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윤수 성공회대 교수
▲ 정윤수 성공회대 교수

올 가을은 각별하다. 해마다 이맘때면 전국의 산하가 단풍으로 물들었건만, 지난 해 그리고 올해의 초가을에는 그 장관을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가까이 가서 즐기기 어려웠었다. 그랬는데 제한적이나마 ‘위드 코로나’가 되어 산으로 또 바다로 그리고 꽤 많은 사람들은 야구장으로 공연장으로 산책을 나갔다.

이런 문화적 일상이란 얼마나 귀한 것인가. 그것이 늘 일상적이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1년 여 동안 중단되었다가 다시 맞이하여 보니 문화적 일상의 소중함은 가히 인간적 삶의 전부인 듯하다.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최종적인 방역이란 어쩌면 이러한 문화적 방역, 예술백신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문화계에서 ‘문화안전망 구축’을 강조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가혹한 생존 경쟁이 압도하는 상황에 더하여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진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 가치가 절실하다. 지역사회의 관계망을 복원하여 공동체 전체의 안전을 도모하는 사회적 연대가 그것이다. 여기에 문화예술의 사회적 역할이 결합되어야 한다. 문화안전망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온 윤소영에 따르면 오늘의 상황에서 문화예술은 그것을 감상하고 경험할 때의 ‘정서적 만족’을 넘어서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여 삶의 질 수준을 높이고 이로써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이 문화안전망의 최종적인 목표는 국가적 차원에서나 혹은 특정 지역의 차원에서 그 구성원들의 생활의 안정과 관계망 형성에 있지만, 구체적인 과정에서 결정적인 요소는 바로 행위자, 즉 문화예술인의 지속가능한 활동의 보장에 있다.

일괄적으로 말하여 현재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가들의 조건은 상당히 위험한 상태다. 문체부의 ‘2018 예술인실태조사’를 보면 예술인의 예술활동 연간 수입은 평균 1281만원에 불과하고 ‘500만원 미만’인 비율도 56.2%에 달한다. 그로부터 2년 뒤인,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2020년 연구에 의하면 대부분의 문화예술사업체 및 단체가 영세하고 예술인들 또한 일부 스타를 제외하고는 열악한 소득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상황에 처해 있다.

여기에 코로나19라는 위기까지 덮쳤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대대적인 산업구조의 급변까지 도래하고 있다. 산업지형의 변화, 노동시장의 위기, 사회적 불안과 심리적 불만의 증대, 사회 관계망 악화 등이 우려되는 가운데 문화예술인들이 이 거대한 위기 상황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모두가 힘든 상황인데 왜 문화예술인들을 지원해야 하는가라는 질문도 가능하다. 그러나 문화예술인들의 건강한 일상과 지속가능한 활동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건강한 공동체 형성을 위한 ‘문화안전망’이란 불가능하다. 거꾸로 말하여 문화예술인들이 단발성 전시나 용역 성격의 행사에 매몰되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일상 생활을 유지하면서 해당 지역의 사회적 관계망 형성을 위한 문화적 작업과 창작 활동을 전개할 때 ‘위드 코로나’ 혹은 ‘포스트 코로나’의 사회적 가치가 촉진되는 것이다.

최근 춘천문화재단을 비롯하여 각 지역에서 문화예술인 지원정책 강화를 중심으로 한 ‘문화안전망 구축’ 논의를 활성화하고 있는 것은, 그래서 반가운 일이다. 얼마 전 춘천문화재단은 ‘안전망 구축’, ‘창작기반 조성’, ‘가치 확장’, ‘유통과 확산’ 4가지 영역에 관하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포항문화재단도 지난 9월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문화적 소외계층을 위한 문화안전망 구축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논의를 펼쳤다. 이러한 논의가 구체적 정책, 즉 예술인의 최저 생활 보장, 작업 과정의 민주화, 지역사회와의 결합 등으로 이어져서 예술백신을 통한 진정한 사회적 방역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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