배자,희생자가 자신의 것으로 전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중미 이스파뇰라 섬의 국경선 이야기부터 시작해 △아프가니스탄 국경선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선 △독일과 폴란드의 오데르-나이세 국경선 △한반도의 DMZ까지 세계 유일의 분단도인 강원도가 참고할 사례들을 풍부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국경이 갖는 공간적 포용성, 얼마든지 변화와 창조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역사적 사례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 DMZ 현안, 국제 정치, 외교, 역사 등을 두루 살필 수 있는 이번 기획 연재에 독자 여러분의 관심 바랍니다.

 

[제국의 유산,피흘리는 세계의 국경선] ⑤ 한반도의 DMZ - 평화와 생태의 공간(Peace & Life Zone)으로

접경지역을 연구하는 차용구 중앙대 역사학과 교수가 강원도민일보 DMZin과 함께 하는 ‘제국의 유산, 피흘리는 세계의 국경선’의 마지막 연재입니다. 드디어 한반도로 돌아옵니다. 지난 4차례의 연재를 통해 중미,중동,인도,유럽의 국경선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그간 한반도의 허리를 가르고 있는 비무장지대는 그간 갈등과 긴장의 공간이었습니다. 전쟁의 상흔이 깊게 패어있는 이곳을 평화와 생명지대로 탈바꿈 시키려는 움직임이 사회문화적으로 활발합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국경의 개념도 다시 정립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정부 주도의 국경정책은 획일적이고, 경직돼 있으며, 실제 접경지역 지자체와 주민, 민간의 활동영역은 좁습니다. 냉전의 산물인 DMZ는 여전히 정쟁의 도구가 되어 주변부로 머물러 있습니다. 이같은 방식으로는 DMZ를 평화와 생명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은 요원합니다. 국경정책의 당사자를 정부 주도에서 접경지역 지자체,비정부 기구등으로 넓혀 민간부문의 지속 교류 가능성을 열어두고, 독일 사례 등을 참고해 재난재해 방지와 같은 중요 현안을 위해서는 초국가적 협력 체계를 만들 수도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 글에도 실려 있습니다. 국익만을 추구하는 경계,개발 일변도의 국경정책이 아니라 환경과 평화 어젠다,교육 등을 아우르는 생명·평화의 지대로 탈바꿈시키는 준비를 지금부터 해야 합니다. 모쪼록 이번 연재가 평화에 대한 막연한 염원과 상상력을 넘어 실천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고민이 무엇인지 다시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 편집자 주 -



국경연구(Border Studies)는 세계·국가·지역 권력이 등장하고 힘을 겨루는 장소인 국경선을 통찰하는 학문이다. 전통적인 국경연구는 국경을 보호·단절·통제·차단 기능을 하는 배타적 선이자 주권의 날카로운 모서리로 이해하면서, 반드시 수호해야 하는 신성한 경계선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초국경적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은 우리에게 국경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코로나19라는 팬데믹 앞에서 국경의 배타적·공격적 기능만을 강조한 나머지 이를 불통의 장벽으로 파악했던 고전적 국경이론은, 국경이 갖는 접촉과 협력 기능을 설명하는 데 한계를 드러낸다. 국경을 넘나드는 초국가적 감염병은 자국의 이득만 고려한 정책이 더 큰 혼란을 유발하고 이웃 나라와 함께 대처하는 것이 확산을 예방하는 지름길임을 새삼 일깨워줬다. 국경을 군사적 요새나 정치적 ‘장벽’이 아니라 공생을 위한 ‘교량’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증가한다.

인간이 그어놓은 경계는 자기가 판 함정에 자신이 빠지는 것처럼 스스로를 옥죄어왔다. 역사를 보면 국경은 중앙정부의 정책적 개입과 무관하게 자연히 생겨나는 초국경적 협력과 통합의 과정이 진행된 접경공간으로서 상호의존과 관용, 새로운 국가와 문명의 탄생 등 다양한 모습을 빚어낸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장소에 가까웠다. 국경, 아니 ‘접경공간’(Contact Zone)은 어떻게 단절되고 폐쇄적인 장소로 전위되었는가?


■제국의 유산, 국경선

중미 이스파뇰라 섬, 아프가니스탄, 인도와 파키스탄, 독일과 폴란드의 국경선. 총 4회에 걸쳐 연재한 세계의 국경선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 첫 번째는 국경선이 지역 주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제국의 지정학적·전략적·경제적 이해관계 안에서 일방적으로 결정되었다는 점이다. 한반도의 38선도 이곳에 진주한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 편의대로 그어진 군사분할선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인도와 파키스탄의 래드클리프 국경선은 식민종주국 영국, 오데르-나이세 국경은 승전국 소련에 의해 획정되었다는 사실이다. 38선은 이 모두에서 비켜난다.

식민지 조선은 독일과 같은 전범국도 아니었고 미국과 소련은 조선의 식민종주국도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패전국 일본이 아니라 조선이 분단되고 말았다. 굳이 비교하자면 외세의 자의적인 국경선 획정으로 국가가 만들어진 아프가니스탄과 유사한 점이 많다. 국가가 성장하고 팽창하면서 주권이 그 효력을 미치는 국경선을 규정하는 것이 역사의 일반적 경험이지만, 양국은 모두 국가보다 국경선이 먼저 생성된 본말이 전도된 굴곡진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38선은 여러 면에서 비정상이다.

▲ 미군으로 보이는 병사가 길바닥에 38선을 표시하고 있다. 1945년 8월 일제의 패망과 조선의 해방을 기뻐할 때, 남과 북으로 진주한 미국과 소련군은 군사적 편의를 위해서 38선이라는 군사분계선을 일방적으로 그었다. 제국이 임시적이고 자의적으로 그은 이 분계선으로 한반도는 지금껏 아픔과 슬픔을 안고 산다.
▲ 미군으로 보이는 병사가 길바닥에 38선을 표시하고 있다. 1945년 8월 일제의 패망과 조선의 해방을 기뻐할 때, 남과 북으로 진주한 미국과 소련군은 군사적 편의를 위해서 38선이라는 군사분계선을 일방적으로 그었다. 제국이 임시적이고 자의적으로 그은 이 분계선으로 한반도는 지금껏 아픔과 슬픔을 안고 산다.

■피흘리는 국경선

세계 국경의 또 다른 공통점은 제국의 자의적이고 편의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분단으로 추방·학살·전쟁 등 온갖 재앙이 세상으로 튀어나온 판도라의 상자였다는 사실이다. 듀랜드 라인은 국경선 양쪽에 거주하던 아프간 최대 종족인 파슈툰 족을 두 동강 내어서 국경 남부에 살고 있던 상당수의 주민들이 인도로 강제 편입되어야 했다. 1947년에 인도로부터 독립한 파키스탄이 이 지역을 소유하면서 수백 만 명의 파슈튠인들이 자신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다시금 국적을 변경해야만 했다.

이스파뇰라 섬의 도미니카는 정권불만 무마용으로 반아이티주의를 정략적으로 이용했고, 1937년에는 접경지대에 살고 있던 1만 명 이상의 아이티인들을 집단학살하는 인종주의적 정책으로 국경을 도미니카화하기 시작했다. 학살이 자행되었던 강은 여전히 ‘학살의 강(Massacre River)’으로 불리운다.

힌두 인과 무슬림의 이익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던 인도-파키스탄의 국경 설정은 오히려 천만 명 이상의 실향민과 여전히 그 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희생을 내었다. 신성한 국경선의 설정과 수호를 위해서 국경지역 주민들은 생명과 재산 피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제2차 대전 직후 폴란드로 새롭게 귀속된 국경지대에서도 400만 명 이상의 독일인들이 추방당하는 동안 이들은 폴란드인의 잔혹한 행위의 표적이 되었다.

한국전쟁도 한반도 분단에서 기인하였다. 제국이 멋대로 그은 38선이 한국전쟁을 거쳐 휴전선(DMZ)이라는 경계로, 남북한의 국경선 아닌 국경선으로 고착화되어버린 것이다. 이후 남과 북은 푸에블로 사건(1968), 판문점도끼살해사건(1976) 등 국경지대의 유혈충돌을 거치면서 적대적인 분단체제를 견고히 굳혔다. 남한과 북한은 다른 쪽의 정치제도를 너무나도 위협적이고 악(惡)한 존재로 묘사하고 재생산했다.

■중심과 주변

세계의 국경선이 지니는 세 번째 공통적 함의는 중심과 주변의 상호연관성이다. 중앙정부는 내부통합을 강화하고 지배질서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국경의 주변성을 활용했다. 도미니카에서는 분단이 강력한 독재를 낳았고 독재는 분단을 이용하는 악의 순환고리가 형성됐다. 제국의 야욕이 만들어낸 래드클리프 국경선은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의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지역은 지리적으로 신흥 국가의 변방으로 탈바꿈하였지만 그곳은 오히려 정치적 지각변동의 중심지로 부각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새로 탄생한 폴란드 공산정부는 자신의 취약한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경지대에서 반독일 정서를 부추겼다. 한반도에서도 국경 획정으로 새롭게 탄생한 남과 북의 정권은 분단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1960년 이후 남북한의 군사정권도 독재체제 구축을 위해서 주변부(국경)의 상황을 활용했다. 그 결과 남북한은 유신체제와 수령체제를 출범시키고 무한체제 경쟁에 돌입할 수 있었다. 북한의 비무장지대나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 무력도발이나 이를 이용하려는 남한의 평화의 댐 건설과 소위 ‘총풍’사건은 체제구축을 위해 중심이 주변을 활용한 대표적 사례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프레더릭 잭슨 터너는 고전적 저서 ‘미국사와 변경’에서 “19세기 미국 서부 프런티어(국경)의 변화가 역으로 중앙 연방정부의 행정체계를 바꾸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터너의 프런티어 사관에 따르면, 서부 개척은 민족적 혼종성과 종파적 다양성을 가능하게 했고 여기서부터 ‘변경 민주주의’ ‘개척자 민주주의’가 탄생하면서 진정한 미국이 출현할 수 있었다. 국경은 중심과 주변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균열을 일으키는 장소라는 말이다.

접경적 시각은 중심에서 구축된 지배질서가 주변에 미치는 양상을 보여주고, 역으로 중심이 주변의 공간적 재구성을 수용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곧 주변의 정치·사회적 영향을 받은 중심 스스로의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주변과 중심의 관계는 길항적이기도 하지만 상호의존적이기도 하다.

국경은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주변부가 아니라 새로운 중심이 되는 변화의 공간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미약했던 국경지역에 독자적인 세력 기반이 확립될 수 있었고 그렇게 해서 국경의 창조성이 돋보이게 됐다. 나아가 이들은 초국경적 연계를 구축하고 지역 간 협력 공간을 확충했고, 혼종화된 지역 정체성을 발판으로 위기 상황에 원숙하게 대처했다. 국경지대는 창조의 공간, 생명의 공간이었음을 역사가 증명한다.

하지만 한반도에서는 여전히 주변(국경)은 중심(중앙정부)의 정략적 활용대상일 뿐이다. 남북한 국경지대에 있는 경기도와 강원도는 연평도 포격이나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 등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되면 심리적 불안과 경제적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으면서도 남북문제에선 여전히 수도(京)의 주변부(畿)로서 주체가 아닌 객체로 머무른다. 중심-주변의 역사구도를 새롭게 바라보아야 한다.

■화해

국경 화해와 협력은 군사적 갈등을 제어할 수 있다. 좋은 담장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고 하지 않았는가. 통일 독일은 오데르-나이세 강 동부 국경지대에 대한 영토주권과 역사주권 모두를 포기함으로써 ‘천년 전사(戰史)’의 독일-폴란드 국경갈등을 봉합했다. 양국의 학교교육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우위적 접근에서 평화공존적 접근으로 방향성이 변화하였다. 독일 개신교의 『동방백서』(1965), 독·폴 가톨릭 주교단의 서신교환(1966), 빌리 브란트의 신동방정책(1970) 등 국경의 화해와 협력을 가속화하는 사건의 누적 속에서 평화공존이 실현되었다. 국경 화해가 양국을 좋은 이웃이자 동반자로 지내게 한다.

남과 북은 이미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에 이어 1991년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2000년 이후 모두 다섯 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사실상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러나 잠정적 분단선인 38선이 획정된지 76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남북한 사이에는 여전히 뿌리 깊은 상호불신과 적대의식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 남북 화해를 둘러싸고 보수와 진보 간 ‘남남갈등’도 지속되었다. 남북 정상들 간의 냉전적 적대감을 뛰어 넘는 악수 교환은 한반도에 화해를 가져오지 못한 셈이다.

국가 지도자 간 협의에 따라 결정되었던 기존의 하향식(top-down) 정책이 가시적 성과를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가 절실하다. 그동안 국경 정책(Border Politics)은 정부가 주도하고 국민에게는 일방적으로 전달되었다. 이로 인해 정부 교체시마다 정책이 일관성을 갖고 추진되지 못했으며 오히려 반복적인 정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국내외 비정부기구(NGOs), 시민단체 등 다양한 비국가 행위자가 중앙정부·접경지역 기초자치단체와 협치관계를 구축함으로써 국경 화해의 물꼬를 트는 유연한 정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민간부문 간의 협력체계는 정부 프로그램에 변화가 생기더라도 연속적인 협력관계의 유지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협력 분야에도 변화가 요구된다. 환경·교육·문화 등 비정치적 영역에서 국경 협력 추진자로 활동했던 해외의 접경지자체는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1970년대에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환경오염이 심각했다. 특히 대기오염도는 유럽에서 최악의 수준이었다. 당시 동독 지역에서 방류되는 막대한 폐수가 동·서독 접경지대의 공유 하천과 바다로 유입되면서 양국은 환경보호를 위한 포괄적 논의를 진행했고 ‘접경위원회’가 공유 하천 보호와 수자원 분야 협력, 초국가적 재해 방지 임무를 맡게 된다. 동·서독의 관계 중앙부처와 서독의 접경 4개 주가 참여한 이 위원회는, 국경 문제를 중앙정부와 접경지역 지자체가 협력해서 해결한 성공적인 사례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상대방 국가에 오염의 책임과 배상을 요구하기보다는, 국경을 선인 동시에 협력의 공간으로 이해하는 초국경적인 인식전환을 통해서 문제 해결을 모색했다는 점이다.

이 사례를 교훈 삼아, 중앙정부(중심)와 접경지자체(주변)가 비영리 민간단체들과 협력적 거버넌스를 구축해 국경 협력의 물꼬를 트는 유연한 정책을 모색해야 한다. 이는 중앙정부가 한 방향으로 추진하는 하향식 정책이 구체적 성과를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안이 될 수 있다. 인간과 국가가 설정한 경계를 아랑곳하지 않고 넘나드는 팬데믹이 증명하듯이, 환경 앞에 국경이 있을 수 없고 접경지역은 일차적 피해자이자 당사자로 환경·사회문화적 이슈에서 국경 협력의 추진자로 나서야 할 것이다.

 

▲ ‘개구리 사다리’를 아시나요? 개구리 사다리는 콘크리트 농수로 등의 수직 구조물에 빠져 올라오지 못하는 양서류를 구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한스 자이델 재단 한국 사무소(Hanns Seidel Foundation Korea)는 1987년부터 남북을 오가며 초(超)국경 환경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DMZ와 같은 남북 접경지역의 생태 평화와 국경 넘어 북한의 지속가능한 환경보호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강원도 고성 등에서 진행된 개구리 사다리 설치는 남북한 접경지역 환경 협력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러한 국제적인 비영리 공익단체의 비정치적 교류는 국경 협력의 대안적 경로를 제시한다.
‘개구리 사다리’를 아시나요? 개구리 사다리는 콘크리트 농수로 등의 수직 구조물에 빠져 올라오지 못하는 양서류를 구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한스 자이델 재단 한국 사무소(Hanns Seidel Foundation Korea)는 1987년부터 남북을 오가며 초(超)국경 환경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DMZ와 같은 남북 접경지역의 생태 평화와 국경 넘어 북한의 지속가능한 환경보호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강원도 고성 등에서 진행된 개구리 사다리 설치는 남북한 접경지역 환경 협력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러한 국제적인 비영리 공익단체의 비정치적 교류는 국경 협력의 대안적 경로를 제시한다.

■협력

DMZ 접경지역은 각종 야생조류와 양서·파충류 종이 출현하는 지역으로, 이는 지구온난화 등 급속한 기후변화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서식 환경이 좋기 때문이다. 산업사회가 유발한 생태적 위기인 코로나19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생태적’ 거리 두기라는 과제를 던졌고, 새로운 통찰과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또한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초국경적’ 코로나바이러스의 대확산은 국경의 의미와 기능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부각한다. 국경을 국가의 안보 이익만을 위한 분리와 배제의 전략적 경계선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협력의 공간으로 재성찰해야 할 때다. 그러나 국경 협력을 국경 주변의 천연자원과 산업 인프라(기반시설)의 공동개발에만 치중한다면, 이는 근대가 기획했던 국경 정책의 실수를 반복할 뿐이다.

그동안 소외되었던 비무장지대 접경지역의 개발 필요성을 주장하는 지역주민들의 목소리도 경청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배후 거점도시와 동떨어져 있고 노동력 공급도 쉽지 않은 접경지역에 제조업 위주의 산업단지를 개발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실효성이 적다. 오히려 제조업 중심의 기존 남북협력 모델에서 탈피해 생명평화경제로 전환해야할 것이다. 남북 접경지역에 평화·화해·공존 관련 연구기관과 환경·의료·AI·정보통신기술 분야를 가르치는 국제적 교육기관의 유치도 생각해볼 수 있다.

독일-폴란드 국경갈등의 근원지였던 오데르 강변에 1991년 양국 학술·문화의 거점 대학이 설립되었다. 다리만 건너면 폴란드가 위치한 이 대학에는 주로 독일과 폴란드의 학생들이 함께 수업을 받고 있으며 교수진도 양국의 연구진으로 구성되었다. 교육을 통한 국경 협력은 다양한 비정치적 집단이 중심이 된 활동과 참여를 확장시켰다. 교육·문화적 협력은 정치적으로 민감하지 않은 사안을 다루기 때문에 순조로운 국경 협력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평화공존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국민에게 주는 것 혹은 보장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만으로는 부족하다. 개천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루듯이, 우리의 작은 행동들이 우리의 하루를 행복하게 만든다. 평화와 공존은 단순한 염원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이다.

차용구 중앙대 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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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구 중앙대 역사학과 교수

◇차용구 = 중앙대 역사학과 교수.중앙대·한국외대 HK+ 연구단장을 역임했고, 중앙대 국제대학원에 국내 최초로 국경연구(Border Studies) 전공을 신설, 동아시아의 국경 전문가 양성에 기여하고 있다.

저서로 ‘접경의 기억.초국가적 기억의 장소를 찾아서’(공저),‘가해와 피해의 구분을 넘어-독일·폴란드 역사 화해의 길’(공저),‘The Borderlands of China and Korea. Historical Changes in the Contact Zones of East Asia’(편저) 등이 있다.또 ‘독일과 폴란드의 역사대화-접경지역 역사서술을 중심으로’,‘국경에서 접경으로-20세기 독일의 동부국경 연구’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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